쳇 베이커의 블루

essay 002. 쿄이의 시선 [Born to be blue]

by Kyoi



파란과 파랑에는 의외로 여러 의미가 숨겨져 있다. '잔물결과 큰물결', '순탄하지 않고 계속되는 어려움이나 시련'. 쳇 베이커를 한 단어로 표현하기에 딱 적합한 말이다. 그러나 영화 속 블루는 그의 슬픔만이 아닌 우리의 슬픔을 담고 있는 느낌이었다. 그와 똑같은 고통을 갖고 있진 않아도, 누구나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고독과 불안 하나쯤은 지니고 있으니 말이다. 그리고 영화는 그의 사랑을 따라가며 보는 이로 하여금, '저 순간들이 사라져 버리면 어떡하나' 조바심을 내게 한다.


"꼭 엄마 자궁으로 돌아간 느낌이야" 오프닝 속 쳇의 대사를 듣는 순간, 이상의 소설 <날개>가 떠올랐다. 아내가 매춘으로 벌어다 주는 돈을 받으며, 이 돈의 출처가 어디일지 매일을 공상에 젖어 사는 주인공. 그의 좁은 방안이 꼭 엄마의 자궁같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때 자연스레 푸른 벽지가 발라진 방을 연상하며 문장을 읽어 나갔다. 왜 엄마의 자궁같은 공간을 당연스럽게 파란색이라 여겼을까?


<본투비블루>의 파란색은 시간에 따라 톤을 달리하며, 날카로움과 따뜻함, 우울의 감정을 혼재하고 있다. 쳇은 <날개>의 주인공과는 전혀 다른 캐릭터지만, 늘 그를 고통 속에서 품어주는 제인은 물과 같은 푸른 색 의상을 자주 입고 나온다. 우리는 물을 그릴 때 으레 파란색으로 칠하는데, 생각해보면 모든 인간이 비롯되는 곳이 바로 어머니의 양수, 즉 '물'이다. 때문에 <본투비블루>의 블루는 그의 우울과 고독만을 보여주는 게 아니라, 제목처럼 태생에 대해서도 이야기하는 것이라 본다.


쳇에게 음악을 하는 무대는 곧, 가장 안락하고 자양분을 얻을 수 있는 어머니의 자궁같은 곳이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제인과 헤로인은 각각 그의 세계에 전부인 무대를 채우는 양수가 된다. 쳇은 따스하고 포근한 물결을 외면하고, 결국 쓸쓸하고 외로운 물웅덩이에 잠식되어 버린다. 어떤 작가는 어머니의 칼질이 '나'를 살 찌웠기에, 우리의 몸 안에는 무수히 많은 칼자국이 있을 거란 말을 했다. 주삿바늘로 스스로를 찌르며 만든 낭만이어서 그런가, 그의 음악은 늘 처연하고 비오는 날마다 찾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