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의 지능이란 인간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가장 큰 요소 중 하나이다. 인류는 언제나 만물의 영장으로써 무소불위의 지적 권위를 누리며, 세계의 주인으로써 군림했다. 그들은 창조에 너무 뛰어난 재능을 보여, 지금 그들을 있게 해 준 지능 자체마저 그들의 손으로 만들었다. 그러나 그렇게 만들어진 인공지능은 어쩌면 인간보다 지능이 뛰어날지도 모른다. 만일 그렇다면, 인공지능은 조만간 인류 위에 군림하게 될까?
인공지능이란 관념이 생긴 이래, 인류는 지금껏 누려왔던 지능의 권좌를 인공 지능에게 위협당할 불안에 떨었다. 우리가 지금껏 지적으로 열등한 생명체에게 해 왔던 일들을 반추하면 지극히 합리적일 이 불안감은, 소설과 영화, 사회적 논쟁의 형태로 표출되었고, 딥마인드의 등장 이래 인공지능에 대한 관심과 불안은 급속도로 증폭되고 있다. 인공지능의 군림에 대한 걱정이 현실적이든 아니든, 앞으로 인공지능이 일상화된 세상에서 삶의 모습은 많이 변할 것이 분명해 보인다.
이렇게 지능에 대한 관심과 걱정이 늘어가는 추세 속, 높은 수준의 필요한 책이 출판되었다. 신경과학을 공부하여 지능에 대한 조예가 깊고, 경제학을 전공하여 사회의 움직임도 조금 아는 한 생물학자가 우리가 정체도 모른 채 불안에 떠는 지능의 본질을 쉽게 규명해주기 위하여 책을 펴 냈다. 이 책의 모든 단원에서 복잡한 신경과학 전문 서적을 펴 보지 않고도 지능에 대해 통찰을 얻고, 미래에 대한 식견을 넓힐 수 있는 유용한 지식을 얻어 갈 수 있을 것이다.
나와 우리 사회에 대한 이야기
지능에 대한 진지한 고찰이 시작된 이유는 인공지능의 영향이 크지만, 지능이 무엇인지 아는 것은 결국 우리 스스로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일이다. 게다가 저자는 경제학을 전공한 경험이 있어, 신경과학보다 피상적이지만 더 실용적이고 일상적인 경제학 이론들을 자주 가져다 쓴다. 덕분에 우리는 우리의 뇌가 의사결정을 내리고, 다양한 정보를 학습하는 과정을 이해하고 우리 삶에도 적용할 수 있다.
이 책은 지능을 개념과 역사, 학습의 3가지 측면에서 다룬다. 그중에서 무게감을 실은 것은 학습에 관한 내용인데, 이 단원에서 가장 다양한 범위의 개념들을 다루고 , 인간과 사회에 대한 통찰도 학습을 이해하며 가장 많이 얻어갈 수 있었다. 우리가 아는 파블로프의 개 실험부터 우리가 광고에 현혹되는 이유, 우리가 돈을 탐하는 이유까지가 모두 연결되어 있다. 학습의 메커니즘은 우리 일상에 이미 깊이 들어와 있었다.
책의 내용 중 신경 과학에 기반한 내용이지만 우리에게 삶의 지침이 될 법한 지식 하나를 소개한다. 이 책에선 실망, 후회, 좌절 등을 우리 뇌의 '예측 오류'라고 설명하는데, 만약 우리가 예상한 것보다 행동의 보상이 크다면 뇌는 쾌감으로 그 행동을 강화하고, 보상이 낮다면 실망으로 그 행동을 약화시킨다고 한다. 그러므로 균형 잡힌 예측은 적절한 성취감과 실망을 두루 격어야 한다. 실망과 좌절이 없는 사람은 세상사에 너무 낮은 기대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게임 이론으로 풀어간 뇌의 사회적 역학도 재미있는 부분이다. 죄수의 딜레마는 많은 사람이 알 테지만, 반복되는 죄수의 딜레마, 공유재의 문제 등은 더 복잡하지만 재미있는 시사점을 우리에게 안겨 준다. 사람 사이의 신뢰, 정의감 등이 전략에 들어가고, 개인의 이기적인 선택이 최상의 시나리오를 막는 등. 조금 더 역동적인 조건에서 지능이 작동하는 방식과, 사람들이 모여서 만들어가는 사회에 대한 흥미로운 화두들을 던져 준다.
뇌의 발달 중 많은 부분은 사회적인 상호 작용을 위해 진화하였고, 우리가 아무런 목표를 가지고 있지 않을 때도 뇌의 사회성을 관장하는 부분은 꾸준히 작동하고 있다. 책에서 저자가 역설하는 주장 중 하나는, 지능은 그것을 소유한 개체의 목적과 분리할 수 없다는 것이고, 사회성은 인간의 목적 중 가장 큰 요소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의 지능이 무엇을 배우고, 어떻게 행동하는지 아는 데 학습과 사회성의 열쇠는 근본적인 통찰을 제공한다.
