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내 마음을 말하자면 "너무 힘들어"
거친 물살을 헤치고 오늘도 하루를 헤엄쳐 나간다.
나의 하루는 수영을 할 줄 모르는 사람이 어떻게든 앞으로 나아가 보려고 제자리에서 물장구를 치는 것 같다. 제자리에 있는 듯 하지만 개헤엄으로 조금씩 앞으로 가고 있다. 물살이 내 인생에 개입하여 나의 팔의 힘을 저항 해대지만 오늘도 끈질기게 노력의 힘을 믿고 헤엄쳐 나간다.
마음속에 외로움이 항상 둥둥 떠 있다. 이 외로움을 예전에는 잠식시키려 했다면 이제는 늘 함께 안고 갈 내 인생의 구름이라 생각한다. 구름이 커지기도 하고 작아지기도 하면서 날씨처럼 함께 가는 것이다. 그러다 구름이 커지면 눈물의 응결핵이 모여 왕창 소나기를 내리기도 한다.
사연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모두 다 알지 못 하지만 마음속에 혼자만의 고민과 고독을 앓고 갈지니. 어릴 때부터 나는 꿈은 소박했지만, 꼭 이루고 싶었단 게 있었다면 행복한 가정을 누리며 아이를 키우면서 화목감과 안정감을 느끼며 살아보는 것이었다. 매일매일 맛있는 밥을 차리고 식탁에서 이야기를 나누며 가족과 함께하는 그런 주말. 그런데 그게 나한테 그렇게 어려운 건지 참 시집은 꿈을 꿀수록 멀어지기만 했고, 그렇게 결혼이 하고 싶었으니, 실수로 혼인 신고를 빨리 해버려 이렇게 이혼을 하게까지 되었다. 친구들은 이미 결혼을 해서 4~5살의 아이를 키우며 행복하게 살아가는데 난 평범한 게 산다는 게 뭐 이리도 어려운 건지. 노력으로 안 되는 게 있다면 사랑이더라. 그런데 내 주위에 결혼한 친구나 언니들은 오랜만에 연락을 하면 늦은 나이임에도 아기를 갖지 못해 또 그 고민으로 우울해하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언니. 내 나이를 봐. 난 아직 결혼도 제대로 못 했어. 내가 결혼해서 아기 낳아도 엄청 늦을걸? 그러니까 늦은 거 아니야.” 누군들 그 입장이 되어보지 않으면 그만큼의 심정을 똑같이 못 느끼듯이 나의 위로가 조금은 도움 되었으려냐 모른다.
우리의 삶에는 각자의 템포가 있는듯하다. 하지만 한국 사회에서 보이지 않는 보편적인 기준(예를 들어 여자가 30살을 넘기면 결혼하기 힘들다, 아이는 35살 전에 낳아야 좋다, 취직은 30살 전엔 해야 한다. 이왕 만나는 것이면 재혼녀나 재혼남보다 초혼남녀가 배우자로서 좋다 등 )들이 다른 사람과 비교하게 되며 초조하고 불안해지게 만든다. 나도 그렇다. 요즘엔 이런 생각이 든다.
내가 외국에서 산다면, 이혼을 했다는 사실이 이렇게 가슴을 후벼 파듯이 아픈 상처가 되었을까? 외국 사람들은 이혼은 그냥 결혼해서 맞지 않아서 하는 이별이고, 할리우드 식으로 이혼한 전 남편과 스스럼없이 지내기도 한다. 그리고 이혼을 했다는 사실이 낙인 이론으로 찍히지도 않고 개의치 않아한다. 한국 사회에서는 ‘이혼’이라는 단어가 아직은 “할 수도 있지”라는 인식에서 먼 것 같다. 하지만 사회적 시선은 그다지 신경 쓰지는 않는다. 내가 아파서 그렇지. 그렇다면 나도 지금 몸은 한국에 있지만, 생각은 외국에 있다고 생각하고 “이혼? 할 수도 있지. 살아도 보기 전에 상대방과 맞지 않으면, 그게 오히려 나은 걸 수도 있어. 해보니까 아는 거지.”라고 생각하고 마음의 깊은 구덩이에서 나와야겠다.
각자의 고민들이 오늘도 잘 해결되었으면 한다. 소소하게 별 탈 없는 하루하루가 , 나의 가족이 건강하다는 사실이 큰 행복임을 느끼며 살아야겠다. 누구의 인생은 4분의 3박자 왈츠같고, 어떤 이의 인생은 ‘아웃사이더’처럼 빠른 비트의 랩 같으며, 내 인생은 해금과 아쟁이 울려대는 산조나 아주 느린 종류의 구슬픈 가곡같다. 야구도 9회 말 2 아웃이 제일 묘미이듯이, 내 인생도 얼마나 9회 말이 즐거울지 기대를 하며 물살을 가볍게 헤엄쳐 나간다. 언젠간 배영으로 유유자적하며 내 인생을 향유할 그 힘을 나는 믿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