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상영변호사 Jul 31. 2021

못 하나 없어서

약 200년 전인 1815년. 유럽 벨기에의 수도 브뤼셀에서 남쪽으로 15킬로미터 떨어진 워털루(Waterloo).


엘바섬에 유배되었다가 탈출한 나폴레옹이 다시 프랑스를 장악하여 황제로 재등극한 후 유럽 정복을 위해 영국군, 프로이센 군, 네덜란드의 연합군과 이곳에서 일대 혈전을 벌였다.


나폴레옹이 이 전쟁에서 승리하면  명실상부하게 유럽의 지배자로 다시 올라서고, 패배하면 조국 프랑스에서도 축출될 운명에 처해 있었다.


초반에 프랑스군이 우세하여 말을 탄 프랑스 기병들이 보병의 도움 없이 영국군 진영 깊숙이 침투하여 영국군 포대를 무찔렀다. 영국군 대포를 장악한 프랑스 기병들은 보병이 아니었기 때문에 대포를 사용할 줄 몰랐다. 대신에 영국군이 다시는 대포를 쏘지 못하도록 해야 했다.


당시에 대포를 무용화시키는 기술은 대포 점화구에 머리 없는 나무못이나 구리 못을 집어넣어 적군이 못을 빼지 못하도록 하는 기술이 이용되었다.

(워털루 전쟁의 승패는 폭우와 못이 결정했다, 중앙일보, 2002. 2. 25.).


그런데, 못을 보유한 프랑스 보병은 후방에 있었다. 당연히 기병 중에는 못을 가진 병사가 없었다. 이윽고 전열을 정비한 영국군의 반격이 시작되었다.


영국군은 멀쩡한 대포를 다시 사용하여 프랑스 기병에게 포격을 가하여 막대한 피해를 입혔다. 전력이 약화된 프랑스 군을 연합군의 하나인 프로이센 군이 공격하여 프랑스를 완전 패배시켰다.


이 전쟁에서 패배한 나폴레옹은 4일 후에 100일 천하 황제의 막을 내리고 영국에 의해 남대서양의 외딴섬 세인트 헬레나로 유배당한 후 6년 만에 51세로 사망하였다.


사소한 디테일이 역사의 향방까지도 좌우하는 것일까? 나폴레옹 황제가 워털루 전쟁에서 패배한 보다 정확한 원인이 따로 있겠지만, 어쩌면 못 하나 없어서 프랑스 군이 막대한 피해를 입고 군 전력이 약화되었다는 것도 부인하지 못할 사실이다.


우리 개인의 삶에 미치는 디테일의 영향은 어떨까?


지인에게 자녀가 있었다. 중학교에 입학하였는데 수학 성적이 하위였다. 원인이 무엇일까 고민했다. 어느 날 자녀에게 수학 문제를 내주고 한번 풀어보라고 했다.


옆에서 지켜보니 자녀가 문제를 잘 풀다가 마지막 단계에서 덧셈, 뺄셈을 틀리는 것이었다. 당연히 정답이 나오지 않았다. 한숨이 나왔다. 안타깝기도 했다. 자녀도 디테일을 실수하는 것에 대해 자책하며 괴로워했다.


고객 중에 계약서에 사소한 조항 하나를 잘 기재하여 억 대가 넘는 배상금을 얻은 사람도 있었다.


고객은 강남에 있는 수십억 원 되는 주택을 팔았다. 매수인은 부동산 개발업자였다. 매수인은 이곳저곳 부동산을 매수하여 건물을 헐고 새로 신축한 후 분양을 하여 이익을 남기는 사람이었다.


매수인은 계약금만 지급하고 중도금을 제 날짜에 지불하지 않았다. 매도인은 계속해서 내용증명을 보내 중도금을 빨리 지불하라고 재촉했다.


매수인은 해당 주택을 담보로 대출을 받아 중도금과 잔금을 지불하겠다고 말했다. 고객은 매수인이 중도금을 이행하지 않자 매수인의 계약불이행을 이유로 매매계약을 해제해 버렸다.


