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너를 읽고 싶어 /
인류의 모든 지식은 도서관에 있다.
하지만 인류의 가장 아름답고 위대한 유산인 사랑은 연인에게 있다.
사랑하는 순간은 어느 위대한 유산보다 위대하다.
일석이조, 공부하고 데이트하고 책도 보고 님도 보고....
도서관만큼 학생에게 데이트하기 좋은 곳이 있을까
하나로 모든 걸 해결하는 것은 현명한 선택이었다.
혼자면 지식만 배웠겠지만, 둘은 덤으로 사랑도 배울 수 있었다.
서로야말로 사랑을 읽기에 가장 잘 어울리는 책이었고, 둘은 서로의 베스트셀러였다.
시선은 책에 가 있었지만, 마음은 서로에게 가 있다.
공부가 될까..
지원이 말했다.
"그만 쳐다보시지요."
현빈이 웃으며 작게 말했다.
"뭐 쳐다보고 싶어서 보나. 그냥 눈이 가니까 보는 거지. 커피나 한잔 합시다요."
지원이 대답했다.
"특별히 그럽시다."
커피 한 모금.
한 모금이라고 우습게 생각하지 말아라.
안에 들어가면 전부가 된다.
단지 시작일 뿐이다.
입을 떼지 못하고 눈을 떼지 못한다.
한번 스쳐도 길게 남는 여운은 그래서 또 다른 여운을 부른다.
또 한 번 생각났다면 아마도 빠지고 있는 중이다.
커피를 마셔도 좋고, 걸어도 좋고, 가만히 있어도 둘이라면 좋았다.
"좀 걸을까?"
"뭐 이미 걷고 있는데...."
현빈이 얼굴을 앞으로 돌려 시선이 마주치며 말했다.
"주말에 영화 보러 갈까?"
"무슨 영화?"
"아무 영화나....."
지원이 반색하며 말했다.
"아니 그런 게 어디 있어, 아무 영화라니..."
현빈이 딴청을 피운다.
"나는 어둠과 은밀함이 필요하거든... 하하"
둘은 주말에 영화를 함께 보기로 했다.
영화.
어둠 속에 잠기지만 사실 또 다른 세계로 향하는 것이다.
어둠 안에서 밝은 세상을 보는 것.
좌절을 통해 희망을 보는 것처럼.
어둠은 빛으로 가는 징검다리이다.
"모든 사람들이 다 나왔나 봐? 왜 이렇게 사람이 많아."
현빈이 주위를 둘러봤다.
"음 아마 저 사람들도 우리를 보고 그렇게 생각할 거야."
둘은 햄거버세트를 좋아했다. 기름기 잘잘 고기패티에 신선한 야채로 건강식인양 포장하고 설탕 가득 탄산음료 듬뿍 담긴 콜라와 함께 입가의 소스를 닦아내며 먹는 걸 좋아했다.
"이것도 젊을 때나 이렇게 먹겠지?"
"아마도... 아직 젊어서 다행이지 뭐."
슬쩍 현빈이 지원의 입가에 묻은 소스를 닦아 주었다.
"애구 이 아까운 소스를 그렇게 닦아내면 어떻게 해? 먹어도 부족하구먼...."
지원이 너스레를 떨었다. 하지만 눈은 웃고 있다.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보겠어, 저 돼지 두 마리 어쩔 거야 하는 거 안 보여?"
"이 정도 돼지면 최상급 이베리코급이지 뭐.... 나 정도 돼지면 더 쩌야 해."
순식간에 깨끗이 먹고 정리한 후 음료만 남기고 수다를 떨며 영화상영 시간까지 기다렸다.
"자 갑시다요. 배를 채웠으니 이제 눈호강 하러 가야지."
이렇게 조용한 곳에서
나는 너무나 시끄럽다.
가만히 있어라 가슴아
숨기 좋은 이 어둠에 슬그머니 숨어가
그 사람의 마음 위에
살포시 손을 놓기에
이곳은
너무나 고맙다.
