30개국은 족히 다녔을 해외출장, 20대에 입사해서 가장 동경했던 건, 역시나 해외출장이었다. 드디어 해외출장이 잡혔던 때, 너무나 설레어 잠을 이루지 못했다.
아마 직장인이라면 첫 출장, 특히 첫 해외출장의 기억은 잊지못할 것이다. 지금은 해외여행이 워낙 자연스럽지만, 해외여행을 자주 못가던 시절의 해외출장은 어리버리함과 궁금함, 두려움의 결정체였다. 여권이나 제대로 챙길 수 있을까 걱정하면서 잠을 청했던 것이 한두번이 아니었다.
미국, 유럽, 12시간 이상의 해외출장이 너무나 좋았고, 비행기 안에서는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 것이 행복했다. 뉴욕으로 가는, 베를린으로 가는 12시간 동안 단 한번도 화장실에 가지 않은 적도 많았기에 창가를 선호하는 건 당연했다. 하지만, 5시간, 3시간의 비행도 부담스러워지기 시작했다.
결정적으로 6개월간의 국가자격 시험 준비를 하면서 해외출장도 가기 힘들었지만, 몇시간을 앉아서 공부하다보니 그 많던 엉덩이 근육이 줄어들기 시작했다. 시험을 합격한 후 파리, 독일, 미국 출장을 떠났을 때, 너무나 괴로운 경험의 연속이었다. 당연히 복도석이 우선이 되었고, 연속으로 자리에 앉아서 가는 괴력은 더이상 생기지 않았다.
비행은 그렇다치더라도 현지에 도착해서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는 열정이 좀처럼 생겨나지 않았다. 일은 일대로, 술은 술대로, 쇼핑과 맛집을 찾아다니는 것도 매번 열심히였고, 마치 훈장과도 같이 경험을 쌓아나갔다. 모든 것이 신기하고 맛있었고, 만나는 현지 직원, 현지인들이 모두가 친구가 되었다.
하지만, 이제는 출장이 재미가 없어졌다. 먼저 같이 가는 사람이 중요하고, 가서 만나는 사람도 중요하고, 해야 할 일의 무게감도 중요하다. 내가 만든 일로 가는 출장은 그나마 낫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는 부담감이 크기 마련이다. 현지에서의 음식은 이제 그다지 신기하지 않고, 술을 마셔도 내일 걱정부터 슬슬 나기 시작한다. 모든 것이 부담으로 다가오다보니, 출장에 대한 큰 매력을 느끼지 못했다.
그렇게 많이 사오던 딸아이의 옷과 장난감, 각지의 마그네틱과 접시, 컵, 조각품들이 이제는 다 부질없어 보이는 것을 보니 정말 나이가 들긴 했다보다 단정지어 버렸다. 정말 해외출장의 재미가 없어진건가? 해외여행 자체가 재미없어진걸까? 가족과 함께 떠난 삿뽀로와 오스트리아, 스위스 여행은 너무나 추억에 남는 멋진 여행이었다. 그 얘기는 여행자체에는 별 차이가 없다는 말인 것 같다.
다시 얘기하면, 누구와 같이 어디로, 왜가는 해외출장인지가 중요하다는 얘기지, 나이가 들었다고 해서 해외출장이 싫어진다는 건 아닌 것 같았다. 물론, 오랜 시간을 비행해야 하는 출장으로 부터 오는 몸의 무리는 어쩔 수 없이 세월탓을 할 수 밖에 없다. 헬쓰장, 필라테스로 아무리 단련을 하더라도 거뜬히 버틸 수는 없다. 돈과 상관없이 나이가 들기 전에 여행을 많이 해야 겠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출장지에 도착하자마자 집으로 가고 싶어진다. 예전에 설레였던 마음과 좋았던 경험들을 나누고 싶은 사람이 곁에 없다보니, 그 경험을 얘기할 사람이 있는 집으로 가고 싶어진다. 일은 하지만, 일을 끝낸 후 하는 식사도, 쇼핑도 예전같이 않다. 몸이 허락하는지가 아니라, 기분이 허락하는지가 더 중요해지나보다.
출장이 싫지는 않다. 역시나 집으로 돌아오면 다시 출장을 가고 싶은 마음이 생기니 말이다. 역마살이 제대로 붙었는지, 올해도 해외만 4번을 다녀왔는데, 또 다음 출장지를 찾아 헤메인다. 더 나이가 들면, 가고 싶어도 못가는 해외출장, 여행은 가겠지만 예전의 출장의 추억들을 아쉬워할 수 밖에 없어질 것 같다. 분명히 아쉬워할 그 시절의 해외출장, 갈 수 있을 때 충분히 가고, 더이상 아쉬워하지 않도록 그 시간을 즐기자고 다시 한번 다잡아본다. 갈망하진 않아도 싫어하진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