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say 007. 쿄이의 시선
*이번 글은 두서없이 길게 늘어놓은 하소연
어제는 위로를 받고 싶었나 보다. 밤늦게 귀가하며 가장 편하게 생각하는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나 좀 힘들어'란 투정 어린 한마디 뒤로 1시간 20분 동안 친구의 고민과 한숨을 들었다. 마음이 헛헛하다 못해 아팠다.
그간 이런저런 일들을 겪으면서도 가까운 이들에게조차 마음을 제대로 털어놓은 적이 없는 거 같다. 내 고민에 대한 판단을 듣기 싫어서였을까, 속을 보여주는 게 겁이 났을까. 모두 혼자 삭이며 귀 안이 부어오르고 위경련으로 파리하게 누워서도 스스로에게 귀 기울이기보다, 친구들의 이야기를 무던히 들었던 거 같다.
오글거려서 늘 꼭꼭 숨겨두는 속내인데, 다정하고 싶었다.
각자의 고통은 오직 본인만 해결할 수 있음을 알기에, 그리고 그 과정이 꽤나 외롭고 아픈 걸 알기에 내 소중한 사람들은 힘들면 기대고 나쁜 걸 덜 어내며 곪지 않길 원했다. 그런 마음이었음 그냥 쿨하게 넘기면 되는데 나도 모르게 그들에게 어떤 기대를 했었나 보다. 난 그냥 필요할 때만 찾는 사람인가, 아무도 내 안부와 감정은 궁금하지 않은 건가 하는 야속한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카페에 나와 작업하면서도 불쑥 울컥한 마음이 올라와 몇 번이나 코 안이 저릿해졌다. 이제는 '남에게 귀 기울이려 애쓰지 말아야지'하는 차갑고 유치한 결심을 하다가 문득 얼마 전 퇴사하던 날이 떠올랐다. 3개월 정도의 아주 짧은 시간 동안 일을 하며 참 많은 번뇌가 있었는데, 참고 참다가 괴롭히던 문제와 정면으로 마주하면서 하게 된 퇴사였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직원들에게 히스테리를 부리던 실장은 내가 가장 어려서인지 업무 특성 때문인지 나에게 자주 억지를 부렸다. 그녀가 슬리퍼를 끄는 소리나 업무폰을 내려놓는 소리로 사람들은 짜증의 정도를 가늠했고 시시때때로 공기가 달라졌다. 사실 살면서 본 적 없던 캐릭터라 그녀의 언행에 막 화가 나기보다 신기할 때가 많았다. 그러다 어느 날 내 업무 공간에 들어와 쓰레기통을 뒤지는 기이한 행동 끝에 또 참신한 헛소리를 하는 걸 보며 속된 말로 야마가 돌아버렸다. 평소라면 짜증으로 도배된 징징거리는 음성들을 흘려버리고 그나마 업무에 관계된 말을 찾아내려 했겠지만 그날은 그게 굉장히 어이없고 고리타분한 노력이란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화풀이를 하고 싶은 거면 이유라도 성의 있게 만들어주시면 안 돼요? 제 사진, 제 업무에 대해 피드백하시는 거면 욕을 써도 그냥 들을게요. 근데 이건 정말 서로 자괴감 드는 일이잖아요. 이성이란 게 있는데"
그녀가 내게 습관처럼 내뱉던 어린애, 별로인 mbti, 그리고 내 지원서를 출력해 들고 다니며 말하던 물경력이란 키워드들을 쭉 씹어먹고는 따박따박 말대꾸를 했다. 장내가 얼마나 서늘해졌는지 모른다. 경험한 적도 없고 앞으로도 웬만해선 경험할 일 없을 거 같은 충돌을 보았다.
몰입하여 글을 쓰다 보니 굳이 할 필요 없는 이야기까지 쏟아버렸는데;;
다시 돌아와, 오늘 울컥하던 나를 다시 일으켜 준 건 그때 함께 일하던 동료였다. 마지막 인사를 나눌 때 그 언니는 갑자기 나를 안으며 '너도 힘든 걸 생각 안 하고 그간 너무 우리 얘기만 한 거 같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때 처음 주변 사람들이 보였다. 사실 그동안 구체적인 표현만 안 했지 우습게도 내가 제일 힘들다고 생각했다. 다들 자신의 무게를 감당하고 있단 걸 생각했다면 조금은 더 성숙하게 대처할 걸, 어떻게 할지 상의해 볼걸 하는 후회가 들었던 거 같다. 어쩌면 다정하고 싶은 마음에 다정을 꾸며낸 거지, 실제로 다정하진 않았던 거 같기도 하다.
사막에 우두커니 자란 선인장에게도 새와 동물들이 찾아오고 바람이 불며, 밤이면 그 위로 수많은 별들이 빛을 밝혀 준다. 이처럼 '나'의 곁에도 당연스러워 미처 자각하지 못할 뿐, 수많은 다정함과 따뜻한 시선들이 있음을 새삼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