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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일 Feb 23. 2017

킬 카운트의 윤리학, <존윅:리로드>

낙엽처럼 쓰러진 악당들을 추모하며

1. <존윅:챕터2>를 봤다. 1편보다 주인공 존을 움직이게 만든 동기는 단순해졌고 꽤 흥미로운 킬러 길드의 세계관은 명확해졌으며, 상대편은 처참하리만치 많이 죽었다. 아니, 학살당했다고 해야 정확할 것이다. 전직 킬러가 주인공이고 상대방들도 대부분 전문 킬러다 보니 주먹 한 방 맞고 기절하는 일 따위는 없었다. 몇몇 악당은 멋지게 맞짱을 뜨고 몇 명은 주인공 몸에 총알을 맞추지만 방탄 신사복 덕분에 키아누 리브스 형님은 즉각 반격을 해주신다. (그 말은 반드시 죽인다는 말이다) 느린 액션과 과장된 ‘으악새’ 연기가 만연했던 8,90년대 액션영화만 보다 산속으로 들어간 사람이 하산해서 첫 영화로 FPS 게임 수준으로 빠른 총격씬과 군더더기 없는 몸놀림이 난무하는 <존윅> 시리즈를 보면 벌어진 입을 다물 수 없을 것이다.  


2. 대개 액션영화 속 주인공은 상대방보다 우월한 능력을 갖고 있거나 반드시 이겨야 하는 동기를 갖고 있기 때문에 결말부에서 살아남는다. 그 말은 상대방(혹은 악당)은 반드시 죽거나 처벌받아야 한다는 말이다. 세월이 흘러 사회가 예전보다 각박해지다 보니 나쁜 놈들은 더욱 악해졌고 그에 따라 응징 수단도 잔인해지고 응징 정도도 강해졌다. (끝나기 직전 깜짝 반전을 위해 어설프게 마무리하거나 관용을 베푸는 일 따윈 없이 반드시 죽인다는 말이다) 전통적인 이야기에선, 그리고 여전히 대부분의 영화에선 주인공의 반대에 있는 안타고니스트에게도 나름대로의 사연을 주고 주인공과 대등하게 겨룰 기회는 준다. 비록 죽어야 할 운명일 지라도 허세를 부리거나 자기 변명을 하는 정도의 여유는 주는 것이 관례다. 하지만 그런 신파극 설정과 비현실적인 결말에 신물이 난 관객들은 어느 새인가 ‘무뇌 액션영화’를 찾기 시작했다. “다 필요없고 죽이는 액션만 보여주면 돼!” 탄탄하게 짜여진 이야기 구조를 갖거나 주인공의 감정에 동화하여 험난한 여정을 함께 하는 건 진작 포기한 영화들, 예를 들어 <아드레날린24>나 <존윅> 시리즈처럼 현란한 액션과 시청각 자극을 제공하는 영화들도 더이상 조롱당하지 않게 된 것이다. 아니, 오히려 열광한다. 그런 면에서 존윅과 별다르지 않은 무표정 연기를 보여준 왕년의 액션 장인 스티븐 시걸은 좀 억울할 지도 모르겠다.


이젠 유머 소재로나 소환되는 왕년의 액션 스타 스티븐 시걸 옹.

3. 액션영화 속 악당들은 그렇게 무의미하게 죽어도 되는 걸까. 물론 예전에도 주인공이 아무렇게나 휘두르는 총구에도 추풍낙엽처럼 쓰러지는 악당은 존재했다. 특히 악당의 국적이 소위 ‘제3세계’라던가 직업이 테러리스트라면 총 한 번 쏴보지 못하고 등장하자마자 쓰러지는 일은 피할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단지 주인공의 멋진 솜씨를 보여주기 위한 병풍이나 소모품처럼 사용되는 요즘 ‘무뇌 액션영화’ 속 악당들은 통쾌함보단 측은함을 불러일으킨다. 단지 아무 것도 못하고 잔인하게 죽어서가 아니라 등장 이유가 순전히 주인공의 ’멋’ 때문이라서 그렇다. 나름 프로 악당들이 작전 개념도 없이 ‘돌격 앞으로’를 외치며 쓰러지고, 몇 명인지 어떤 무기를 들고 있는지에 상관없이 주인공의 동작에 맞춰 리드미컬하게 쓰러지는 건 인명경시 풍조를 넘어 현실 속 단역배우까지 소품 취급당하는 것처럼 느껴져 그야말로 영화란 예술에 대한, 그리고 관객에 대한 모욕으로까지 느껴진다. 

