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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일 Feb 16. 2017

<스노든>, 감시사회를 향해 내민 빨간 약

전 세계 통신망 감시를 고발한 실화 소재의 <스노든> 감상기

스노든의 고백


  에드워드 조지프 스노든. 미국 국가안보국(NSA)과 중앙정보국(CIA) 깊은 곳에서 자신의 전문기술로 효율적인 감시 시스템을 만들어 미국이 전 세계를 들여다보도록 도왔던 사람이다. 처음에는 애국심으로 일을 시작했고,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의 위험성을 인지한 뒤에는 미국인과 전 세계인을 테러리즘으로부터 안전하게 지켜야 한다는 논리로 흔들리는 마음을 다잡았고, 상대적으로 진보적인 오바마 정부가 권력을 잡았을 때는 예전과는 다를 거란 희망을 갖고 무소불위의 정보기관 중심에서 묵묵히 자기 일을 수행했다.


  국가와 체제를 중시하는 사람들에게 그는 애국자다. 비록 군복을 입지는 않았지만 국가와 국민의 안전을 위해 테러범들과 싸운 충직한 사람이니까. 반면 국가의 권력 남용을 경계(거부)하고 자유롭고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기 위한 싸우는 시민들에게 그는 부역자다. 자기가 지닌 능력을 부당한 감시 활동에 활용했고 나중에 뭔가 잘못되고 있단 걸 알고도 한참을 중심에서 머물며 감시 체계를 강화하는 데 기여했으니까. 이 영화는 스노든이 애국자와 부역자에서 공익신고자(내부고발자)로 변모하는 과정을 담은 영화다.


  그가 언론인들을 만나 호텔방에서 진실을 밝히는 며칠 간의 기록은 이미 <시티즌포>라는 다큐멘터리 영화로 공개된 적이 있다. 허나 많은 다큐멘터리들이 그러하듯 이런 이슈에 관심이 있던 관계자와 일부 관객에게만 닿았을 뿐 아쉽게도 일반 대중들에게 가깝게 다가가지는 못했다. 또한 <시티즌포>에는 언론인들을 만나 고백하는 모습과 언론에 발표되던 긴박한 당시 상황은 잘 담겨 있지만 스노든이 밝힌 심각한 내용들의 전체 그림을 파악하기엔 부족한 점이 많고 무엇보다 왜 스노든이 진실을 밝히려고 결심했는지를 담고 있지 못하다. 의도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올리버 스톤 감독의 <스노든>은 <시티즌포>가 놓치고 지나간 지점을 충실하고 친절하게 메꿔준다.


다큐멘터리 <시티즌포>에 출연한 스노든


올리버 스톤의 의도


  올리버 스톤 감독은 유난히 역사에 집착하는 감독이다. 베트남전, 엘살바도르 내전, 존 F. 케네디 암살 사건, 9·11 테러 등의 역사 속 사건과 록커 짐 모리슨, 조지 W. 부시 대통령, 닉슨 대통령, 피델 카스트로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 등의 실존 인물을 다룬 영화들을 적지 않게 만들었다. 단순히 시대극 만들 듯 소재주의로 접근하지 않고, 시간이 한참 흐른 뒤에도 관객들이 현장에 머물며 인물과 사건을 생생하게 느끼도록 다큐멘터리 기법을 적극 도입하여 현장감과 사실성까지 살리려고 노력해왔다. 물론 그 과정에서 관객들 스스로 질문을 던지도록 자극하는 것은 기본이다. 감독은 스노든이란 인물, 혹은 그를 중심으로 벌어진 사건에 어떤 매력을 느껴서 이 영화를 만들었을까.

 

  추측컨대, 스노든 사건은 이 시대에 가장 민감한 주제를 다루고 있기에 영화로 만들기에 적합하다. 겉보기엔 한 인간이 그가 속해 있던 집단의 부당한 권력 남용을 알아차리고 공익을 위해 언론에 비밀을 제보한 이야기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 안에는 다양한 층위의 갈등이 존재한다. 작게는 개인의 메일과 SNS 내용을 누군가가 허락 없이 들여다 본다는 프라이버시 논란을 들 수 있다. 개인의 프라이버시는 사소해 보이지만 세상 모든 권리 중 가장 기본적인 권리다. 그 권리를 침해한다는 건 절대 용납될 수 없다. 하지만 그런 침해가 다수의 안전을 위해서라면 어떨까. 공공의 안녕을 지키기 위해 테러범에 싸우는 과정에서 부득이하게 기본권을 침해해야 한다면 약간의 불편함은 감수해야 할까. 또한 그런 전지전능한 권력을 국가가 소유하는 건 옳은가부터 국가의 경계를 넘어 전 세계의 평범한 사람들도 무작위 감시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점까지 이르면 정치적 입장과 개인의 가치관에 따라 수많은 의견이 교차할 수밖에 없다. 이 얼마나 풍성한 텍스트의 원천인가.

