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을 통해 나를 살피다
이혼을 결정한 지 한 달이라는 시간이 지났고,
지난주 금요일 가정 법원에서 오랜만에 법률상 남편을 만났다.
그전 날부터 마음이 싱숭생숭한 게 잠이 잘 오지를 않았다.
이혼 서류를 제출하고 나면 마음이 후련할 줄 알았는데 오히려 이혼 서류를 제출하고 한 달 만에 남편을 만나고 나니 또 마음이 힘들어졌다.
뭐 때문에 힘든지 정확히 짚어낼 수는 없지만
이제 내가 진짜로 이혼을 했다는 생각,
사회적으로 이혼녀라고 인식된다는 생각,
내가 이혼을 하게 될 줄이야라는 생각,
연애 때 잠깐 좋았던 기억이 이렇게 아픔이 되어 돌아온다는 아쉬움,
이제 내가 이혼녀라고 하면 새로운 사람을 만날 수 있을까라는 걱정 등 오만 감정과 생각이 실타래로 엮여 나를 칭칭 감고 있었다.
잠도 잘 오지 않아 수면제 없이는 버틸 수가 없었다.
그런데 “아는 변호사”라는 이지훈 변호사님의 글을 읽고 조금은 이혼에 대한 실패감과 패배감으로 한 발짝 나올 수 있게 된 오늘이다.
우선 문제점을 짚어보면 혼인신고할 때 나는 확신도 없이
“엄마가 이렇게 행복해하는데 내가 맞추어 살아가면 되겠지.”라는 남편에 대한 불안감을 엄마에 대한 효도를 한답시고 덮어버렸다.
중대한 삶의 선택의 기로에서 선택의 주체가 내가 아니었던 것이었다.
이지훈 변호사가 말한 것처럼 “결혼은 신중하게, 이혼은 신속하게” 했었어야 했는데
“결혼도 신속하게, 이혼도 신속하게 ” 처리해 버렸다.
(이혼을 신속하게 결정한 건 아주 잘 한 선택이라 생각한다.)
내 삶에서 생각해 보면 공부도 아픈 엄마를 위해서 내가 할 수 있는 게 사회적 성공이라 했을 뿐,
내가 재미있고 하고 싶어서 했던 것들이 없었다.
그리고 나는 외동이라 늘 집에서 외로움에 휩싸여
“인생은 왜 이렇게 외로운 것일까?”라는 본질적인 물음을 껴안고 살았다.
거기다가 평일에는 늘 시골 환경에 휩싸여 근무를 하고 있으니 어찌나 외로웠는지 모른다.
그래서 누군가 나타나면 쉽게 사랑에 빠지기 일쑤였다.
결혼도 마찬가지였다.
이제 결혼을 할 적령기 아니, 더 늦으면 결혼을 못 할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고
이 남자면 안 되겠다는 확신도 없이, 다 이렇게 때가 돼서 결혼하는 거겠지라고 생각한 결과가 이렇게 이혼을 부른 것 같다.
다 내 선택의 문제였던 것이다.
이혼을 하고 내 삶은 더 이상의 바닥이 없을 줄 알았는데 바닥의 정점을 찍었다.
죽은 사람처럼 늘어진 채 더 이상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지만,
끊임없는 악순환을 막기 위하여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읽고 배웠다.
그래도 이 기분은 나아지기는커녕 삶에 대한 의미와 물음을 매 순간 나에게 던졌다.
매일매일이 살고 싶지가 않았다. 차라리 죽는 게 낫다고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비로소 오늘에서야 이 칡덩굴에서 한 걸음 나오게 된다.
내 선택에 대한 자책감과 자괴감도 그만 갖고, 근본적인 외로움이 내 삶을 굴복하게 좌지우지하게 내버려 두지 말자.
인생은 원래 고통이다. 외로움은 늘 동반한다. 하지만 그게 다가 아니다.
남은 인생 70살까지 산다 해도 딱 절반쯤 왔다.
빨리 누군가를 만나서 이 외로움을 다시 또 덮고 싶었으나, 그 어리석음에서도 헤어나와야겠다.
남은 절반의 인생은 수동적으로 인생의 씁쓸함을 맞고만 있지는 않겠다.
“내”가 없었던 인생에서 내가 어떤 사람이고, 무엇을 좋아하며,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
주체적인 나, 즉 “이립”을 시켜 인생을 꾸려나가야겠다.
“나”를 찾아가는 자유로움, 외로움을 태연하게 받아들이며 “절차탁마” 하는 순간순간을 살아가야겠다.
“이혼”이라는 큰 상처를 통해 어쩌면 내 안의 갇혀있는 알껍데기를 깨고 진정한 나와 마주하며 세상의 남은 반쪽 도화지에 인생을 새롭게 항해해보려 한다.
이 세상의 이혼의 상처로 오늘도 앓고 곪아가는 사람들이 모두 다 힘을 내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