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쁜 삶 속에서 느끼기 어려운 행복들
어제 교실에서 아이들이
가수 황가람의 “나는 반딧불”이란 노래를 틀어달라고 했다. 처음에는 이 노래를 듣고 자극적이고 도통 무슨 뜻인지 모르겠는 요즘 노래들에 익숙해서, 옛날 노래인줄 알고 아이들에게
“아이고. 이런 노래를 어떻게 아냐? 너희들 마음속에 애 늙은이가 있는 거 아니야?”라고 했다.
그랬더니 한 아이가
“아빠가 좋다고 요즘 이 노래만 들어요.”
라고 했다. 그런데 웬걸. 이 노래가 옛날 노래도 아니고서정적인 가사에 요즘 차트 석권을 하고 있었다. 톡톡 튀는 귀에 박히는 멜로디가 있어야 인기를 누릴 수 있는 요즘 노래들 속에서 옛 서정을 발견한 것 같아 귀가 편안해졌다. 이 노래 가사를 살펴보면 마치 시 같다. 어떻게 반딧불이(개똥벌레) 입장에서 이런 생각을 할 수가 있을까.
“나는 내가 빛나는 별인 줄 알았어요
한 번도 의심한 적 없었죠
몰랐어요 난 내가 벌레라는 것을
그래도 괜찮아 난 눈부시니까
하늘에서 떨어진 별인 줄 알았어요
소원을 들어주는 작은 별
몰랐어요 난 내가 개똥벌레라는 것을
그래도 괜찮아 나는 빛날 테니까
나는 내가 빛나는 별인 줄 알았어요
한 번도 의심한 적 없었죠
몰랐어요 난 내가 벌레라는 것을
그래도 괜찮아 난 눈부시니까
한참 동안 찾았던 내 손톱
하늘로 올라가 초승달 돼 버렸지
주워 담을 수도 없게 너무 멀리 갔죠
누가 저기 걸어놨어 누가 저기 걸어놨어
우주에서 무주로 날아온
밤하늘의 별들이 반딧불이 돼 버렸지
내가 널 만난 것처럼 마치 약속한 것처럼
나는 다시 태어났지 나는 다시 태어났지
나는 내가 빛나는 별인 줄 알았어요
한 번도 의심한 적 없었죠
몰랐어요 난 내가 벌레라는 것을
그래도 괜찮아 난 눈부시니까
하늘에서 떨어진 별인 줄 알았어요
소원을 들어주는 작은 별
몰랐어요 난 내가 개똥벌레란 것을
그래도 괜찮아 나는 빛날 테니까”
살아가면서 어릴 때는 장래희망을 가지면 다 이뤄질 줄알았다. 우리 때는 보통 학교에 장래희망을 적어내면 대통령이 그렇게 많았다. 살아보니 장래희망과 직업이 일치하게 되기가 쉽지는 않았다. 오로지 열심히 공부를아픈 엄마를 위해 했고 그에 맞추어 대학을 가서 선생님이 되었다. 의미 있는 직장이지만 사실 갈수록 심해지는 민원과 어려움에 허덕이며 일주일, 한 달, 일 년을겨우 살아냈다. 그렇게 나도 직장인이 되어가고 있었다. 나는 내가 별인 줄 알았는데, 정말 반딧불이처럼 조직문화에 녹초가 되어 작게만 느껴졌다.
내가 10년간 살아낸 일주일은 이렇다.
일주일 (부정형)
월요일엔 일요일 실컷 놀다 출근 때문에 예민하고
화요일엔 불금이 머나먼 것 같아 화나있고
(했던 말 스무 번도 더 하게 해서 지쳐있고)
수요일엔 목 빠지게 금요일을 기다리고
목요일엔 불금날만 바라보며 버티고
금요일엔 이틀 반 쉴 생각에 뭘 해도 용서가 되고
토요일엔 피로로 지쳐 한없이 침대에서 뒹굴고
일요일엔 다음 출근 할 생각에 아침부터 암울하네
(도대체 언제 즐기나?)
나의 눈부심을 잊고 살았다. 그저 좋은 사람을 만나 남들처럼 결혼을 하고 안락함을 누리며 행복하게 사는 게 나의 꿈이었다. 그런데 그 꿈이 파편조각이 되어 부서져 버리자 견뎌낼 수가 없었다. 그것도 평범하고 쉬운 게 아님을 알았다.
“나는 반딧불”이라는 노래를 듣고 오늘 시 하나를 접했다. 출처는 인스타 그램에서 봐서 정확히 알지는 못 하는데 위트 있지만 동시에 세월의 깊이가 느껴져 공감이갔다.
“부부란
20대에는 서로 사랑으로 살고,
30대에는 서로 정신없이 살고,
40대에는 서로 미워하며 살고,
50대에는 서로 불쌍해서 살고,
60대에는 서로 감사하며 살고,
70대에는 서로 등 긁어주며 산다.
결혼은 순간이지만, 부부는 평생이다.”