눈은 스크린에
마음은 그대에게
- 영화관 -
영화관 좌석.
어둠이 고맙지.
어디에 앉아도 한 곳만 보게 돼.
마치 그리움처럼.....
정중앙의 라인이었지만 끝쪽으로 자리를 잡았다.
둘이 숨기 오붓했다.
어둠 속이라도 마음은 숨을 곳이 없다.
스크린의 빛은 이런 두 마음이 부딪쳐서 발산하는 빛으로 비추는 것이라 생각했다.
자신도 모르게 움직였다. 그렇게 변명을 했다. 현빈은.
순간은 너무도 짧았지만 여운은 너무나 길었다.
뭐라고 말할까?
살짝 오랜 시간!
이 순간이 되기까지 달려온 가슴에는 이미 에베레스트 산이 있었다.
현빈이 살짝 지원이 귀에 말을 했다.
"고마워."
지원이 놀라듯 살짝 현빈의 눈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살짝 잡은 손에 힘을 꼭 쥐었다.
영화관의 어둠 속에서 활화산이 한번 터져 버린걸 아무도 모른다.
읽어도 읽어도 끝이 없다.
한 권의 책을 읽으면, 또 한 권이 기다리고 있다.
하루는 작은 책 같다.
내일 또 다른 얘기가 나를 기다린다.
나이가 지긋한 김태선 작가는 심장이 터질듯한 강렬한 글로 두터운 독자층을 가진 소설의 거장이었다.
독자들의 첫 번째 질문은 "언제 책이 나오나요?"였다.
배고픈 독자들은 셰프의 요리가 코스요리의 접시에 담기기 전에 포크를 먼저 들고 있었다.
기다려라 아무리 말해도 배고픔에는 장사가 없었다.
드디어 신간이 이번에 나오게 되었고 편집장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사자가 따로 없다니까요. 물면 놓지를 않아요. 우리 편집장님."
현빈의 말에 병호형은 눈알을 부라리며 말했다.
"편집장 하려면 이 정도는 해야지."
자부심이 묻어 나왔다.
"인터뷰 질문지 준비해야 되니 책도 미리 읽어 보고, 그래도 인터뷰해 주시는데 책은 한 권 사야 도리 아니겠어. 우리가 도리는 좀 알잖아."
버터 바른 편집장의 혀는 우리를 서점으로 내몰았다.
내심 합법적인 데이트에 고마울 뿐이다.
"당연히 서점에 다녀와야지요. 책값은 교지 활동비로 영주증 처리하겠습니다."
대답이 돌아오기 전에 튀었다.
그것은 나의 것이 아니다.
그건 너의 것이다.
그러니 말해 주어야 한다.
사랑하면 사랑한다고...
주인에게 돌려주어야 한다.
'나는 너를 읽고 싶어. 읽어도 읽어도 끝이 없는 너를 낮을 지나 밤을 새워 읽고 싶어.'
지원은 말을 하려다 움짓 하는 현빈에게 말을 했다.
"뭔 말을 하려다 말아?"
"기다려봐, 들을 날이 있겠지, 궁금하면 500원!"
"됐네요, 언젠가 들을 얘기를 500원도 비싸네."
얼굴이 살짝 붉어진 현빈을 보며 지원은 궁금했지만, 분명한 건 아마 좋은 말일 거라는 느낌이다.
지원도 더 묻지 않았다.
언젠가 저 말은 나의 귀에 올 테니까.
'들을 얘기지만 빨리는 듣고 싶네.'
지원도 살짝 웃었다.
현빈이 갑자기 기분 좋게 말했다.
"내가 고른 인생 책 김지원. 커피 마시러 가자. 오빠가 쏠게."
"어우 오빠, 앞에 잘생긴 말보다 거무튀튀한 커피가 더 당기네"
지원은 팔짱을 꼈다.
서로를 바라보는 지금은
사계절의 어느 날에 있어도
인생에선 항상 봄이었다.
나는 너를 봄
너는 나의 봄
그렇게 서로의 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