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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일 Mar 15. 2017

지아 장커 감독의 <산하고인>

시대의 흐름과 함께 가는 영화-예술-예술가란?

2016년 3월에 쓴 글입니다.


지아 장커 감독은 소위 예술 영화의 길로 날 이끌어 줬다. 2000년대 초(적어도 2003년 이전)에 EBS에서 본 <소무>는 강렬했다. 16mm 필름의 질감. 중국 빈민가. 소매치기. 암울한 청춘. 조영남을 닮은 배우가 전신주 케이블에 묶여 있는 끝 장면은 날 매혹시켰다. 이전까지 내 영화 취향은 그저 비디오 가게 책자나 출발 비디오여행에 나온 소개작을 섭렵하는 걸 넘어서지 못했다. EBS에서 심야에 틀어주는 짐 자무시의 <천국보다 낯선> 같은 해외 예술영화나 독립영화관의 단편들을 즐겨보긴 했지만 그런 영화를 극장까지 가서 볼 정도의 고상한 용기는 없었다. 극장에 가서 보는 영화라곤 블럭버스터나 좋아하는 감독과 배우, 장르의 영화들 뿐이었다. 그러다 만난 <소무>는 저염식단 같은 충격을 주었다. 자극적이진 않은데 몸에 좋은 것 같은 기분? 혹은 허구의 세계가 아닌 실제 사람 사는 세상의 이야기 그 자체라는 깨달음. 그 이후로 대학로의 하이퍼텍 나다와 압구정동의 씨어터 2.0, 명동의 CQN명동, 종로의 스폰지하우스 등을 매주 다니며 소위 예술영화와 독립영화를 마구 섭취했다.(파주 사는 백수 주제에 서울로 매주 나갔던 건 실로 대단한 일이었다. 물론 헌혈하고 받은 영화표로 멀티플렉스에서 흔한 상업영화를 보는 것도 게을리 하진 않았다. 정크푸드 만세!)

플랫폼, 임소요, 세계, 스틸라이프, 무용, 24시티… 최근에는 천주정, 산하고인까지. 모든 영화를 보진 못했지만 개봉하면 꼬박꼬박 가서 극장 스크린으로 지아 장커를 만났다. 감탄도 했고 때론 실망도 했고, 지루해하는 나 자신을 책망하기도 했다. 하지만 내가 어떻게 느꼈는지와는 다르게 조금씩 달라지는 그의 영화 제작 노선을 느끼는 건 행복한 일이었다. 한 영화감독과 동시대를 살며 시간에 따라 변하는 작품을 온전히 느낀다는 건 같은 시대를 함께 살아가는 사람만 누릴 수 있는 특권이니까. (이런 경험을 오롯이 하는 감독은 폴 토마스 앤더슨, 고레에다 히로카즈 정도가 생각난다. 그토록 좋아하는 스티븐 스필버그나 이와이 슌지는 완성되어 가긴 하나 시대를 머금으며 진화한다고는 말할 수 없기에.)


<산하고인>을 말하려고 긴 신앙고백을 했구나.
이 영화를 보며 처음엔 이 형님(1970년생이니 나보다 고작 8년 형님!)이 약을 잘못 먹었나 싶었다. - <스틸라이프>부터 다큐멘터리 스타일을 적극 도입하기전까진 평범한 드라마의 형식으로도 충분히 재미있는 영화를 만들었다. 비록 나날이 변해가는 중국 사회를 가감없이 보여주고, 그 안에서 때론 뜨겁게 때론 미지근하게 살아가는 청춘들의 모습에 마냥 재미있어 할 순 없었지만 ‘영화’의 역할과 기능이 무엇인지를 볼 수 있어 행복했다. (그런 점에서 스틸라이프-무용-24시티 삼연작은 내 취향은 아니었다. 난 늘 소무의 지아장커를 기대한 것이겠지) - 삼각관계. 미워도 다시 한 번. 심지어는 2025년 시퀀스는 <HER>까지? 소무의 지아장커든, 스틸라이프의 지아장커든 어느 쪽도 만들지 않았을 영화를 만들고 말았던 것이다. 누가 찍어도 찍을 수 있는 드라마? 그런데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그가 만든 영화들까지 함께 떠올려야 이 영화를 온전히 볼 수 있겠다, 라고.
1999년의 허름한 읍내와 후통은 <소무>부터 <세계>까지를, 2014년의 번화한 도시는 <스틸라이프>부터 <24시티>까지의 산업화 이후 시대를 담고 있었다. 2025년은 비록 시점상으로는 미래지만 누구나 떠올릴 수 있고 이미 누리고 있는 시간대라서 미래라기보단 현재라는 느낌이 더 강하게 든다. (어쩌면 중국인들이라면 1997년 홍콩 반환 직후 이민자들의 생활을 떠올릴 수도 있으니 익숙한 과거로 느낄 수도.)


주구장창 흘러나온 팻 숍 보이즈의 ’Go West’와 주인공 아들의 이름이 ‘달러’인 것을 보면 누구나 배금주의를 떠올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지구상의 그 어떤 자본주의 국가보다 더 인간의 값어치가 헐값인 나라가 중국이니까. 하지만 감독이 단지 서구를 닮아가고 돈을 좇는 중국의 현실과 퇴행을 비판하려고 이 영화를 만들었을까? 성경 이사야서 54장 10절에서 ‘산이 사라지고 강이 말라도 너에 대한 내 사랑은 절대 변하지 않는다’란 테마를 가져왔다는 제목은 인생의 가치가 사랑에 있다고 말하고 있다. 그저 찌질한 삼각관계 같은 사랑이든, 병 들어 죽어가는 남편을 위해 그의 정인(情人)이었던 여자에게 가서 구걸을 하는 순애보든, 세상이 있는 그대로 봐주지 못하는 희귀한 사랑이든, 아들에 대한 엄마의 모정이든, 변하지 않는 건 사랑이란 당연한 주장을 하고 있다. 그냥 ‘사랑’이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이다. 그동안 현실 사회의 끔찍함과 인간의 잔악함을 들추는 작품들을 주로 만들던 지아장커가 말해서 더욱 호소력 있게 다가온다. 그런 점에서 한번쯤 엉뚱한 사랑 영화를 만든 게 이상하지 않게 보인다. 비록 누구나 만들 수 있는 영화이긴 하지만.

오랜만에 불붙어서 길게 썼다. 그다지 새로울 건 없다만.



* 이 영화의 핵심 소품은 손전화다. 무전기 크기의 전화기부터 폴더폰, 아이폰, 아이패드, 2025년의 투명 디스플레이 폰까지. 정말 지아장커스럽지 않은 소품이다.
** 엽천문의 ‘take care’가 시대를 건너 나올 땐 <첨밀밀> 느낌도 났음. 세상에! 지아장커 영화에서!!
*** 2025년 파트에 나온 장애가를 보니 반가웠다. 다른 유명한 영화가 많지만 난 <최가박당>의 경찰로 기억하고 있거든.
**** 2004년 모 예대 영화과 면접에서도 소무를 언급하며 열심히 영화에 대해 떠들었다. 결과는 합격...이면 뭘 하나. 바로 때려치웠는 걸. 내 팔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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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무> 전편 유튜브(자막은 없음) : https://www.youtube.com/watch?v=BDP99GuCI0E&ebc=ANyPxKqum3MrOw9e0S3ZUhC5ahIXvByWxtv2U7fJTBOLGPKaKa55p3vG-ebuerm-FnPdJOqmBFp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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