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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돌꿈 Jan 30. 2021

좋아하는 점

왼쪽 눈 아래 내가 좋아하는 점이 있다. 위에 검지를 올려 보면 사알짝 오톨도톨할 만큼 꽤 또렷한 점이다. 언제부터 거기 있었는지 모르겠다. 수능시험이 끝나고 얼굴에 있던 열 몇개의 자잘한 점들을 빼러 갔을 때도 의사 선생님에게 이건 안 뺄게요, 했던 기억이 난다. 눈가라 위험할 거 같아서요, 정도 들었고.. 라고 민망하게 중얼거렸던 기억도 난다. 


살수록 얼굴에 점 몇 개 있는 게 나에게 힘이 됐다. 낯선 친구를 사귀거나 소개팅을 할 때 누가 "눈에 점이 있으시네요" "매력점이 있으시네요" 하면 대개 내 첫인상을 좋게 봤거나 적어도 싫어하지 않는다는 말처럼 느껴졌다. 경험적으로 시간이 지나고나서 보면 적중률도 높았다. 항상 애매모호하고 희뿌연 사람 관계에서 이런 작고도 적중률 높은 신호는 꽤나 반가운 것이었다. 


한편으로 거울을 볼 때 점이 눈에 띄지 않을 때도 있다. 점이 있는지 없는지 왼쪽 눈가에 있는지 오른쪽 눈가에 있는지. 더 커졌는지 말았는지 궁금하지 않고, 푸석해진 피부나 늘어난 이중턱 같은 것만 탐색하다 우울하게 거울을 등지는 날. 그런 날이 하루, 며칠, 몇개월씩 찾아오기도 한다. 사실 그럴 땐 애초에 거울을 잘 보지도 않게 되는 시기이기도 하다. 앞서 구구절절 의미부여한 말들이 무색하게 내가 싫을 땐 점이고 뭐고 다 보기가 싫다. 그러니 내가 이 점을 대하는 마음이 스스로를 대하는 마음 같다고 거창한 의미부여를 하게 된다. 


요즘은 내가 하는 일, 내가 하는 생각, 내가 사는 몸, 내가 살아온 여정이 영 마음에 들지 않아 우울했다. 그런 우울감에 대해 누군가에게 이야기하고나면 이번에는 내가 한 말이 마음에 차지 않아 더 우울해졌다. 내가 느끼는 감정과 원인을 다른 사람에게 전달하는 것이 항상 어렵다. 어제는 나에게 주어졌던 20대를 낭비했다는 생각에 심란했고 오늘 점심에는 순대국밥을 먹으면서 회사에 대한 분노의 에너지를 다시 나를 싫어하는 데 쓰면 안된다는 말을 들었다. 공감했다. 이상하게 우울한데 묘한 각성 상태가 된다. 이런 우울함이 괴롭고 무겁고 불안하면서도 오히려 어디 한번 어떻게 되나 막 살아보자 라는 오기가 생기는 것 같다. 이번엔 내가 나를 싫어하는 방식으로 끝나지 않겠다는 오기.


맥주 한두잔 먹고 친구를 집으로 돌려보내고 또 내가 한 말을 복기하며 잠들었더니 몸이 아팠다. 자다가 양팔과 허리가 푹푹 쑤셔서 눈이 떠졌다. 몸살이구나 싶은 통증이 너무 오랜만이라서 한참을 끙끙 뒤척이다가 뜨거운 물로 샤워를 하고 또 뜨거운 물을 끓여 마시며 책상에 앉아 있으니 한결 나아졌다. 오랜만에 일기를 써볼까 싶어 컴퓨터를 켜보았다. 일기 같은 건 써서 뭐하나 싶다가도 이럴 때는 위로가 된다. 


노란 불빛 아래서 거울을 보다보니 오늘따라 점이 눈에 띄었다. 아 너 여전히 거기 잘 있었구나 싶다. 내 얼굴을 뜯어본 게 오랜만인 것 같다. 자꾸만 내가 싫고 내가 싫다고 말하는 내가 또 싫은데, 어쩌면 이 과정을 통해서 어딘가 나아지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아니 더 나은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이 과정을 잘 치르면 내가 날 좀더 좋아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 괜히 또 점 하나에 의미부여를 해보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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