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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피어리뷰 커뮤니티에서 한국 연구자의 위치

저널 에디터의 시각에서

해당 글은 피어리뷰 주간 2021을 계기로 에디티지 인사이트에 게재하였던 글을 전재한 것이다.

(https://www.editage.co.kr/insights/the-diversity-of-peer-review-and-the-position-of-korean-researchers-in-the-global-peer-review-community-from-the-perspective-of-a-journal-editor)


국가 수준에서 GDP 대비 과학기술 연구비 지출과 지적 재산권 출원은 세계 최고 수준을 달리고 있음에도, 우리나라 연구자들이 수행한 연구의 산업적, 학문적 파급력은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고들 합니다. 피어 리뷰에 대한 주제에 갑자기 웬 국가 연구개발 생산성 이야기냐 싶으실 겁니다. 그런데, 피어 리뷰의 다양성, 그리고 글로벌 피어 리뷰 커뮤니티에 과연 한국 연구자가 소속되어 있는지에 대한 질문을 받으면서, ‘아, 이것들이 모두 연결되어 있는 일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저널에서 몇 년째 편집 일을 도우며 느낀 여러 현상들이 결국 큰 맥락에서는 같은 것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우리나라의 연구자들은 스스로를 글로벌 출판 산업의 약자로 전락시키고 있거든요. 학계에서 패러다임을 만들어 나갈 수 있는 피어 리뷰어의 역할을 스스로 도외시하고 있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참. 제가 속한 임상의학 영역과, 일부 기초과학 영역에서의 개인적인 경험을 이야기하는 것이라, 모든 연구 분야의 일로 일반화하기는 어려울 수 있음을 미리 밝혀둡니다.


기울어진 운동장의 과학 논문 출판계

이야기가 조금 둘러가야 할 것 같습니다. 사실 제가 이렇게 편집 일에 뛰어들게 된 것은, 임상 의사로서 느꼈던 답답함 때문이었습니다. 노인의학이라는 주제는 사람의 삶과 밀접한 연관이 있어서 의료 제도나 인종 등 사회, 문화적 특성에서 자유롭지 않은, 한마디로 환원론적 자연과학을 넘어서는 광범위한 문제들을 다루는 학문입니다.


그런데, 제가 갓 박사 과정을 시작하던 지난 5-6년 전에 고민을 하여 보니, 고령화는 진행이 되고 있음에도 우리나라에서 노인의학과 관련된 정책을 만들자니, 한국에 필요한 문제 제기나 개선 방안에 대한 연구가 턱없이 부족함을 느꼈습니다. 인용지수가 높은 논문들이 나오기는 나오는데, 실질적으로 노인의학의 정책적 발전에는 다가가지 못하는, 소위 연구를 위한 연구가 너무 많았어요. 그런데, 논문을 써 보고 연구자의 삶을 살다보니 금세 답이 나오더군요. 좋은 저널의 연구 지형 속에서 에디터와 리뷰어들이 관심 있어 하는 주제는 선진국 연구자들이 현재 관심있어 하는 것들이었습니다 1.


결국 아시아권 개발도상국이 고령화 속도가 무척 빠르고, 해결해야 할 정책적 이슈들도 많은데, 그 문제는 글로벌 학문의 상징공간 속에서는 그냥 없는 문제로 남아 있었고, 정책 입안자들에게 다가가 이야기를 하면 뭔가를 가져오라고 답을 듣지만, 그렇게 가져갈 것은 별로 없는 것이죠. 한국에서는 연구자로 살아 남으려면 최대한 인용 지수를 높여야 하는데, 굳이 주요 저널의 에디터나 리뷰어들이 관심이 없는 주제를 논의해보아야 스스로의 커리어에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아시아권의 노인의학 저널들은 대부분 SCIE가 아니었어요. 인용지수에 울고 웃는 요즈음의 연구자들이 아시아권의 노인의학 저널에 좋은 연구를 제출할 이유가 만무했죠. 그래서, 제 목표는 이 악순환을 끊고 우리나라에 정말 필요한 좋은 연구들이 구상되고 결과도 발표될 수 있도록 저희 저널을 SCIE로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피어 리뷰를 하지 않은 한국의 연구자들

그렇게 저널이 성장하는 과정을 함께 걸어가며, 또 하나의 문제점에 봉착합니다. 한국 연구자들이 정말 피어리뷰를 잘 해주지 않는다는 것이었지요. 사실 피어리뷰 받기가 어려운 것은 최근 몇 년간 출판 업계에서 전반적으로 느끼는 것인데, 오픈 액세스 저널이 폭증하고 전체적으로 리뷰가 필요한 문헌의 수가 증가되며 악화되고 있습니다. 피어리뷰가 자신의 커리에는 도움이 되지 않고, 출판사만을 위한 일이라고 생각하는 연구자들도 많이 있습니다.