50대가 되어야 비로소 감사함을 서로 느끼다 60대가 되면 동반자가 비로소 동거인이 아니라 세월을 함께 살아가는 유일한 나의 벗이라 느껴지는 지혜가생기는 것일까. 60대쯤 내 인생은 어떨까 싶다. 이대로똑같이 살아도 괜찮은가 물음을 던졌을 때, 사실은 no다. 더 행복하게살고 싶다. 직장 생활에 찌들지 않은 채. 그래서 일주일을 다시 나의 80프로의 시간을 몸 담고 있는 학교 생활에 맞추어 긍정회로를 돌려 써 보았다.
일주일 (긍정형)
월요일엔 출근해서 바쁘게 살다 보니 근심이 잊히고
화요일엔 일주일 시작의 적응이 금방 돼서 좋고
수요일엔 일주일 중 4교시하는 날이라 설레고
목요일엔 금요일이 하루 남아서 좋고
금요일엔 화려한 네온사인 사이를 느긋하게 걸을 수 있어 좋고 (평일에는 시골에 근무하니까)
토요일엔 창가로 들어오는 햇살을 실컷 즐길 수 있어 좋고
일요일엔 늦잠을 하루 더 잘 수 있었다는 사실에 행복하네
이 얼마나 같은 사실을 두고도 행복할 수 있는가.
또 일주일이 아니라 각 10대씩 끊어 생각하던 모든 삶의 부담도 이와 같이 바꿀 수 있다.
60대가 되어서야 (부정형)
20대엔 공부하느라 바쁘고,
30대엔 취업해서 돈을 모으고 직업에 적응해서 살아가느라 바쁘고,
40대엔 아이를 키워내느라 바쁘고,
50대엔 아이를 대학 보내고 시집보내느라 바쁘고,
비로소 60대에 바쁜 세월 속 지속되는 느린 템포의 시간이 잦아들겠지.
(내 인생은 언제 살아보나?)
60대가 되면 (긍정형)
10대엔 내 모든 열을 불태워 공부할 수 있었네
20대엔 내 지성을 쌓아 스스로 돈을 벌게 되었네
30대엔 사랑하는 자식과 함께 할 수 있음에 행복이 넘치네
40대엔 자식이 드디어 자기가 원하는 삶을 찾아 좋고
50대엔 쌓아온 재산으로 팔도강산 실컷 여행을 다닐 수 있어 좋고
60대엔 깨닫지 못 한 지혜가 보여 삶을 누리네
지금도 살면서 맞은 의도치 않은 어쩔 수 없던
풍파에 또래보단 더 깊어진 나이지만, 60대가 되어 돌아보면 , 또 지금의 행동과 선택도 그저 어린 나였음을 깨닫는 날이 오겠지 싶다.
지금 살면서 체화된 깨달음도 많지만, 60대가 되어 먼발치서 보면 ‘지금의 깨달음은 작은 조각에 불과한 날이 오겠지’ 싶다.
삶이 영원하지 않단 걸 알면서도, 내일과 미래가 영원히 지속될 것 같기에 지금 여기 암흑 속에 갇혀있는 것이 어리석음을 알면서도 과열되어 살아가는 하루하루가 있겠지.
나아가지 않고 늘 제자리걸음인 것 같은 단순하고 답답한 일상이지만 먼발치서 보면 내가 온 발걸음이 발자국이 헛된 것이 아니고 의미 있었음의 자취임을 알겠지 한다.
그렇게, 지금은 개똥벌레처럼 작고 미약한 존재 같아도, 내가 빛나는 존재임을 잊지 않고 꿈을 안고 좇으며 살아야겠다. 60대가 되어서야 아는 지혜가 아니라 60대의 관조적인 눈으로 삶을 느긋하고 여유롭게 기다리며 살아야겠다. 하루하루를 되새김질하듯 사는 게 아니라 다양하고 특색 있고 개성 있게 긍정적으로 살아가야겠다.
살아내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야겠다.
옛날에 웃픈 일화가 하나 있는데 그것을 하나 풀고 이 글을 마치고자 한다. 학교 게시판을 신규 2년 차 때 꾸미는데 큰 별을 하나 붙이고, 교실 급훈으로
“별이 되어 빛나리”라고 대문짝 만하게 붙여놓았다.
옛날에 조인성이 한 드라마 중 “별을 쏘다.”가 인상 깊었었나 보다. 정말 아무 생각 없이 적은 급훈에 교감선생님이 공개 수업 다음 날 조심스럽게 우리 반에 찾아와서 말씀하셨다.
“선생님. 저 급훈은 무언인가 마치 하늘의 별인 고인을말하는 것 같아 바꾸는 것이 어떨까요?”
그때 정말 내가 얼마나 생각이 단순한지 알았다.
왜 그런 생각을 못 했을까. 아이들이 그저 별처럼 빛났으면 했다. 그 말씀을 듣고 급하게 급훈을 수정했던 기억이 난다.
무튼 모두가 짧지만 긴 하루를 빛나게 살았으면 한다. 그저 회사생활을 하는 사람이 아닌, 의미 있는 마무리를 지으며 잠에 들었으면 한다. 그리고 모두가 반딧불이처럼 작은 존재가 아니라 별처럼 크게 빛나는 존재임을 새겼으면 한다.
모두가 별이 되어 빛나리. . ㅎ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