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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의예니 Nov 26. 2023

만두도 행복할 권리가 있다.

강아지에게도 팔자란 게 있을까?

헬스 pt를 받은 지 어느덧 3개월이 넘었다.

pt를 끝나고 집에 가는데 위에서 "멍멍" 강아지 짖는 소리가 났다.

"선생님~ 방금 강아지 소리를 들었어요."

설마 무서운 강아지가 옥상에서 내려올까 봐 졸아서 말했다.

"응. 관장님이 강아지를 키워."


그 순간 "개"가 아니라"강아지"라는 반가운 단어에 헐레벌떡 바로 위층인

옥상으로 달려갔다.


그런데 반가운 마음보다 보자마자

'진짜 불쌍해 죽겠다.'라는 마음이 들었다.


채 1.5평 정도 되려나?

옥상 입구에 예쁜 웰시코기가 세상에서 제일 슬픈 표정으로 힘 없이 축 쳐져서 계단에 있는 철봉 너머로

나를 바라보고만 있었다.

"아리야~ (첫날은 아직 이름을 몰라 아리가 잘 어울릴 것 같아 내가 지어 불렀다.) 너 왜 여기 움츠리고 있어? 응? 안 심심해?"


 작게 열린 옥상으로 바람 냄새를 맡게 해주고 싶어서 한 바퀴를 같이 돌았다. 제법 똘똘한 게 여기저기를 얼마나 재빨리 한 바퀴를 돌아다니는지, 나를 많이 기다렸다는 듯이 사랑스러운 눈으로 올려다보았다.


 '아리'를 보는데 마치 나를 보는 것 같았다.

나는 고향도 대도시고 거주도 도시에 하지만, 10년째 시골 학교에서 근무를 해야 해서

매 주말마다 출근을 위해 짐보따리를 싸서 시골 끝자락에서 도시로 넘어가는 곳의 경계선에 있는 나의 집으로 미리 향한다.

 

 첫 해부터 그 짐보따리 싸서 들고 가는 것에 얼마나 서러운 폭풍 같은 눈물을 흘렸는지 모른다. 첫 해에 발령받은 시골로 출근할 때는 운전이 미숙해 시외버스를 타고 일요일마다 오후 3시쯤 내려갔는데, 마이클 부블레의 'home'이라는 노래를 들으며 차창밖을 두들기는 빗소리와 함께 파묻혀 주르륵 눈물을 흘리고는 했다. 운전을 하기 시작하면서, 일요일 오후 4시쯤만 되면 짐을 싣고 차 백미러로 점점 멀어지는 배웅하는 엄마의 모습을 볼 때마다 또 어찌나 많은 눈물을 혼자서 삭여냈는지 모른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사람 소리가 그리웠고 고등학교, 대학교 때는 공부만 해서 이제 좀 즐겁게 살아보고 싶을 때쯤 문화와 더 먼 곳으로 가게 된 것이었다. 마치 나의 10년은 웅녀가 동굴에서 얼마만큼의 마늘을 먹으며 참으면 사람이 되는지 실험을 하는 과정과 같았다.


"나는 커서 김용택 시인 같은 산골짜기의 선생님이 되고 싶어."

라고 했던 말이 정말 실현될 줄 꿈에도 몰랐다. 그래서 말을 조심해야 하나 보다. ^^

물론 사람마다 자연을 좋아하고 시골 생활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지만, 정말 공부만 하던 나는 이제야 문명을 즐겨보고 싶을 쯤에 아주 더 멀리 귀향 가듯 문명과 멀어진 곳으로 가게 된 것이다. 주위에 아무것도 없는 6시쯤 되면 모든 불이다 꺼지는  시골에서의 외로움을 달래기 위하여 발령 첫 해에는 누워서 지친 맘에 잠을 일찍 청했다. 그렇게 자고 일어나도 밤 9시였다. 그럼 일어나서 엉엉 울며


"하느님. 제게 왜 이런 시련을 주시나요. 정말 너무하십니다. 신규교사로서의 설렘과 기쁨을 저에겐 누릴 자격도 없나요. 왜 잠을 자도 자도 9시밖에 되지 않았나요." 하며 누워서 눈물로 이불을 다 적시고는 했다.


