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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상영변호사 Aug 12. 2020

미래를 알 수 있을까

미래를 상대하여 돈을 벌려는 대표적인 것이 주식이나 부동산 투자이다. 투자자는 주식이나 부동산이 미래에 자신이 원하는 대로 가격이 변동할 거라는 예측을 하고 투자의 세계에 빠져든다. 예측에는 여러 변수가 개입된다. 투자는 그 변수에 대한 확률게임이다. 미래의 자산 가격이 실제로 그의 예측대로 움직인다면 그는 엄청난 이득을 얻을 것이다.


그런데 주식투자를 하다 손해를 본 케이스를 많이 보았다. 기관투자가가 아닌 개인에 국한된 이야기다. 일반인의 주식투자를 전문적으로 도와주는 증권사 직원들이 오히려 주식 때문에 망하는 경우도 많았다. 원금보장을 해 주겠다고 약속하며 모은 고객 돈으로 주식 투자하다 손해가 나서 파산신청을 한 증권사 지점장도 있었다. 주식 문제로 변호사를 찾아오는 사람은 십중팔구 주식투자로 손해를 본 자이다. 

     

김 씨는 변호사로 개업한 나의 첫 고객이었다.


그는 종합금융회사에서 근무하다 IMF 사태 때 다니던 직장이 부도나서 퇴직하였다. 이후 곧장 증권회사에 다시 취직하였다. 서울 한 복판인 명동의 증권사 지점장이 되었다. 금융영역에서 상당히 유능한 사람이었다. 그가 근무하는 명동지점에서는 역시 거액 투자자들이 주요 고객이었다. 몇 년 근무 후 그는 다른 직장으로 이직했다.


그런데 이직 후 얼마 되지 않아 그에게 소송이 걸렸다. 명동지점 근무 당시의 지점 고객 몇 명이 2000년 전후에 크게 유행하던 벤처붐을 따라 창업투자회사의 주식에 투자하였는데 손실이 발생했다. 손해를 입은 고객들은 그 당시 증권사의 지점장이던 그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나도 변호사가 되기 전에 같은 종합금융업계에서 근무한 적이 있었던 터라 그의 입장이 잘 이해되었다. 그는 IMF로 인해 많은 타격을 입었는데, 이번에 개인적인 소송건에 휘말리게 되어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았다. 상대방이 청구한 배상 요구도 억대의 금액이었다. 강남에 있는 그의 아파트는 상대방에 의해 가압류가 되었다.


잘 대처해야 했다. 상대방은 그를 상대로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 청구를 한 것이기 때문에 과실 비율이 중요했다. 약간의 과실 비율만 인정되어도 배상금액이 몇 천만 원 나올 수도 있었다.


투자는 대여금과는 달리 확정적인 수입을 보장해 주는 것이 아니다. 투자는 확정할 수 없는 미래의 가치를 예상하여 현재의 자기 돈을 상대방에게 맡기는 것이다. 당연히 그 미래를 보장할 수 있는 사람은 어느 누구도 없다. 당연히 주식투자에는 자기 책임의 원칙이 적용된다. 이익도, 손실도 모두 자기 책임이다. 다만 그 미래가치를 예상하는데 누군가 개입하여 투자자의 인식 형성을 방해하였다면 당연히 그 행위는 불법행위가 될 것이다. 그와 같은 방해 행위의 대표적인 것이 사기행위이다. 즉 투자자에게 거짓 정보를 제공하여 속이는 것이다. 그 경우에는 불법행위가 인정되어 배상책임을 져야 한다.


상대방은 그가 지점장이라는 사실에 초점을 두었다. 그가 창업투자회사에 대한 희망적인 투자 안내서를 지점 직원들에게 배포한 사실을 지적하였다. 재판에서 상대방은 자신과 친하게 지내면서 재산관리를 해 주던 명동 지점의 부장을 증인으로 내세웠다. 그 증인은 그와 명동지점에서 같이 근무하는 부하 직원이었는데 소송 당시에도 여전히 그 지점에서 근무를 계속하고 있었다. 상대방은 주식투자로 손실을 보게 되자, 아직도 명동지점에 근무하던 부장과 한편이 되었다. 그리고 그 부장을 빼고 지점장인 그만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그와 깊이 있게 상의를 계속했다. 그도 금융 분야의 전문가로서 매우 성실하게 준비했다. 상대방은 지점장인 그가 관리하던 자가 아니었다. 증인으로 나온 부장이 이전 직장 때부터 오랫동안 관리해 오고 있던 자였다. 지점장이던 그는 그 고객을 직접 만나거나 투자를 유치한 적이 없었다. 단지 그는 지점장으로서 투자 안내서를 만들었을 뿐이었다. 투자 안내서에는 투자자를 현혹시키는 확정적인 문구가 없었고, 단지 목표수익이나 주식배당 계획 등 변동 가능성을 암시하는 문구가 기재되었다.