스노든의 TED 강연 영상. 망명 중이라 원격으로 강연하고 있다.

  또한 스노든의 고백을 다룬 언론의 보도와 다큐멘터리 <시티즌포>, 스노든이 화면 속 얼굴로만 출연했던 TED 강연 영상을 보면 알 수 있듯 대개의 논의는 거대 담론에 머문다. 프라이버시권, 정보 보안과 감시 기술, 정부의 권력 남용과 테러와의 전쟁 등의 화두가 갖는 심각성은 대다수의 시민들에겐 남의 일처럼 느껴질 수 있는 위험성도 동시에 갖는다.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나만 당당하면 되지’. 그래서 올리버 스톤 감독은 교차편집을 통해 스노든의 일상을 영화 속으로 끌어들인다. 극 중 감시용 검색 시스템인 엑스키스코어(XKeyscore)의 위험성을 알리기 위해 감시 대상이 무한한 수준으로 확장되는 걸 보여주는 시퀀스로도 모자라서 스노든이 연인과 은밀한 시간을 보내는 동안 컴퓨터에 달린 웹캠 도촬을 걱정하고 집안에서 대화를 하며 감청을 의식하는 장면들을 보여줌으로써 이 영화가 다루는 주제가 결코 일상과 동떨어진 이야기가 아니며 이 영화를 보는 관객 당신들의 이야기가 될 수도 있다는 점을 노골적으로 보여준다.

  이 영화는 스노든 개인의 고뇌를 직접 다루면서 전 세계에서 스노든과 같은 처지에서 부당한 업무를 수행하며 갈등하고 있는 사람들과 업무 중에 추잡한 음모와 진실을 인지·취득하고도 내부고발자에 대한 불편한 시선과 보복 때문에 망설이고 있는 평범한 사람들에게 용기를 주는 부수적 기능도 내포하고 있다. 마이클 만 감독의 <인사이더>나 황우석 사태를 다룬 <제보자>, 윤석양 이병의 양심선언을 다룬 <모비딕> 등의 공익제보자 소재의 영화들처럼 믿을 수 있는 언론과 적절한 조력자를 구한다면 더 이상 양심을 거스르며 마음 고생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간단명료하게 보여준다. 개봉 전후로 올리버 스톤 감독은 여러 인터뷰에서 공익을 위해 진실을 밝힌 스노든은 사면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하지만 스노든의 공익제보의 대상과 내용은 너무도 거대해서 다른 공익제보자들과는 달리 간단하게 일상으로 돌아가거나 새로운 신분으로 평범하게 살긴 어려워 보인다. 현재 그는 몇 년째 러시아에서 망명 생활을 하고 있으며 언제든 미국으로 보내져 반역자로 재판을 받을 처지에 있다. 미국 정부의 주장대로라면 줄리언 어산지와 위키리크스 사례처럼 그의 고백 때문에 세계 곳곳에서 암약 중인 요원들의 신분이 밝혀지고 미국의 국익이 침해받을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지금 이곳, 감시 사회를 향한 빨간 약


  영화 속에서 스노든을 키운 상급자는 이렇게 말한다. “2차 대전이 끝난 지 60년이 지났는데도 3차 대전은 일어나지 않았다. 왜? 우리가 우리의 능력을 사용했기 때문이지. Have you considered that it's been 60 years since the Second World War and we still have not had something third. Why? For that we used our power.” 전쟁을 막기 위한 많은 사람들의 다양한 노력을 무시하는 발언이지만 일부는 진실이다. 핵전쟁과 테러, 사이버 공격을 막기 위해 세계 각국의 정보기관은 끊임없이 첩보 활동을 벌일 것이다. 전시와 평시라는 구분이 무의미해지고 전장과 일상생활 공간의 경계가 무너진 테러리즘 시대인 지금은 더욱 그럴 것이다. 아마 실제로도 많은 테러와 충돌을 막았을 것이고 그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의 생명과 재산을 지켰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들의 모든 행위가 정당화되진 않는다.