논문을 무척 왕성하게 내는 주변의 연구자들께 개인적으로 연락을 해서 편집을 맡은 논문의 피어리뷰를 부탁드릴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돌아오는 답변이 ‘원래는 피어리뷰를 하지 않는데, 개인적 부탁이시니 이번만은 해 드리겠다’ 일 때가 있습니다. 문제는 이런 답변이 드물지 않다는 것입니다. 단순 계산으로도, 논문을 매년 4편씩 낸다면 에디터와 리뷰어는 10명 이상이 달라 붙었다는 것인데, 그런 연구자들이 피어 리뷰는 하지 않아요. 이유는 많습니다. 바쁘고, 보상이 없고…


결국 이것도 악순환의 고리였습니다. 저는 우리나라가 ‘연구자의 인사(人事)평가를 집단적으로 서양에 외주 준 나라’ 라는 표현을 씁니다. 서양 유력자들이 권력을 가진 학계에서 인정을 받아 인용 지수를 많이 모은 연구자에게 자리를 주고 승진을 시켜줍니다. 이러한 커리어 시스템 탓에 불필요하게 해외로 지출되는 APC (Article Processing Charge, 게재료)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이 이상한 구도의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그 기울기를 그나마 해소시키는 방법중의 하나는 글로벌 피어 리뷰 커뮤니티에 우리나라 연구자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노력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피어 리뷰의 다양성은, 리뷰어의 커리어 위치, 성, 인종, 지역적 특성 등의 요소가 포함되는 개념입니다. 지금까지 이야기한 것처럼, 한국 연구자들은 글로벌 주요 학문 분야의 현재적 권력 지형이 요구하는 연구를 재빠르게 생산하는 역할에 머무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돈이 되지 않고 시간이 많이 소요되는 피어 리뷰는 잘 하지도 않으려 합니다. 이것이 반복되니, 저널의 에디터들이 한국에 기반을 둔 연구자들에게 리뷰는 더욱이 잘 보내지 않으려 하게 되는 악순환이 벌어집니다. 이런 구도가 일상화되면, 한국 연구자들은 다른 누군가가 이미 만들어 놓은 학문의 패러다임을 좇는 역할로 더욱 고착이 됩니다.


피어 리뷰를 저해하는 한국의 문화적 특성과 연구 풍토

한편, 리뷰를 받다 보면 한국 연구자들이 피어 리뷰를 하는 경우, 다소간 설익은 느낌의 의견을 주는 경우가 있습니다. 연구자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토론과 조언의 과정을 배우지 못하는 것도 한가지 요인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의 학계가 연장자 혹은 선배 연구자가 무엇이든 결정하면 따라가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에 더 그럴지도 모르겠습니다. 영어라는 언어 문제가 있기도 하지만, 다소 예의 없이, 또는 성의 없게 리뷰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 때문에 글로벌 피어 리뷰 커뮤니티에서 한국 연구자의 가치가 절하되게 되고, 그러니 한국 연구자에게는 리뷰를 덜 보내고, 이 결과는 피어 리뷰의 다양성을 떨어뜨릴 뿐 아니라 궁극적으로 우리나라에서 나온 연구의 실질적 파급력을 낮추게 됩니다. 다시 악순환입니다.


또 하나는, ‘추세 추종형’ 테마연구의 풍토입니다. 어떤 주제가 뜬다고 하면 그 쪽으로 연구실의 테마를 빠르게 바꾸어, 대형 과제를 수주하는 것이 개별 연구자 입장에서는 생존에 도움이 되지만, 장기적으로는 우리나라의 연구 산출물의 파급력을 떨어뜨릴 수 있다는 이야기는 이제 그리 생소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러나, 뜨는 분야의 논문을 빨리 써서 좋은 저널에 게재하고 빠지는 형태의 연구가 반복되면 해당 분야 연구자로서의 유기적 성장(organic growth)이 이루어지지 않게 됩니다.


수십년에 걸쳐서 벽돌을 하나씩 쌓는 해외 대가들과 달리, 이런 ‘추세 추종형’ 연구자는 글로벌 연구의 패러다임을 만들어나가는 내실이 튼튼한 연구자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기는 어려울 수 있습니다. 그런데, 현재의 국내 연구 환경은 이런 ‘추세 추종형’ 연구가 생존에 유리한 환경이지요. 이런 환경에서 자라난 젊은 연구자들은, 건설적인 피어 리뷰를 제공할 내공도, 자기 시간을 들여 피어 리뷰를 수행할 동기 부여도 없게 됩니다.


결론

피어 리뷰라는 사소해 보이는 과정도 결국 저널과 같은 분야의 연구자를 도와주는 방법일 뿐 아니라, 동시에 연구 커뮤니티의 일원으로서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넓히는 중요한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의 연구자들이 피어 리뷰 커뮤니티에서 저평가되고, 또 학문의 패러다임을 만들어 가는 과정에 연구력에 비해 충분한 파급력을 내지 못하는 데에는 연구자의 삶에서 토론과 피어 리뷰의 과정을 그동안 다소 하찮게 생각해 온 탓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연구 과정에서 느껴지는 기울어진 운동장의 답답함이 고착되는 데에는 어쩌면 그동안 연구를 해 온 우리 모두가 조금씩은 책임이 있습니다. 피어 리뷰를 받는 것뿐 아니라, 리뷰어로서 참여하는 것 또한 연구자와 학계에 중요한 자양분이 될 수 있습니다 2. 그리고, 많은 연구자들이 이런 노력이 한국 연구자로서 느끼는 피어 리뷰어로서의 지역적 다양성 문제를 개선시킬 수 있을 것입니다.   


참고문헌

Jung HW, Lim JY. Geriatric Medicine, an Underrecognized Solution of Precision Medicine for Older Adults in Korea. Ann Geriatr Med Res. 2018;22(4):157-158. doi:10.4235/agmr.18.0048

저자와 저널에 모두 도움이 되는 피어 리뷰 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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