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급별 심리와 처세
예전부터 이런 생각을 했었다.
직장생활에서는 여러 직급이 있는데(여전히 존재하는데),
각 직급별로 회사에 와서 어떤 일을 하고, 어떤 생각들을 할까, 각자의 입장에서의 일과에 대해서 한번 생각해 보고 싶었다.
현재 기준에 모든 직급에 대한 생활을 당연히 알 수는 없지만, (나는 대리가 아니고 과장이 아니고..)
정말 각자 어떤 생각을 하면서 생활하는지 예전의 경험과 주변의 얘기들을 기준으로 만들어봤다.
모든 사람이 같지는 않겠지만, 비슷한 면으로 공감되지 않을까 해서 글을 남겨본다.
직급도 중요하지만, 사람을 중요하게 생각했던 나로서는 많은 사람들과 소통하기를 좋아했고,
또 지금도 그런 선상에서 만남들을 이어가고 있기 때문에, 많은 직급의 공감을 얻어봤다고 생각한다.
나이가 많으면 다 꼰대는 아니다. 꼰대는 나이를 불문하고 다 있다. 젊다고 꼰대가 아니라는 착각은 하지 말아야 한다. 나를 돌아보고 내가 어떤 배려들을 하는지, 배려받는지를 잘 생각해 봐야 한다.
사실, 원래 쓸려고 했던 글은 직급별 하루가 아니라, 회사에서 일어나는 빈번한 일들이었다.
회의시간에, 회식에서, 출근할때, 휴가, 야근, 야유회, 퇴근할 때 작은 모임 등 많은 경우일 때 우리는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떻게 행동하는게 좋은지에 대해서 관료주의적인 회사의 경험을 되살려 살아남는 법? 모나지 않게 잘 살아가는 법에 대해서 같이 얘기를 나눠보고 싶었다.
적지만 직장생활에서의 경험에 비추어 조금이라도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글이 되고 싶었다.
그 글은 다른 글에서 다시 한번 도전해 봐야 겠다.
입사 초년생의 하루
갓 입사했다. 아침부터 정신이 없다. 어제도 정신없이 술을 마시고, 아침에 일어났다.
회사에 가기가 싫어진다. 원래 술도 잘 안마시는데 어제는 술을 마시라는 분위기에 싫은 표정을 지어가면서 술을 들이킨다. 옷은 더러워져 있고, 빨아놓은 옷은 아직 안말랐고...
그래도 난 대기업에 입사했고, 어엿한 사회인이니까, 이 정도의 일은 소화할 수 있다.
출근을 하니, 다들 커피 타임으로 즐거운 아침 시간을 즐기고 있다. 요즘 그래도 분위기가 많이 좋아져서 아침부터 회의를 하는 분위기는 없어졌다. 고 생각한 내가 잘못 생각한 거 였다.
나도 끌려들어가 멍하니 회의에 참석해 처절히 깨지는 선배의 모습을 보면서 안쓰러워한다.
그래도 난, 퇴근 후에 내가 신청한 필라테스에 가서 한 시간 땀을 빼고 나면 다시 내일을 살 활력이 생긴다. 월급날이 돌아온다. 월급이 나오면 아마도 통장은 두둑해 지겠지?
이 월급을 모으면 난 곧 집도 사고, 차도 사고, 결혼도 금방할 거고, 부자가 될 것이다.
역시 직장인이 정말 안정적이고, 행복한 삶인 것 같다.
왜 창업을 하고, 왜 퇴사를 하는지 이해가 안된다.
선임의 하루
예전에는 대리, 주임, 과장을 이제는 다 선임이라 부른다. (회사마다 케바케)
입사한지, 5년이 되었다. 아침부터 전화가 와서 보니, 고참선배가 자료 어떻게 되었냐고 난리를 쳐대는 통에 아침도 못먹고 그냥 내달린다. 지하철을 놓치고 나서 카톡으로 조금 늦을 것 같다고 얘기를 꺼내니, 이상한 이모티콘들이 날아온다. 오늘 아침도 출근하면 분위기가 바닥이겠네하고 한숨을 쉰다.