지점장인 그가 고객들에게 직접적인 불법행위를 저지를 만한 요소가 없었다. 지점 부장이 그 투자안내서를 활용하여 고객들을 스스로 유치했을 뿐이었다. 자신들을 유치한 지점 부장에 대해서는 아무런 문제를 제기하지 않고서, 자신과는 직접적인 관계가 없었던 지점장 개인을 상대로 불법행위 책임을 주장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모든 점을 종합하여 변론을 준비했다. 물론 가장 큰 방어 논리는 주식투자의 자기 책임 원칙이었다. 상대방이 신청한 지점 부장에 대한 증인신문 절차에서 반대신문도 잘 마무리하였다. 그는 변론이 종결될 무렵 재판정에서 일어나서 재판장에게 떨리는 목소리로 자신이 불법행위를 저지를 만한 사람이 아니라는 점을 설명하였다.


1심 재판 결과는 잘 나왔다. 그의 과실비율이 거의 인정되지 않았다. 거의 90% 의 승소 판결이었다. 상대방이 항소를 포기하여 사건은 1심에서 확정되었다. 그의 집에 대한 가압류도 해제되었다. 그동안의 불안도 말끔히 해소되어하던 일에 집중할 수 있었다. 나의 첫 사건은 이렇게 좋은 결말이 났다. 


이 사건을 나에게 소개한 사람은 내가 다니던 새한종합금융회사의 상사였던 분이었다. 그분께도 면목이 섰다. 지금 생각해 보아도 어떻게 초짜 개업 변호사에게 자신의 절친한 친구의 사건을 맡기도록 소개했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나를 믿었던 상사분의 용기가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후 내 고객은 나에게 항상 고마운 마음을 간직하였고, 얼마 동안 명절 때마다 아이들 먹으라고 맛있는 일본제 과자를 선물로 보냈다. 아이들은 그 선물을 받을 때마다 맛있다고 매우 좋아했다.


이 씨는 현직 증권사 부장이었다.


그는 내가 블로그에 작성한 금융 관련 글들을 읽어 보고 나를 찾아왔다. 주식투자를 했는데 사기를 당했다는 것이다. 가해자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하고자 했다. 가해자는 자칭 증권 전문가였다. 언론에도 소개된 유명 인물이었다.


그는 상장주식에 투자한 적은 많았지만 비상장 주식은 투자경험이 없었다. 어느 날 그는 증권 전문가가 투자설명회를 열어 비상장 주식 투자 비법을 알려 준다는 광고기사를 보았다. 비상장 주식에 관심이 있던 그는 신문기사에 나온 증권 전문가의 사무실로 찾아갔다. 


사무실에는 그 말고도 수십 명의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모두 비상장 주식으로 한몫 벌고 싶은 사람들이었다. 증권 전문가로 광고를 낸 사람이 나와서 우량 비상장 종목을 어렵게 발굴했다며 투자설명회를 시작했다. 조만간 투자대상 회사에서 유상 증자를 실시할 예정이라고 말했다(쉽게 말해 유상증자는 회사가 공짜가 아니라 대가를 받고 주식을 새로 발행해서 판다는 것을 미함). 증권 전문가는 그 증자된 주식의 상장 계획이 있으며 상장되면 주식 가격이 높이 올라가서 큰 이익을 실현할 수 있다는 설명을 덧붙였다. 


투자 안내서를 참석자들에게 배포하였고, 거기에는 신주 발행과 상장에 대한 계획이 자세하게 기재되어 있었다. 참석자 대부분이 그 자리에서 증권 전문가가 소개한 비상장 주식에 대한 매매계약을 체결하고 돈을 지불했다. 정해진 주식 인도 일자가 되자 해당 주식이 실제로 그의 증권계좌에 입고가 완료되었다. 나중에 주식 가격도 상승했다.