그리고 몇 억 원이 넘는 매매 계약금을 위약금으로 몰취 했다. 그러자 매수인이 계약 해제가 부당하다면서 고객이 몰취 한 계약금을 반환해달라는 소송을 제기했다. 고객은 피고가 되었다


소송에서 매수인은 고객이 매수인에게 소유권 이전등기를 해 주면 이와 동시에 은행에서 대출을 받아서 중도금과 잔금을 지불하겠다고 주장했다. 이런 경우를 ‘동시이행 항변’이라고 한다.


매수인은 어차피 중도금, 잔금일이 지나면 이전등기의무와 대금지급 의무가 서로 동시이행 관계가 된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었다. 동시이행 관계에서는 서로가 이행할 의무를 동시에 부담하고 있기 때문에 계약해제를 할 수 없다.


이 사건에서는 매수인이 과연 동시이행 항변을 할 입장이 되느냐가 쟁점이었다.  그런데 매매 계약서의 특약사항 중에‘매수인은 중도금에 대해서는 주택을 담보로 대출을 받지 않기로 한다’는 조항이 적혀 있었다. 매수인이 요구하여 특약으로 기재한 것이었다.


이 조항에 의하면 매수인은 중도금에 대해서는 대출이 아니라 자기 자금으로 지불해야 했다. 따라서 중도금까지 포함하여 매매 부동산을 담보로 추가 대출을 받아 매매대금을 지불하겠다는 매수인의 주장은 잘못된 것이다.


매수인은 자기 자금도 없이 매매계약을 한 셈이 드러났다. 즉 대출 없이 자력으로 중도금을 납부할 능력이 없음이 밝혀졌다.


결국 법원은 매수인의 이행능력이 불능 상태라고 보고, 고객이 매수인의 중도금 미지급을 이유로 잔금일 이전에 계약을 해제했던 것은 정당하다고 보았다.


따라서 고객이 잔금일 전에 계약금 수 억 원을 위약금으로 몰취 한 것도 정당하다고 하였다. 결국 최종적으로 내 고객인 피고의 승소였다.


매매계약서에 기재된 특약의 사소한 조항 때문에 승소한 사례였다. 사소한 디테일이 재산 분쟁의 결론을 좌우했다.


평소 업무에서는 디테일에 주의하려고 많이 노력한다. 변호사이기 때문에 계약서를 검토하거나 재판을 준비할 때는 꼼꼼하고 세밀하게 검토하고 분석한다. 변호사 경력이 쌓이며 많은 훈련이 되었다.


사소하지만 선을 넘어서는 안 되는 디테일도 있다. 디테일이 삶의 본질과 연관된 문제라면 특히 그렇다. 예를 들어 윤리라는 디테일은 우리의 삶을 크게 좌우한다.


나폴레옹의 패배를 가져온 나사못과 같은 존재가 될 수 있다.


많은 정치인과 연예인들이 대외적으로는 큰 성공과 인기를 얻었다가도 사소한 디테일의 실수 때문에 쇠락하는 경우를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배우자와의 윤리를 제대로 지키지 못해 본인의 건강을 잃고 많은 재산도 잃어버린 이야기가 많이 회자된다.


세계 초일류국 미국의 대통령이었던 클린턴을 무너뜨린 것은 그의 정치적 능력이나 경제적 지식의 부족에 있지 않았다.


그는 대통령 집무실에서 윤리라는 나사못이 빠졌다. 결국 여성 직원에 대한 개인적 감정을 제대로 컨트롤하지 못해 대통령과 가장으로서의 권위를 상실했다.


거대한 저수지의 둑도 바늘구멍만 한 틈이 시작이 되어 무너질 수 있다는 격언이 있다. 겉으로 남에게 보이는 화려한 성공보다 우리 삶의 가장 기본적인 디테일에서 성공하는 것이 인생의 진정한 성공자일 것이다.


신은 디테일에 있다(God is in the detail).


사소한 덧셈, 뺄셈을 틀려 고생하던 지인의 자녀는 어떻게 되었을까? 원인을 파악한 부모와 자녀는 이후 사소한 디테일에서 실수하지 않도록 심혈을 기울여 훈련하였다.


몇 년 후 수능시험에서 수학 만점을 받았다는 후문이다.




작가의 이전글 내 마음에 심긴 포플러 나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