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세우는 작고 단단한 글쓰기 8화

어느 날의 이중일기, 일기처럼 글 쓸 때 유의할 점 두 가지

by 해리포테이토

글은 일기처럼 쓰면 편하다. 하지만 일기처럼이지 일기를 보여주는 것은 안 될 말씀이다. 일기는 보여줄 수 있는 일기와 보여줄 수 없는 일기가 있다. 타인에게 보여줄 수 없는 일기는 자기를 치유하는 글인 경우가 많고, 보여줄 수 있는 일기는 자기과시의 욕망인 경우가 많다. 물론 모두 그런 것은 아니다. 나는 두 가지 일기를 다 쓰는 것을 추천한다.


‘보여줄 수 없는 일기’를 쓸 때에는 자기 신뢰감을 키우는 게 중요하다. 자신의 어두운 면을 정면으로 보며 솔직하게 실수를 인정하되 응원과 격려를 잊지 않아야 한다. 자신의 장점을 반복적으로 기억하며 건강하고 튼튼한 내면 근육을 키우는 것이다. '보여줄 수 있는 일기'를 쓸 때에는 냉철함이 중요하다. 독자를 의식해서 감정 표출을 절제해야 한다. 마음껏 감정을 마음껏 쓰게 되면 읽는 독자가 불편하거나 불쾌해질 수 있다. 감정의 여과지를 통과한 글만 보여줘야 한다. 거친 감정 언어들이 걸러져서 부드러워지면 아름다운 감정 언어가 된다.



[가]는 타인을 의식하면서 쓴 일기이고, [나]는 타인을 의식하지 않으면서 감정을 막 드러낸 일기로 부끄럽지만 공개한다.




[가]

2025년 1월 11일 토요일

행복한 책방 일산점으로 강원국의 북토크에 갔다. 작가는 차분하게 말하면서 재미와 위트를 잃지 않았다.


"운이었습니다." 작가는 이렇게 말을 꺼냈다. 이어서 '일'과 '사람'에 관한 에피소드, 그리고 글쓰기가 '기대 부응'이라고 말했다. '나'보다 '타인'에 더 비중을 두어 써야하는 것이 글이기 때문에 '기대부응'이라는 말에 공감이 갔다. 누군가는 글쓰기가 '순전한 이기심'이라고 했는데, 천진한 이기심 역시 기대부응과 같은 의미라고 생각한다. 자기를 드러내고 싶고 내가 이런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은 천진한 이기심 역시 타인의 기대에 대해 부응하고자 하는 내밀한 욕망일 것이다. 강원국 작가는 또 "말한 게 아까워서 씁니다."라고 했다. 여러 강연을 다니면서 말을 잘 하기 위해 글을 쓰고, 그 글을 바탕으로 말했던 것이 아까워서 다시 글을 쓰는 순환. 말과 글은 상호 변환한다.


나는 요즘 킴쉡의 글쓰기를 돕고 있다. 그는 식당을 운영하고 있으며 최근 글이 쓰고 싶어졌다고 했다. 우선 블로그에 글을 쓰기로 했다. 나는 첫시간에 킴쉐프의 살아온 삶을 들었다. 그의 삶을 몇줄로 정리해보고 그걸 바탕으로 블로그 제목과 카테고리를 정했다. 그러고 나서 킴쉡에게 휴대폰 마이크를 켜고 말을 하게 했다. 말이 글로 즉시 변환되면서 차자작 써지는 걸 보고는 아주 놀라워했다. 이십 년 넘게 육체적 노동을 해 오면서 열손가락에 굳은살이 두껍게 앉은 것을 나는 처음 상담할 때부터 보았다. 그 손에서 나는 감동과 존경심을 느꼈다. 새벽 6시부터 밤 10시까지, 주 1회 쉬면서 이십여 년 노동을 했다. 그리고 지금 황금 같은 휴일에 글을 쓰는 것이다. 나는 킴쉐프의 손을 눈여겨보았고 그래서 직접 휴대폰 좌판을 치는 게 적합하지 않다고 판단했다. 말 할 것이 글로 바뀌고, 수정한 글을 블로그로 발행하자 그의 얼굴에는 기쁨으로 밝아졌다. 첫날 볼 때와 다르게 충혈된 눈도 맑아졌고 더 예뻐졌다. 말이 글로 바뀌면서 행복한 성취가 시작된 것이다.