지하철을 타고 나서 스마트폰으로 블로그에 여기 저기 들어가보니 다 재테크로 돈을 벌었다, 코인이 올랐다. 집을 샀는데 3억이 올라서 하나 더 살려고 보고 있다는 둥, 한숨을 쉬다가 지하철 바닥으로 꺼질 공산이다.
전세를 올린지 얼마되지도 않았는데, 전세를 올려달라는 집주인의 성화.
요즘은 부동산 시세가 올라서 그런지 집주인이 많이 변했다.
도착하자 마자 달려들어가 노트북을 켜고 자료를 마무리해서 선배에게 넘긴다.
선배는 온갖 눈치는 다 주면서 가서 또 본인이 보고를 하고 칭찬을 받아낸다.
대단한 선배다. 나도 저런 선배가 되어야 겠다. 여의도로 진출하는게 훨씬 더 어울릴 만한 선배다.
꼭 저 선배를 본받아 나도 정치인 아니 멋진 회사원이 될테야.
요즘 들어 미래가 많이 걱정된다. 미래가 요즘 좀 걱정이 많이 된다.
모아놓은 돈은 없는데, 자꾸 나이는 먹어가고, 아내는 눈치를 준다.
입사하고 얼마되지 않아 지인의 소개로 만난 아내와 결혼하여 지금 2살짜리 딸아이를 키우고 있다.
아내도 직장인이라 아침부터 돌봄 도우미 아주머니께 애를 맡기고 출근을 한다.
아내의 다크써클은 무릎까지 내려왔다. 난 아직 어깨 정도인데, 아내가 많이 힘든가 보다.
오늘은 월급날이다. 연봉 협상(통보)로 이번에 월급이 많이 오른다고 했는데, 찍힌 거 보니 오른게 맞나 싶다. 회사가 그럴리가 없다면서, 동료들에게 물어볼려고 해도 부끄럽다. 동료들도 그다지 좋은 표정은 아니다. 저기 저 앉아 있는 팀장님은 퇴근 후 소주 한잔하고 스크린 한판치러 갈 기세다.
여기저기 멤버를 모으는 팀장의 눈에는 연말 성과 평가 줄세우기 라인이 이미 그려져 있다.
'빠지는 사람은 내년에도 손가락 빨꺼야'. 때리고 싶다. 근데 팀장이니 때리지는 못하겠고, 자연스럽게 카톡에 가담하면서 '제가 예약할게요'하고, 선수를 친다. 난 정말 선수다.
빨리 들어와서 애 좀 보라는 아내의 성화를 무시하고, 소주한잔 때리고 스크린가서 한게임하고는 집에 12시쯤 들어가 아내가 날리는 젖병을 무사히도 잘 피했다.
오늘도 이렇게 즐겁게 저물어가는 나의 하루.
책임의 하루
예전 차장, 부장을 그냥 책임이라 부른다. 그냥 부를 뿐 그들에게는 책임은 없다.
난 책임이다. 모든 것에 책임을 져야 하는 자리는 절대 아니다.
근데 직급이 책임이다. 부담스럽게 이름을 지어놔서 책임을 져야 할 것만 같다.
회사는 책임을 지는 사람을 참 좋아한다. 하지만, 권한은 최소화시키는 것 또한 귀신같다.
그래, 난 책임이고, 팀장을 달기 위해 아래위를 연결하는 미드필더라고 생각하자.(주입식학습의 결과)
아침에 출근해 보니, 팀장이 임원실 앞에서 뭔가를 들고 보고를 하려고 하나보다.
요즘 선임도 그렇고 새로온 신입들도 그렇고, 다들 눈빛들이 예전의 나와 같지는 않다.
나는 그 나이때 정말 빛이났고, 열정에 불타있었는데, 회사에 대한 애정이 없어보인다.
이해가 안가는 친구들이다. 회사에서 돈도 주고, 돈도 주고, 돈도 주는데, 그리고 일도 주고 책임도 주고, 휴가도 주고 (써본적이 잘...)