'다크나이크'가 학살을 자행하는 <이퀼리브리엄> 속 건카타.

4. 하긴 ‘GTA’ 같은 게임이 그렇듯 이야기 속 인물들이 무의미하게 죽어가는 게 꼭 ‘무뇌 액션영화’에서만 벌어지는 일은 아니지만 <이퀼리브리엄>에서 순전히 주인공의 건카타를 돋보이기 위해 총기 난사에 쓰러져간 헬멧 쓴 이름 없는 악당들을 보면 재미가 있다 없다를 떠나서 이렇게까지 액션영화를 만들어야 하나, 이런 액션영화까지 봐야 하나 회의감이 든다. 뻔한 오락영화를 보고 무슨 회의감 운운이냐고 물으면 그닥 할 말은 없지만 영화 속 인물들의 죽음에 무감각해지면 차츰 현실 속 사람들, 특히 화면으로만 접하게 되는 ‘미디어’ 속 사상자 숫자에 대해서도 무뎌지지 않을까 하는 괜한 걱정이 든다. 도로 전광판 속 ‘어제의 교통사고 사상자’가 한 명이든 다섯 명이든 별 상관없는 것처럼. 


5. 해외에선 액션영화에서 주인공이 죽인 사람의 숫자를 일일이 세는 문화가 있다. 이른바 ‘킬 카운트 kill count’다. 예전에야 주인공의 전투력을 나타내고 관객들의 아드레날린 수치를 높여주는 정도를 측정하기 위해 사용되었을지 모르지만, 전세계 어딘가에선 끔찍한 죽음이 끊이지 않고 이어지고 있는 요즘엔 저 수치들이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굳이 오해할까 봐 부연설명을 하자면 극적 재미를 위해 사람을 죽이지 말자는 말이 아니다. 나도 허구와 현실을 구분할 줄은 알고, 잔인한 게임을 하면 범죄자가 된다는 주장을 하는 것도 아니다. 단지 죽일 땐 죽이더라도 사람을 소품 취급하지는 말자는 거다. 80명이 죽든 90명이 죽든 이야기를 완성시키는 데 차이가 없다면 50명으로 줄일 수도 있고 5명으로 줄일 수도 있지 않을까. 혹은 (상대적으로) 정치적으로 올바른 주인공들이 활약하는 다른 액션영화들처럼 생명에 지장이 없는 곳에 총을 쏴서 전투력만 빼앗는 것도 방법이고. 그것이 인류의 구성원으로 살아가는 최소한의 예의란 생각이 <존윅:챕터2>를 보며 들었다. (심지어 1편에선 죽었던 멍멍이도 2편에선 안 죽는다!)


6. <존윅:챕터2>에 대한 해외와 국내 관객들의 공통된 반응이 ‘액션은 죽인다’길래 삐딱한 마음이 들어 이 글을 써 봤다. 다 쓰고 나니 진지충이 예능을 다큐로 받은 생각이 들긴 하다.

존 윅이 죽인 사람들에 대한 인포그래픽 통계.


•<존윅:챕터2> 킬카운트 인포그래픽 출처 https://www.visu.info/john-wick-2-kill-count

•킬카운트 전문 유튜브 채널 https://www.youtube.com/channel/UCS3rvGI9KoQzvRa9i0ZIS7A/videos

•글 쓰면서 참고한 외국 글(영문) www.forbes.com/sites/.../gta-5-and-the-ethics-of-mass-murder

•<존윅> 1편 킬카운트 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xlm7TSVwF_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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