그러나 그는 입고된 주식의 가치가 당초에 증권 전문가가 설명한 것과는 다르다고 생각을 했다. 예를 들어 금을 사기로 했는데 정작 나중에 입고된 것은 은이었던 것이다. 주식 가격이 올랐어도 그는 애당초 주식을 비싸게 산 것이라며 상당히 억울해하며 나를 찾아왔다.


박 씨가 나를 찾아온 당시 그는 60대를 갓 넘어섰다


그는 이미 직장에서 은퇴하였다. 매우 점잖은 신사였다. 그 나이에 특별히 할 일이 마땅치 않았다. 가만히 앉아 있는 것보다는 퇴직금과 그동안 모아 놓은 자금으로 투자를 해서 돈을 불리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처음에는 부동산에 투자를 하였다. 나중에는 주식투자도 시작하였다.  


대형 증권사와 거래했는데, 증권사에서는 그를 VIP 고객이라고 하여 특별대우를 해 주었다. 그의 주식투자를 도와줄 담당 직원도 배정되었다. 그는 증권사 직원의 도움을 받아 주식투자를 했다. 주식 투자액이 차츰 늘어가고 급기야는 10억대 중반까지 올라갔다. 


투자 방식은 본인이 주식 종목이나 매매 관련 내용을 직접 결정하는 직접투자였다. 그러다가 증권사 직원의 권유로 투자에 대한 의사결정을 모두 증권사에게 위임하는 포괄위임 방식으로 바꾸었다. 즉 증권사에 일임형 랩 계좌(wrap account)를 개설하여 투자를 하였다. 일임형 랩 계좌 방식의 투자에서는 투자자를 대신하여 증권사의 자산관리사가 투자 주식의 종목과 수량을 모두 결정하였다. 일임형 랩 계좌의 경우 단순한 자문형 보다는 증권사의 주의의무 내지는 고객보호의무가 더한층 중요하였다.


증권사의 자산관리사는 몇 개 우량 종목에 집중 투자하는 방식을 선호했다. 주가가 하락하는데도 손절매를 하는 시기를 놓쳐 손실금액이 커졌다. 


그는 결국 투자손실에 대한 손해배상을 청구하기로 했다. 자산관리사 개인은 그의 명의로 된 재산이 없을 것 같아 증권회사 법인 자체를 피고로 삼기로 했다. 민법 756조에 의거하여 직원을 고용한 사용자로서의 불법행위 책임을 묻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에게도 심각한 약점이 있었다. 그가 처음에 증권사에 방문하여 투자계약을 체결할 때 자신이 고수익 고위험을 추구하는 적극적 투자자라고 기재하였던 것이다. 당연히 고수익을 추구하는 적극적 투자자는 그에 대한 손해에 대해서도 스스로 책임을 져야 하는 비중이 커진다.


재판을 진행하면서 증권사의 자산관리를 증인으로 불러 증인신문을 하였다. 집중투자와 손절매의 문제점을 중심으로 신문하였다. 책임을 회피하려는 그를 상대로 증거와 사실을 근거로 추궁하였다. 


재판 결과는 증권회사에 대해 30%의 과실을 인정했다. 주식투자의 대원칙인 자기 책임의 원칙을 크게 벗어나지 않은 판결이었다. 고객은 재판 결과에 만족하지 않았지만 판결 내용이 너무 정확하게 잘 되어 있어서 더 이상 불복을 하지 않았다. 


자본주의는 어떻게 보면 미래에 대한 투자활동을 토대로 이루어진다. 


알 수 없는 미래에 대한 예측에 기대하며 투자에 참여하기 때문에 주식시장의 존재가 가능하다. 이들 투자자가 없다면 자본조달의 기회도 없고 자본주의도 존재할 수 없다. 


미래를 알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아무도 미래를 모르기 때문에 미래는 누구에게나 공평하다. 각자의 몫이다. 그렇지만 각 개인 입장에서는 미래예측에 실패하여 불행에 빠진 경우도 많다. 변호사가 도와줄 수 있는 일이라곤 기껏해야 사후적으로 법적인 손해 배상을 청구하는 정도에 국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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