테러용의자의 지인의 지인의 지인까지 감시를 한다면 수 백만 명이 대상이 된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테러를 막기 위해 적법한 절차도 건너뛴 채 의심이 가는 사람의 지인의 지인의 지인의 통화를 엿듣고 SNS 게시글을 뒤지고 통장 거래를 감시하고 노트북의 웹캠을 통해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는 건 월권행위를 넘어 범죄에 가깝다. 스노든 상급자의 말처럼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유보다는 안전을 더 원할지는 모르지만(“Most Americans do not want freedom. They want security”), 시민들이 힘을 가진 자들이 무엇까지 할 수 있을지 깨닫는다면, 그리고 힘에 도취된 자들이 그들의 힘을 키우고 지키기 위해 어디까지 갈 수 있을지를 깨닫는다면, 지금처럼 무한한 권력 행사를 방치하진 않을 것이다. 오히려 그들이 가진 권력을 분산시키고, 사용 범위를 엄격히 제한하고, 사안에 따라서는 정부 관계자뿐만 아니라 시민들도 투명하게 활동 내역을 확인할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할 것이다.


  이 영화는 일종의 입문서 같은 영화다. 오랜 세월 동안 전 세계 각지에서 정보 인권을 주장하고 국가 권력의 남용을 경계한 사람들이 외치던 구호가 한낱 음모론자들의 망상이 아니었음을 보여준다. 비록 스노든이란 한 사람의 행보를 너무 긍정적으로만 그리고 있어 자칫 영웅 만들기로 흐를 위험성을 안고는 있지만, 긴 세월 축적된 감시사회에 대한 논의를 쉽고 친절하게 설명하고 그와 동시에 차분하게 고민해 볼 거리도 던져주고 있어 일반인들이 국가 권력과 안보(안전)와 자신의 삶이 어떻게 얽혀 있는지를 한 번쯤 되돌아보게 만들기에 적당하다. 감시체계에 대해 경각심을 갖고 개인적인 차원에서 대응할 수도 있고, 시민단체의 움직임에 동참하여 감시자들을 감시할 수도 있다. 혹은 감시의 주체로 살아가고 있는 누군가가 또 다른 스노든이 되어 건강한 사회를 위한 공익제보를 할 수도 있다. 관객들이 영화 속에서 벌어진 일이 더 이상 허구나 남의 나라 일이 아닌 우리나라 일이며 나 자신의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이 영화는 목적을 이룬 것이라 생각한다.


  너무 뻔한 바람이지만, 이 영화를 많은 사람들이 보고 감시사회에 대한 경각심을 갖고 관련 영화와 서적 같은 자료를 찾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스마트폰을 쓰고 SNS에 매일 접속하는 이상 이 세상 그 누구도 감시로부터 완전하게 자유로울 순 없으니까. 더불어 소설을 좋아하는 분들은 코리 닥터로우의 ‘리틀브라더’도 읽어 보시길 추천한다. 정부의 감시체제와 싸우는 10대 청소년의 저항을 다룬 소설인데 재미도 있으면서 이야기 속에 각종 감시 기술을 쉽게 풀어서 녹여 넣은 수작이다. 다큐멘터리 <시티즌포>에서도 스노든이 이 책의 후속편인 '홈랜드'를 갖고 있는 모습이 나온다.


  끝으로, 파란 약보다는 빨간 약! 


<시티즌포> 중 한 장면. 스노든 추천 도서 '홈랜드'가 곧 출간된다는 소식이 들린다




스노든 폭로 1주년 요약 기사 : http://www.itworld.co.kr/news/87884

스노든 폭로 내용 탑10 글 : http://smartincome.tistory.com/1205

스노든 TED.com 강연(한글자막) : https://download.ted.com/talks/EdwardSnowden_2014-480p-ko.mp4

러시아가 트럼프 정부에 스노든을 선물로 넘길 수 있다는 예측 기사 : 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7/02/11/0200000000AKR20170211055451080.HTML 

올리버 스톤 감독의 스노든 사면 주장 기사 : 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6/09/15/0200000000AKR20160915004600075.HTML

내부고발에 대한 위키백과 내용 : https://ko.wikipedia.org/wiki/내부고발

‘내부고발자’란 호칭 : 영어권에서는 공익을 위해 감춰진 진실을 밝히는 사람을 위험을 알리는 사람이라는 뜻의 ‘whistle blower(호루라기를 부는 사람)’라고 부르지만, 우리말 ‘내부고발자’는 얼핏 부정적으로 들릴 수 있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얼마 전부터 ’공익제보자’란 호칭이 대안으로 사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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