 첫 학교에 발령받았을 때도 일화가 있다. 아빠가 "너의 첫 학교니 출근 전에 한 번 가보자." 해서 꼬불 꼬불 산길을 따라 학교에 도착했다. 아즈막한 2층자리 학교를 한 바퀴 둘러보고는 설레는 마음보다는 사실 속상한 마음이 더 컸지만 부모님이 속상해할까 봐 그 마음마저 삼키며 고개를 축 늘어뜨렸다. 그런데 마침 주위에서 "음메~~~~"하며 소가 우는 소리에 나도 모르게 엉엉 미친 듯이 소를 따라 울었던 기억이 난다.


무튼 , 시골 생활은 마치 강아지 "아리"가 갇혀있는 세상과 같이 나도 철창에 갇힌 듯했다. 시골 생활을 극복하기 위해서 요가도 해보고 명상도 해보았지만, 명상을 하려고 요가매트에 누우면 마음을 비우기 위해 하는 명상이 슬픈 마음으로 더 채워져서 매트 위에서 또 소리 내어 서러움의 눈물을 쏟아내고는 했다. 그렇게 5년이 지나고 6년이 지나고 한 해 한 해가 어떻게 흘러갔는지 모르겠으나 어느덧 나는 10년째 시골생활의 교사가 되고 있다. 이런 생각을 많이 했다. 아니 have been -ing라는 시제가 딱 지금 상황과 맞을 정도로 이런 생각을 안 하려고 하는데 들 수밖에 없이 여전히 힘들어하며 극복하고 수양하며 살고 있다. (다른 타 시도로 결혼을 하지 않는 이상 이동이 쉽지 않은 환경이므로)


 '언제쯤 나는 이 시골을 탈출할 수 있을까. 정말 시골 학교는 어둠과도 같구나. 점점 더 시계가 과거로 돌아가는 듯한 느낌과 바보로 살아야 학교 생활을 편하게 할 수 있구나. 정의롭게 자꾸 잘 못 된 것이 눈에 보이는데 자꾸만 시대가 역행하는 듯한 느낌의 관리자들의 말을 아무도 소리 내지 않고 묵묵히 따를 때마다 너무너무 미칠 듯이 화가 나는구나. 내가 바보가 되는 느낌이 아니라 정말 살아있는 사람이 되고 싶은데 그럼 매를 맞는구나. 나 같이 이렇게 재주 많고 똑똑한 애를 왜 이렇게 시골에다 데려놓았을까.'


이런 많은 현실과 나를 괴롭게 하는 생각의 뫼비우스의 띠에 갇혀 나는 정말 마음의 병을 앓으며 힘든 시간을 보냈다. 그런데 정말 마늘 한 접은 100개니 한 달에 마늘 한 접을 먹는 기분으로 9년 3개월 동안 나는 무려 111접의 마늘 즉 11,100개의 마늘을 먹을 때쯤이야 나를 놓기 시작했다. 


 '이렇게 잘난 나를 여기 갖다놓다니'라는 원망의 생각부터 바꾸기 시작했다. 수동적인 나가 아니라 적극적이고 주체적인 나가 되기로 했다. 내가 시험의 결과와 많은 작용과 선택으로 인해 여기 온 것이고(사실 나는 이 시골 지역을 희망 원서에 쓰지도 않았지만) , 나는 직업을 일찍부터 합격해서 가지게 된 것이니 지금부터 가지고 있는 것에 초점을 두고 내 삶을 내가 바꾸자!라는 생각으로.


 덕분에 나를 탐구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나는 요리를 혼자서 만들어 예쁜 접시에 만들어 내는 게 나를 위한 하루의 선물이었고, 나는 그림을 좋아했고 그림에 생각보다 많은 소질이 있었으며 늘 마음속에 떠다니는 많은 생각들을 붙잡아 이렇게 글로 흔적을 남기기 시작했다. 내 마음에 꼬여있는 수많은 전선들을 하나둘씩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살아가고" "살아내 가는 법"을 스스로 터득하며 사람이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인간의 삶은 이처럼 주체적으로 '선택'을 하고 '변화'를 줄 수 있지만 강아지는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가? 길거리에 돌아다니는 강아지는 덥고 추운 날씨에도 에어컨바람이나 히터바람 한 번 쐬지 못하고 먹을 것을 찾아다닌다. 그 집이 없는 강아지는 태어날 때부터

"나는 길 강아지가 되어야지." 선택한 것이 아니다.