곧 팀장이 다른데로 이동한다는 소문이 들리는데, 내가 지금까지 석세서(후계자, 왕위승계자)였는데, 그 석세서는 아직도 유효하겠지? 내가 팀장한테 얼마나 잘했는데...
노래방가서 흔든 것만 해도 10번 이상이고, 골프도 10번이상 져줬고, 당구도 그렇고...
술은 뭐 거의 내가 산 것 같고, 나도 이제 팀장이 되는 건가?
일이 손에 안잡힌다. 회의나 소집해서 애들이 진행하는 프로젝트 얘기나 들어볼까?
선임에게 회의 소집을 좀 해달라고 하니, 직접 하라고 한다. '요즘 애들은' 이라고 한마디 던지고, 회의 소집을 해보지만, 내 말은 씨가 잘 안먹히나 보다.
팀장에게 얘기해서 프로젝트 진행을 위해 회의 소집 좀 한다고 하니, '하던 일이나 잘하세요'라고 되돌아온다. '뭐지, 내가 팀장이 안되는거 아냐'
약발이 떨어졌나보다. 오늘 다시 한번 식사를 잡고, 약을 더 주입을 해야 겠다고 생각한다.
집에서 애들은 나랑 떨어진지 오래되었고, 아내도 그닥 나랑 얘기를 안한다. 회사에 너무 메여 있어서 그런지 가족간에 소통이 잘 안되는 것 같다. 그래 팀장되면 더 좋아질거야라고 생각하고 오늘 또 저녁에 식사와 스크린을 달린다. 마침 팀장이 예약을 하고 싶어한다. 선임이 선수쳤다.
곧 평가 시즌이라 그런지 애들이 다 손발이 보통이 아니다.
하루 종일 일도 손에 안잡히는 상태에서 저녁 식사 자리에 가니, 이미 좋은 상석은 선임들이 포진했다.
난 이번에도 좋은 자리를 빼앗기고 말았네.
아참, 근데 선임들은 연봉이 많이 오르는데, 책임이 책임을 지는데 책임은 왜 연봉이 제일 안오르는걸까? 이제 나가라는 얘긴가? 집도 아직 전세고, 대출도 있고, 가야 할길이 먼데....
아닐꺼야, 맞다고 해도 난 여기서 뼈를 묻을거야라고 다짐하면서 소주잔을 기울이다가 테이블에 푹 쓰러진다. 아무도 안깨우도 2차로 가버렸다. 터벅 터벅 다시 월급날을 기다리면서 지하철에 몸을 싣는다. 주식은 다 마이너스, 미국 주식은 오늘 1000원 정도 수익이 나고 있다. 기쁘다. 부자가 될거야 난.
팀장의 하루
임원 붙박이
임원님께서 출근하셨다. 난 임원보다 무조건 빨리 출근해야 한다.
우리 임원은 왜 이리 일찍 출근하실까, 덕분에 나는 5시에 일어나 지하철로 이동해서 지금 이 시간인 7시반까지 도착해 있다. 출근하는 임원의 인상을 살핀다. 기분이 별론가? 좋아보이는데?
오늘 보고할 내용과 어제 있었던 사건 사고를 소상히 보고하려고 방문 앞에서 대기 중이다.
커피를 드리고 나오는 비서에게 기분을 물어본다. '별론거 같아요'
발길을 돌린다. 어느 타이밍에 보고를 해야 할지 계속해서 일정을 본다.
성과 보고 후면 난 그냥 저승행이고, 성과 보고 전이 좋겠지?
성과 보고 전에 나의 이 보고는, 성과 보고 시에 안좋은 기분을 배가 시켜 모든 사람들이 핵폭탄을 맞았다. 이건 내 탓이 아니었다. 그래, 이건 성과가 안좋아서 분위기가 그런걸꺼야.
난 임원이 시키는 일이면 뭐든지 다해야 한다. 때로는 임원의 사적인 일까지.
얼마 전에는 자녀 결혼식에 대해서도 지원을 해야 하는 상황이라 팀원들에게 얘기했다가 야유를 받았다. 정말 난감한 상황이다.
