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우리 한강 고수부지로 바람이나 쐬러 갈까?”
평상시보다 조금 일찍 퇴근한 둘째 딸이 뜬금없이 한강 산책을 제안했다. 모처럼 마음에 여유가 생겨서였을까? 긴 하루 일과를 마치고 몸과 마음이 무척 고단할 것이다. 그럼에도 저녁에 한강 산책을 하고 싶어 하다니. 딸이 무척 한강에 가고 싶은가 보다. 큰 딸은 다른 약속이 있어서 아직 집에 오지 않았다.
“좋아, 엄마랑 같이 가보자” 흔쾌히 동의했다.
딸은 먼저 잠깐 볼 일을 마치고 따릉이를 타고 혼자서 곧장 한강 고수부지로 간다고 했다. 나와 아내는 차를 타고 고수부지에서 딸을 만나기로 했다. 딸보다 먼저 고수부지에 도착하여 주차장에 차를 세워 놓고 아내와 한강 주변을 거닐기 시작했다. 아직은 딸이 도착할 시간이 안 되었다. 딸이 따릉이를 타고 고수부지까지 오려면 40분 이상은 족히 걸릴 것이다.
고수부지 주변은 저녁 산책을 하는 사람들로 붐볐다. 잔디밭에는 젊은이들이 손전등을 켜고 삼삼오오 옹기종기 모여 앉아 즐거운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조용히 산책을 하고 싶어 중심을 벗어났다. 한강을 따라 길쭉하게 나 있는 한적한 길로 들어섰다.
어슴푸레한 가로등 빛 사이로 아담하게 자라고 있는 포플러 몇 그루가 보였다. 적당한 간격을 두고 어두운 하늘을 향해 손 모아 서 있는 포플러를 보자 갑자기 나의 오랜 친구를 만난 기분이 들었다.
하늘을 향해 솜사탕 모양을 하며 모여 있는 나뭇잎들은 도시의 어두움을 포근히 감싸고 있었다. 아내의 손을 잡은 내 마음은 한여름 시골의 포플러 가로수 길로 떠났다.
짙푸른 벼로 가득 찬 들판 사이로 구부구불 비포장 신작로가 나 있었다. 들판을 가로지른 신작로는 군데군데 산들을 마주치며 산허리를 감싸 돌다 이내 멀리 시야에서 멀어졌다. 누군가 심어 놓은 수많은 포플러 나무들이 하늘을 향해 드높이 고개를 들며 신작로 양쪽 길을 줄을 지어 따라가고 있었다.
아직 산업화 초기 단계라서 아스팔트 도로가 드물었다. 시골에 있는 비포장 신작로는 이제 막 큰 뜻을 품고 새 출발을 다지는 청소년이었다. 하루에 몇 번밖에 지나지 않는 시골버스가 저 멀리서 꽁무니에 땅 먼지를 잔뜩 일으키며 희망을 싣고 신작로를 힘차게 달렸다. 신작로에 줄지은 포플러 나무들은 버스가 일으키는 땅 먼지를 제 몸으로 힘껏 감싸 안으며 버스에게 길을 내주었다.
숨 막히는 흙먼지 속에서도 포플러 나무의 이파리들은 한 여름의 뙤약볕을 반짝반짝 윤기 나는 은빛으로 반사하며 웃어넘겼다. 더위가 문제가 아니었다. 먼지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행군하는 군인처럼 포플러 나무들이 굳은 기개를 힘차게 하늘 높이 세우며 청춘의 생명력을 힘껏 뽐내었다.
시골집 옆 빈터에도 포플러 나무 군락들이 심겨 있었다.
빈터는 원래 조그만 미나리 강이었다. 마을 사람들이 공동으로 사용하는 샘터에서 쉬지 않고 물이 넘쳐 흘러나와 미나리 강을 이루었다. 마을 사람들이 그곳으로 흐르는 물을 막아 건조한 땅으로 바꾼 후 거기에 포플러 나무들을 한 무리 심어 놓았다.
한여름이 되면 포플러 나무 숲에 매미나 장수벌레 등이 달라붙었다. 어린이들은 매미를 잡아 놀고 싶었다. 집에서 긴 장대나무를 찾아내어 나무 꼭대기에 끈적이를 붙였다.
씹다 남은 껌을 끈적이로 사용하면 좋지만 그 당시 시골에서 껌을 구하기가 쉽지 않았다. 들판에서 밀 한 다발을 꺾어 불에 그슬린 후 밀 알맹이를 벗겨내어 손으로 한참 동안 비벼대면 끈적끈적한 밀가루 반죽이 되었다. 이렇게 손수 만든 수제 밀가루 반죽을 장대기 끝에 살짝 붙여서 끈적이로 만들어, 장대를 들고 포플러 나무 사이로 살금살금 걸어갔다.
어떨 때는 용케도 매미들이 장대 끝의 끈적이에 착 달라붙었지만, 끈적이가 시원찮으면 장대를 밑으로 내려오는 동안 매미들이 바둥바둥 끈적이를 떼어내고 저 멀리 날아가 버려 무척 아쉽기도 했다. 끈적이를 만들 때 밀 알맹이를 손바닥으로 충분히 문질러야 하는데, 어설프게 조금만 문질러서 반죽이 찰지게 되지 않은 까닭이었다.
지상에 바람 한 점 없는 찌는 무더위 속에서도 포플러의 이파리들은 어디서 바람을 모아 왔는지 살랑살랑 은빛을 반사하고 있었다. 어디에 더위가 있느냐며 높은 하늘에서 시골 어린이들을 묵묵히 내려다보았다.
언제부터인가 포플러 나무가 보이지 않기 시작했다. 비포장 도로였던 신작로가 시커먼 아스팔트 길로 바뀌고, 미나리강에도 포플러를 밀어내고 마을 회관을 지었다.
시골을 떠나 서울로 올라와 시간이 많이 흘렀다. 부모님도 세상을 떠나고 살아 계신 어른들도 많이 노쇠해졌다. 나도 뭔가 흥미롭게 새로운 일을 벌이기보다는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편하게 잘 관리하며 안주하고 싶은 마음이 더 강해지려 한다.
그렇지만 생활이 힘들고 고달플 때 포플러의 강한 생명력은 큰 힘이 된다. 눈앞에 포플러 나무가 보이지 않을 지라도, 한여름 높게 서 있는 기개와 반짝거리는 이파리들의 생명력은 영원한 삶의 에너지이다. 잠시도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흘러넘치는 마을 샘터의 물처럼.
도착할 시간이 다 되었는데도 딸이 아직 보이지 않았다. 딸에게 전화를 걸까 생각하다 혹시 자전거 주행 중에 핸드폰 받으려다 넘어질까 봐 그냥 두기로 했다. 좀 더 걸으며 아내에게 포플러에 관한 어린 시절 이야기를 해 주었다. 아내가 흥미롭다는 듯이 들었다.
복잡한 시내를 벗어나 어두운 한강 고수부지에 곧게 서 있는 포플러는 내 마음속의 오랜 친구 그대로였다. 한 밤에 부는 바람에 하늘을 배경 삼아 이파리를 살랑거리며 포플러가 우리들의 이야기를 잠잠히 듣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