말이 글로 바뀌는 세상. 나는 예전에, 아마 이십 대였던 것 같은데, 말을 하면 저절로 글이 써지는 기계가 나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었다. 그런 생각을 했었다는 것도 까맣게 잊고 있었는데 킴쉡을 보면서 떠올렸다. 이 얼마나 좋은 세상에서 사는가. 인공지능이라는 비서를 둘 수도 있는데. 우울에 빠지지 말아야겠다.


강원국 작가의 말 중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것은 '우울'과 '불안'에 관한 것이다. 낮은 자존감에서 오는 우울과 '나의 실체'가 들킬까 하는 불안. 그런데 집에 와서 생각해 보니, 뭔가 안 맞는다. 앞에서 "말한 게 아까워서 글을 쓴다" 했는데, 말하는 게 아까울 정도면 자존감이 낮은 게 아니라 높은 것이 아닌가.


나는 내가 말한 걸 안 쓰는 게 아깝거나 하지는 않다. 나는 아이들이 쓴 글이 아까워서 블로그를 운영하기 시작했다. 그러고 보면, 낮은 자존감이라는 것은 분야가 다른 것이다. 어떤 분야에서는 낮지만 또 다른 분야에서는 높은 것이다. 내게 있는 높은 자존감을 생각해 봐야겠다.




[나]

2025년 1월 11일 토요일

아주 춥다. 오늘은 일산 행복한 책방에 가는 날이다. 이곳에 가는 게 오늘이 네 번째다. 갔다가 집에 오면, '다시는 안 가야지' 하면서, 시간이 지나면 잊어먹고 또 간다. 이유는 단순하다. 너무 멀기 때문이다.


나는 이상하게 약속 장소에 가기 전에 꼭 그렇게 가기가 싫다. 그게 어떤 만남 무슨 모임이든 그렇다. 하지만 일단 그곳에 도착하고 만나면 '오길 잘했어' 그런다. 어떤 때는 당일에 약속이 취소되기를 은근히 바라기도 한다. 진짜로 취소가 되면 갑자기 자유 시간이 주어진 것처럼 느껴진다.


언젠가 누가 "I의 특징이 그렇다"라고 했는데 그 말이 위로가 된다. 나만 그런 게 아니구나 하는, 그냥 원래 그런 거구나, 내 성격이 이상한 건 아니구나. 그렇게 I의 특징이라는 걸 기억하고, 나는 내가 내 멱살을 잡듯이 하면서 간다. 나는 약속 잘 지키는 사람이고 싶으니까.


오늘도 역시 너무 멀었다. 올 때는 내가 가는 1호선 방향 열차가 너무너무너무 늦게 와서 거의 집에 오기까지 3시간이 걸렸다. 피곤하다. 하지만 좋은 말들이었다.


그런데 거기서 내 오른편에, 전에 나의 강의 시간에 참석했던 학생이 있었는데 내가 미처 알아보지 못했다. 내가 너무 멍청해서! 샤워하다가도 나 자신에게 화를 냈다. 그 학생에게 미안했다. 나는 한 가지에 집중하면 다른 주변을 잘 챙기지 못하는 것 같다. 바보다. 이러니 사회생활을 잘 못하지, 하는 등의 자기 비하가 시작되려고 했다. 그래서 잠깐 그 학생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혼자 기도처럼 했다. 기도가 실제로 학생에게 가 닿지 않더라도 어쨌든 내 마음은 편해졌다. 다음에는 주변을 더 세심하게 살펴야겠다.




오늘 당신의 마음을 세우는 문장은 무엇인가?



Interesting Reading, Theodor Kleehaas (German, 1854-1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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