뭐 일단 아직 시간이 있으니, 다음에 생각하자. 오늘만 생각하기에도 벅차다.
임원께서는 임원을 단지 얼마되지 않아 한껏 들떠있다. 말 그대로 클라우드 속이다.
하지만, 1년차, 2년차를 지나다보면 요령이 생기기도 하겠지만, 매년 실적의 압박때문에 자리를 보전하기가 점점 어려워진다. 정말 잘하는 임원이 아니고서는 임기가 끝나면 찾아주는 곳이 없다고 한다.
임원은 뭐 영원하다고 생각하겠지만, 얼마전 임원으로 계시던 상무님께서 좋은 실적에고 불구하고 한방에 계약 해지 통보를 받고 배신감에 치를 떨었다고 한다. 회사를 위해 헌신했건만.(시킨사람없음)
팀장은 임원이 퇴근하는 걸 보고는 바로 팀원들과 식사를 위해 자리를 뜬다.
팀원 중 한명이 이미 멋진 자리를 마련해 놓고 서서 기다리고 있다. 기분도 좋고, 눈에도 들어온다.
이런 정치적이면서 배려적인 이런 느낌을 난 원하지 않았지만, 취해간다.
팀장은 회사를 나갈 이유도 나갈 필요도 없어 보인다. 팀장도 영원해 보이니까.
그리고 성과는 언제나 잘 받으니 팀장만 계속해도 난 회사에서 성공한거니까.
임원에게만 잘하자. 그럼 난 성공할 수 있다.
임원은 다른 자리로 보직발령이 난다. 팀장도 따라 바뀐다. 그렇게 하루가 저물어 간다.
임원의 하루
내 얘기가 아니라, 임원의 얘기다.^^
임원이 된지 이제 2년차가 된다.
임원이 되니, 200가지의 새로운 것들이 나에게 주어졌다.
연봉, 차, 사무실, 개인비서, 비즈니스석, 보너스 등등 내가 생각지도 못했던 것들이 나에게 주어졌다.
정말 난 열심히 살아왔고, 임원이 되기 위해 뼈를 갈아넣었다.
자신이 자랑스럽고, 그동안 경쟁해 온 사람들에게 조금은 미안한 감정이 있다. 하지만, 경쟁사회니까 그 정도는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 밑에 있는 사람들에게 그 정도 시킬 수 있는거 아닌가라고 생각한다. 아침에 멋진 와이셔츠와 양복을 입고 깨끗하게 세차된 그랜져에 올라탄다. (거의 다 그랜져다)
임원이 되어 좀 더 빨리 출근을 안하면 회사에서 모니터링하기 때문에 조금은 신경이 쓰인다.
아침에 출근하자 마자, 오늘의 일정에 대해서 브리핑을 듣고, 금방 내린 커피를 마시면서 메일을 확인한다. 밤사이에 올라온 결재가 50개 정도된다. 하나씩 결재하다가 사소한 것 까지 하고 있는 나를 확인하면서 방앞에 있는 팀장을 호출해서 한바탕한다. 이게 임원이지.
일부 결재를 반려하고 나서, 아침 회의를 시작한다. 나는 X세대 임원이기 때문에 분위기를 최대한 온화하게 해서 회의하려고 한다. 직원들이 나를 다 좋아한다.
회의가 시작되고 목소리를 점점 커진다. 이번달 실적이 안좋다. 위에 계신 임원께 이번달 마감 보고를 올려야 하는데 실적에 대한 압박이 커져온다. 새로운 프로젝트를 만들라고 지시한다.
'아, 이건 예전 임원이 쓰던 방식인데, 난 안 그러기로 했는데', '프로젝트 만들어서 실적 개선하도록 하세요, 프로젝트 이름은 xxx' , 꼰대가 되어가는건가?
점심을 위해 사내 식당은 제외하고 외부로 식사를 나간다. 미리 셋팅하고 일어서 있는 직원들을 보면서 흐믓해 하고, 같이 앉아 온갖 어깨에 뽕을 넣어 식사를 한다.
계산은 반드시 내가 한다. 내가 가지고 있는 법인카드는 내꺼다. 그래서 밥은 내가 사는거다.