그럼 그 강아지들도 마음 수양을 꾸준히 해서 행복하도록 노력해야 하는가? 아니면 강아지들은 '나는 왜 저기 저 집의 사랑받는 애완견이 아니라 길 강아지일까?'처럼 다른 강아지와 비교를 하지 않기 때문에 그 자체로 행복할까?


 잘 모르겠다. 어쨌든 '아리'라는 강아지의 원래 이름은 '만두'였다. '만두'는 7년간 한 번도 산책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늘 옥상에 들어서기 전에 있는 그 조명 하나 없는 곳에서 누군가가 오기를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그래서 헬스장 강아지이지만 역설적으로 살이 엄청 쪄 있었다.


"그럼 주말엔 관장님이 데리고 가세요?"

물으니까, 털이 너무 빠져서 집에 데리고 가지를 못 한다고 하셨다.


정말 너무했다. 인간이 너무한 것 아닌가. 그럼 강아지를 데리고 오지를 말던가. 저 강아지의 세상에서 제일 슬픈 표정이 느껴지지도 보이지도 않는가. 사람들은 아무렇지 않게 그 강아지가 있는 옥상 입구를 통과해서 옥상에 담배를 피우러 갔다. 그럼 그 담배 연기마저도 우리 '만두'가 다 맡아야 하는 것이었다. 내가 너무 오지랖인 것 같아 관장님께 원망의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그렇지만  만두의 견생을 아는 순간 집에 돌아가는 길 내내 마음이 너무 쓰였다.


'너는 왜 이곳의 강아지로 왔니... 네가 선택한 것도 아니고 선택당한 것인데... 참 마음이 아프다..'


운동을 마치고 가는 밤 길에 '만두'의 슬픈 눈이 아른거려 강아지 물품을 파는 가게를 찾아 만두가 좋아할 만한 장난감과 간식을 샀다. 그다음 날은 그 영리한 '만두'가 나를 보더니 입으로 뭔가를 툭 떨어트렸다. 그것은 바로 플라스틱으로 만든 공이었다. 자기한테 던져달라는 거였다. 그 녀석이 공을 던져 줄 때마다 어찌나 헥헥 거리며 빠르게도 잘 물고 오는지 보통 영리한 게 아니었다.


'에고... 이렇게 영리한데 너는 왜 늘 이렇게 누군가 오길 기다리기만 하며 갇혀있어야 하니... 도대체 너 팔자가 왜 이러니... '


마치 과거의 한없이 새장에 갇혀있던 내 모습을 보는 것 같아 만두의 마음에 내 마음이 투영되어 들어갔다 나오곤 했다. 사온 장난감을 주니 얼마나 행복해하던지 비로소 나를 향해 배를 까고 웃기 시작했다. 그 강아지의 웃는 모습을 처음으로 보는데 어찌나 눈물이 나는지...


'만두야.... 너도 행복할 권리가 있다. 너도 죽기 전엔 행복이란 걸 알고 느껴봐야 하지 않겠니... 내가 뭘 어떻게 도와주어야 할지는 참 고민이 되지만 내가 여기 다니는 동안은 네가 그동안 못 느낀 행복 실컷 느끼게 해 줄게.'

만두를 쓰다듬으며 따뜻한 위로의 말을 전했다. 그 말이 내 귀로 다시 들어가 내 영혼을 쓰다듬기도 했다. 나 스스로에게 하는 말 같기도 했다. 그렇게 우리는 통했다. 주말에도 집에 가지 못하고 지금도 누군가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을 만두가 보고 싶다. 보고 싶은 것 이상으로 너무 마음이 안쓰럽다. 강아지도 인간처럼 주체적인 존재가 되어 자신의 삶을 선택(극복)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진다면 얼마나 좋을까.


 내가 느낀 외로움이 인간이 되기 위해서 던져주는 하늘의 과제라 생각하지 않는다. 누군가가 시골학교에 근무를 해야만 하고, 그 자리에 내가 간 것일 뿐이다. 만두도 더 나은 강아지가 되기 위해서 신이 1.5평의 공간에서 깨달음의 과제를 주기 위해 있는 것이 아니다. 정말이지 강아지는 비교를 하지 않으니 행복할 것이다라는 가정이 정말 틀린 것 같다. 만두는 분명히 너무나 슬픈 표정으로 무기력함에 취해있었다.


처음으로 집에 갈 때쯤 멀어지는 나에게 활짝 웃어주던 만두를 떠올리며 이 글을 쓴다.

'만두야 너도 행복할 권리가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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