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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돌꿈 Oct 02. 2020

쓰는 마음


늘 품고 있어 소지품 같은 마음이 있다. 뭐라도 써야지, 써 봐야지 라는 생각. 정작 일기라도 끄적이는 것은 일년 중 일주일 남짓이나 될까. 그래서 나는 비밀 에스엔에스 낭인이 되고 말았다. 혼자서만 보는 기록용 블로그를 두어 개 옮겨다니다 그만두었다. 인스타그램에는 본계정과 드로잉을 올리는 계정, 책을 읽다가 좋은 페이지를 찍어 두는 독서감상용 계정이 있다. 인터넷 세상 트렌드를 곁눈질하는 용도의 트위터 계정도 있다.


파워 인플루언서가 되고 싶은 것도 아닌데(사실 조금은 그럴지도) 왜 이렇게 여러 가지 서비스를 옮겨다니는 걸까? 내가 전시한 내 모습에 스스로 금세 질려버려서다. 피드를 하나 둘 올리다 보면, 내 흔적들이 성에 안 차는 현실자각의 순간이 꼭 오고야 만다. 블로그에 일기를 남기다 보면 주절주절 궁시렁대는 내가 별로였다가, 인스타그램을 좀 하다 보면 예쁜 순간만 수집하고 싶어하는 내가 별로였다가. 아는 사람들이 보는 계정은 부끄럽고 부담스러워서 싫고, 아무도 모르는 계정은 내 자신이 음흉한 것 같아서 싫고. 이래도 싫고 저래도 싫고! 그럼 말 것이지 자꾸만 여러 에스엔에스에 기웃거리는 건 왜냐? 쓰고 싶은 마음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뭔가 쓰고 싶고 누가 읽어줬으면 하고 바라는 마음을, 내가 소심한 관종임을 나는 이제 그만 인정하기로 했다.


나는 마음을 숨기기 위해 많은 에너지를 쏟으면서 산다. 잘 하고 싶은 마음과 인정 받고 싶은 마음, 간절한 마음 같은 것들은 반죽 속에 잘 숨기고 보여지는 표면은 아이싱을 잘 마친 그럴싸한 케이크 같기를 바란다. 흔한 이야기인가? 도대체 왜 이럴까? 충청도에서 자라서 그런가? 성장 환경에 결핍이 많았나? 나를 이렇게 솔직하지 못한 인간으로 만드는 데 기여한 내 인생의 순간들을 떠올리며 괴로워한 적이 많다.


고백하자면 어릴 적에는 너무 투명하지 않은 내가 마음에 들었던 시기도 있었으나, 그런 마음은 투명한 누군가를 우스워하는, 더 우스운 마음으로 흘러갈 때가 많았고 결국 못난 나에 대한 자괴감만 커지곤 했다. 한편 솔직한 사람은 건강하고 안정적이고 가깝고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부러웠다. 매일매일 격렬히 부러워하면 힘드니까, 나 같은 성격의 장점에 대해서도 늘 생각하려 하지만 여전히 예의 바르게 솔직한 사람들을 부단히 동경한다. '너무 부럽다'와 '나도 괜찮지 뭐' 사이의 어딘가에서 균형을 찾아 서 있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가까스로 평온한 상태를 유지하려 애쓰는 내 안에서도 조금 더디게 처리되는 것이 이 '쓰고 싶은 마음'이다. 문득문득 내가 절박하게 기쁘게 때로는 의무감에 끄적이는 글자들을 보고 있자면 왠지 무거운 마음이 들었다. 전공 때문에 대학생 때는 이래저래 글을 쓸 일이 많았다. 한두 장 짜리 페이퍼라도. 칭찬이나 응원을 받으면 숨기지 못하고 입꼬리가 씰룩거렸다. 소설이 마음을 훅 찔러 갑자기 눈물이 나거나 유독 나도 쓰고 싶다는 마음이 뜨거워지는 순간도 있었다. 그 순간들을 잊지 못해 나는 회사를 다니면서도 자꾸 쓰고 싶은 마음 앞으로 되돌아갔던 것 같다. 소심하게, 남몰래, 혼자서 모니터 앞으로. 혹은 아무도 나를 모르는 글쓰기 강의실로.


서른 살 십이월 텅 빈 마음을 뭘로 채우나 하다가 홀린 듯 한겨레 문화센터 소설 쓰기 강의를 결제했다. 허구의 이야기를 써보고(사실상 내 생활반경을 벗어나지 않은 이야기였지만!) 다른 사람들 앞에서 읽었다. 뭔가 후련했다. 뭔가 나에게 아주 작은 구멍이 뚫린 기분이었는데 그게 너무 시원했다. 두 번째 강의를 결제하면서는 마음을 먹고 다른 사람들에게 말하기 시작했다. 사실은 내가 소설 쓰기 수업에 등록했는데 말이야..


돈을 주고 글쓰기를 한다는 게 왜 이렇게 남에게 이야기하기 어렵던지. 새로운일을 시도하는 것도 말하기 부끄러워하고, 글쓰기도 부끄러워하니 글쓰기+수업은 꽤나 숨기고 싶은 일이었다. 하지만 왜인지 이번에는 뭔가 정리를 하고 싶었다.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에스엔에스를 하나로 정리하듯, 두어 장만 쓰고 버려진 일기들을 한 권에 오려 붙이듯, 여기저기 조각글처럼 남아있는 나의 일부들을 주섬주섬 챙겨 모두 나라고 품어 주고 싶었다. 그런 마음으로 이 브런치도 시작했다. 비록 글은 1개지만... 이렇게 본격적인! 글쓰기 플랫폼에 누군가 읽을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쓴다는 것이 꽤 즐겁다.


살아온 대로 살기, 조금은 다르게 살아보기 사이에서 이런 은밀한 결심은 나에게 중요한 터닝포인트가 될 것이다. 조금은 더 투명해지기. 조금 덜 조각나기. 쓰고 싶은 마음이 있다는 것, 때로는 쓰기도 한다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말기. 나라도 내 마음을 기억해주기.


봄에 쓰다 만 글을 가을에 마무리하며 나는 외로워야 뭘 쓰는구나 생각한다 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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