팀장이 운전하는 차를 타고 회사로 복귀해서, 주말에 있을 임원끼리의 골프 예정지에 대한 정보를 미리 입수한다. 골프복이 없는 걸 확인하고 아내에게 전화해서 골프복 하나 주문하라고 한다. 임원이 된 남편에 대한 예의를 최대한 갖추는 아내는 제일 비싼 골프복으로 남편의 기를 살려주기로 했다.
이번 달에는 임원 월급 뿐만 아니라 성과급이 더 많이 들어왔기 때문이다.
비싼 골프복을 주문하고, 아내는 비싼 명품백을 보기 시작한다. 임원 아내는 그 정도해도 된다 생각한다. 성과급도 계속해서 많이 들어올꺼고, 임원 자리는 1년 밖에 안되서 아직은 문제도 없다.
우리는 이대로 가면 금방 부자가 될 것이다. 성과만 좀 좋으면 내년에도 난 문제가 없다.
임원은 영원하니까라고 생각하고 하루를 정리한다. 곧 임원 인사 발표가 시작된다. 난 걱정이 없다......
퇴사자(자의, 타의)의 하루 (자발적이든, 타의적이든 퇴사자)
퇴사 직후 일주일 동안에는 늦잠을 잤는데, 이제는 잠이 잘 안온다.
어제 분명히 친구들이랑 술을 마시고 잤는데, 새벽부터 깨서 스마트폰으로 조금 넣어놓은 미국 주식을 보고 한숨을 쉬다가 거실로 나간다.
라면을 끓여 먹자고 생각하고는 물을 끓인다. 라면은 역시 사발면이지. 100도로 끓이지 않으면 라면은 라면이 아니라는 신조를 가지고, 끓을 때까지 기다린다. 식탁에 불은 좀 켜고 기다리자.
김치가 있어 다행인데, 라면을 먹고 있자니, 나는 오늘 뭐해야 하지? 운동갈까, 서점갈까? 아니 이제부터 공부해서 취업 준비하기로 했잖아, 아니 그냥 자격증 공부하러 스터디 등록해서 거기 가자.
벌써 어슴프레해 진다. 오늘 저녁도 라면을 먹을 수 없기에 동네 마트에 가서 삽겹살을 사서 나름 플렉스를 해보고자 한다. 숙취는 사라졌고 새로운 저녁이 왔기에, 다시 한번 맥주를 사서 혼자 파티를 즐긴다. 오늘이 마지막이다. 내일부터는 반드시 새로운 도전이 시작된다.
아침은 밝았고, 라면을 또 끓이는 모습에서 다시 한번 한숨이 나온다. 절망적이진 않다.
나에겐 미래가 있고, 그 미래를 향해 달려나갈 내 자신은 자신감이 충분하니까.
좀 더 나은 케이스, 술을 마시고 잤는데 늦잠을 자서 컨디션이 상쾌하다.
할게 없다. 블로그쓰고, 유투브 보고, 라면먹고, 운동하러 갈려다가 귀찮아서 그냥 집에서 팔굽혀 펴기 5개 하다가 거실 바닥에 쓰러져서 머리를 쥐어 뜯으며 괜히 남탓해 본다.
자기 암시를 통해 '나는 할 수 있다'라고 소리 친후에 다시 용기내어 일어나 건강을 생각한 나머지 샐러드와 요거드, 간단한 토스트로 아침 식사를 한다. 커피가 다 떨어져서 급한 나머지 배민에 주문을 해 본다. 커피보다 배달비가 더 비싼 걸 보고는 '아우 그냥 갔다오자'하며 근처 동네 까페로 나간다.
슬리퍼 찍찍 끌어가면서 손은 주머니에 안넣고 앞쪽에 푹 찔러 넣고 (너무 몰고갔나?) 걸어나간다.
까페에 오니 뭔가 본전 생각에 좀 더 좋은 걸 먹고 싶어져, 아인슈페너를 시켜서 들고 간다.
