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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상영변호사 Aug 11. 2020

삶의 세포가 된 아름다운 기억들

2012년 어느 날

오후에 사무실에 있는데, 군대 친구 현이 뜬금없이 오늘 저녁 당장 7시경에 광화문에서 환과 함께 만나자고 연락이 왔다. 항상 반가운 친구들이라 퇴근 후에 만나기로 했다. 옛날 기억이 떠올랐다.


대학 3학년을 마치고 군에 입대하였다. 당시에 유행하던 카투사 시험을 보았다. 합격은 되었는데 공교롭게도 다시 번역병이라는 신분으로 바뀌어 순수한 한국군으로 근무를 하게 되었다. 보통 카투사는 미군부대에 배속되어 미군과 같이 생활하는 것이지만 번역병은 훈련소 과정부터 완전히 달랐다. 


논산훈련소에서 일반 기술병들과 같이 훈련을 받고, 훈련 종료 후 국방부를 거쳐 한미연합군 사령부로 배치가 되었다. 이후 제대할 때까지 한미연합군 사령부에서 근무를 계속하였다. 친구 현과 환은 논산훈련소에 있을 때부터 같이 군 생활을 시작했고, 특히 현은 훈련소 내무반도 같이 생활하였다. 이러한 군대 동기 중에는 철과 덕도 있었다. 


22세에 입대한 나에게는 인생에서 정말 한참 무언가를 배우고 공부해야 할 시기였다. 하지만 군에 입대한 이상 대학시절의 온갖 고민거리는 다 떨쳐 버리고 신나게 젊음을 보내자는 마음을 먹었다. 지금 생각해 보아도 군대생활을 했던 시기는 어찌 보면 아무런 근심 걱정 없는 황금기였다. 


물론 낮에는 사무실에서 주어진 번역 업무를 하고, 밤에는 다시 내무반으로 돌아와 엄한 군기 속에서 상급 선임자들의 명령 체계 속에서 생활해야 했지만, 돌이켜 보면 그런 것들은 물리적인 힘듦에 불과하고 정신적으로는 자유를 만끽하는 시기였다. 


수요일 오후 전투 체육 날이나 주말에는 용산 포스트에 가서 군 동료들과 힘껏 축구나 농구 게임을 하거나 족구시합을 하면, 모든 피로가 말끔히 씻기는 기분이었다. 현과 환은 이와 같은 군 생활을 한미연합사에서 같이 보냈던 친구였다.


이제 퇴근할 시간이 되어 군대 친구를 만나러 사무실을 나섰다. 오랜만에 내 생활권인 교대역 주변을 벗어나 약속 장소인 을지로 입구 역을 향해 가기 위해 3호선 전철에 올라섰다. 약속 장소는 내가 군 복무를 마치고 직장생활을 하던 새한종합금융 주식회사가 있었던 건물 근처였다. 


IMF 당시 회사가 부도나고 명예퇴직하여 회사를 떠난 처지로 바뀌었지만 을지로 입구 주변은 내 직장생활의 근거지였다. 


을지로 3가 역에서 내려 을지로 입구 역을 향해 걸어가니 때마침 수많은 직장인들이 퇴근길에 있었다. 그야말로 넥타이 부대의 행렬 같았다. 젊은 남녀 직장인들이 커다랗고 화려한 건물에서 빠져나와 제 갈 길을 가고 있었다. 


세대가 바뀐 것을 실감하였다. 이곳에서 나도 넥타이 부대의 일원으로 위 집단 군중의 일원이었는데, 지금은 그 구성원에서 탈퇴하고 새로운 젊은 세대가 자기의 세대를 향유하는 것 같았다. 


드디어 약속 장소에 도착하여 환, 현을 만나 반갑게 저녁식사를 마치고 호프집으로 옮겨서 못다 한 이야기를 다 하였다. 아무런 사심도 이해관계도 없었다. 단지 그 옛날 젊은 시절을 군대에서 같이 보냈던 공감대 하나만으로 우리들은 그냥 기쁘기만 하였다. 


이제 각자 결혼하고 자녀들도 낳아서 벌써 대학 들어갈 나이가 되고, 특히 아들은 조만간 군 입대를 할 때가 되었다. 세월은 흘러가지만 그 속에 우리가 잉태했던 세대들의 세상이 활짝 펼치고 있었다. 


우리는 그들 새 세대를 위해 아직도 지금 열심히 일할 나이이고, 차세대들은 우리의 땀 속에서 그들의 세상을 꾸려가기 위해 열심히 살아간다.


군대 친구를 만나며 세월의 빠름을 느끼기도 하고, 우리 각자의 삶의 세포가 된 아름다운 옛 추억들을 다시 꺼내 담소의 즐거움을 누리기도 한다. 


한참 20대 초반의 시절을 지나가는 젊은 세대들이 앞으로 펼쳐질 세월의 아름다움을 기대하며 오늘을 기쁨으로 색칠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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