아인슈페너를 마시다가 위에 뿌려놓은 초콜렛 가루가 목에 걸려 캘록캘록 하면서 눈물을 쪽뺀다.
주변에 사람들이 코로나인 줄 알고 슬슬 피하는 모습이 목격되었다.
혼자서 중얼 거린다.
'아, 사래가 걸려서 기침이 많이 나네'. 주변 사람들이 속으로 생각한다. '누가 물어봤냐?'
주문할 걸 괜히 돈 아낀다고 나왔다가 돈 더 쓰고 가네.
퇴사자에 대한 비하가 아니라, 내가 그래봤다는 얘기다.^^
퇴직자(타의)의 하루
정년 퇴직자의 일상, 퇴직한 임원의 일상
퇴직자, 새벽부터 잠이 깬다.
아침부터 등산 준비를 해본다. 어제도 등산을 갔는데
요즘 등산을 가면 다들 같은 나이의 사람들이 등산을 한다.
젊은 사람들도 약간 민망한 복장으로 등산을 한다. 다음부터 등산보다는 맛집 투어를 해야 겠다고 다짐해 본다.
실업 급여를 신청해야 하는 날이다. 등산을 마치고 일찍 내려와서는 실업 급여를 신청하기 위해서 고용보험 센터를 찾았다. 줄을 섰다. 사람이 엄청 많기도 하지만, 연령대가 너무나 다양하다.
무사히 실업급여 신청을 마치고 집에 돌아가려다가 먼저 퇴직한 선배를 불러내서 밥이나 한끼하자고 했다. 선배는 딸 가족이 찾아와서 외식을 하러 간다고 한다.
딸에게 전화를 해본다. '나중에 전화드려도 될까요?' 문자가 온다. 흠... 딸이 많이 바쁜가 보다.
딸도 요즘 결혼 준비로 정신이 없다. 퇴직 전에 결혼 시켜야 하는데라고 걱정을 많이 했지만, 생각보다 쿨한 딸은 전혀 개의치 않는다. 결혼식장은 제일 좋은 곳으로 찾아보라고 큰 소리쳤지만, 정말 제일 좋은 곳으로 할까봐 걱정이 앞선다.
아내는 모임으로 오늘 또 늦는단다. 아내가 더 바쁘다.
집에 가면 먹을게 있을라나라고 생각하고, 어두운 아파트의 현관 조명을 켜보지만, 역시 집에는 먹을게 없었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라면과 햇반을 먹으며, 어제 나온 '라디오스타' 재방송을 보면서 한참을 웃고 즐긴다. 그래 이게 인생이지.
내일은 골프 모임이 있다. 아침 일찍 나가야 하니까, 일찍 자야 겠다.
나는 연금을 받고 있고, 집도 있고 저축한 것도 투자한 것도 꽤 있다.
하지만, 일이 없어 너무 심심하다. 책을 써볼까 생각해 봤지만, 회사생활로는 쓸 내용이 없었다.
좀 더 다양한 활동들을 해볼 걸 후회해 보지만, 늦었다. 하지만, 책이 아닌 다른 것으로 나의 이 경력을 반드시 활용할 곳이 올거야라고 여기 저기 이력서를 넣어본다.
마침, 좋은 플랫폼 회사에서 컨설팅 의뢰가 들어온다. 다음달 부터 비상근 프로젝트에 참여하기로 했고, 새로운 프로젝트도 이어서 하기로 했다. 그나마 내가 회사에서 해 온 경력이 인정을 받는구나 다시 한번 마음을 놓고 하루를 정리한다.
회사에서 성공을 하든, 성공을 하지 못하든,
회사는 반드시 떠나야 하는 곳이다. 하지만 떠나지 않는 사람이 있다.
바로 오너다.
회사, 즉 기업의 종류는 몇만가지, 아니 더 많을 수 있다.
내가 내 회사를 갖는 것, 작지만 나를 브랜딩하는 것,
그것이 지금까지 풀어나간 스토리에서의 한 자리를 차지 하지 않는 것, 다른 스토리로 전개해 나갈 수 있는 힘이라는 사실을 전하고 싶고, 나도 그렇게 되기를 갈망하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