인공지능은 우리의 왕좌를 탈환할 것인가
동시대 최고의 물리학자였던 스티븐 호킹, 저명한 미래학자 레이 커즈와일을 비롯한 수많은 석학들이 인공지능의 위험을 경고했다. 하지만 수많은 인터넷 서비스와 데이터 산업, 자율주행 등에 이미 활용되고 있는 시대에, 인공지능과의 공생을 더 이상 부정하긴 힘들 것 같다. 그렇다면, 서두에서 던진 질문은 조금 두려운 질문일 수 있다. 인공지능은 인간 위에 서게 될까? 우리는 지구상 최고의 지능체의 영예를 빼앗기는 것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인류를 위협할 인공지능에 대한 걱정은 아직 기우일 가능성이 크다. 저자는 지능은 그 주체의 목적과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다고 역설한다. 인공 지능은인간이 정해준 과제를 풀기 위해 지능을 사용하므로, 컴퓨터에서 나온 지능이라도 지능의 사용 주체는 인공 지능에게 목적을 설정해 준 인간이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인공지능의 하드웨어적 성능은 뇌의 시냅스의 정보처리 능력을 따라잡을 수 있지만, 지속적으로 문제를 설정하고 해결해가는 두뇌의 활동을 따라잡을 만한 소프트웨어는 갈 길이 멀어 보인다.
책에서 나온 '다양한 환경에서 주어지는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이라는 지능의 정의에 가장 근접한 인공지능은 알파고 등 슈퍼 컴퓨터가 아니라, 화성에서 독자적으로 판단한 임무를 수행하는 로버들이다. 화성과 통신하는 데 쓰이는 전파가 화성과 지구를 왕복하는 데는 6분이 걸리고, 이는 미지의 행성에서 일어나는 긴급 상황에 대처하기에 너무 늦은 시간이다. 그러므로 화성 탐사 로버는 독자적인 상황 판단 시스템을 구축할 필요가 있었고, 화성 탐사의 발달은 독립적 지능을 갖는 프로그램의 발달과 발맞춰 이루어졌다.
저자는 인간의 뇌는 문제 해결을 위한 방법을 스스로 찾는다고 하며, 소프트웨어가 뇌의 활동을 따라잡기 위해서는 적어도 프로그램을 선택하는 프로그램, 메타-프로그램을 갖추어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생존을 위한 지능을 모방한 화성 로버의 경우, 탐사 로봇이 많아질 미래 로버에 탑재되어야 하는 지능은 생물의 사회성에 해당하는 영역일 것이라고 추측하기도 했다. 인간을 더 닮거나, 자신의 전문 영역을 발달시키기 위해서, 미래의 인공 지능은 과연 어디로 나아갈까?
미래 인공지능이 나아갈 길
딥 러닝 기술은 학습에 관한 이론 중 신경 가소성을 모방하여 기계에게 학습을 시키는 방법이다. 이 기술이 적용된 기계는 다양한 자료로 바둑, 얼굴 인식, 언어 등을 배워 인간과 비슷하거나 더 나은 경지에 쉽게 도달할 수 있다. 그러나 세계 최고의 바둑 기사와 대국을 치를 수 있는 이 기계가, 다른 기계와 기본적인 의사소통을 행할 수 있을까?
사회적 상호 작용이 어려운 이유는 다른 개체의 사회적 행동이 바둑판의 경우의 수와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복잡하고, 또 내 행동이 다른 개체의 행동에 영향을 미치는 상호작용 관계 때문이다. 영장류 등 몇몇 동물들의 유전자는 생존을 위해, 더 유리한 사회적 입지를 위해, 타인의 의도와 선호를 파악할 수 있는 고성능의 큰 두뇌를 만들었다.
화성의 로버에서도 예시를 들었지만, 단순한 문제를 풀 수 있는 기능적 지능에서 복잡하고 다양한 문제를 풀기 위한 지능으로 발달하기 위한 과정에서 인공 지능은 다른 인공 지능과의 조우를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66년 정신과 상담의를 흉내낸 인공지능 일라이자는 정신분열증 환자 인공지능 패리와 그럴듯한 대화록을 내어놓기도 했다. 이 둘은 실험적 조우였지만, 맞닥트릴 수밖에 없는 사회적 상호 작용에서도 그들이 원만한 관계를 성공적으로 유지할 수 있을까?
화성의 로버끼리 정보를 공유하고, 연료 부족 및 고립 등의 문제를 서로 해결해 주는 시스템은 그 자체만으로 재밌어 보이지만, 개인적으로는 인공지능 간의 협업이라는 주제는 더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건축 프로젝트 혹은 국제적 네트워크를 인공지능의 힘 만으로 구축할 능력을 갖출 때, 인류의 생산성을 얼마나 많이 끌어올릴 수 있을지 기대가 된다.
이 책에는 인공지능의 미래가 명확히 다루어지지 않는다. 사실 지능에 대한 탐구가 핵심 주제이고, 인공지능의 언급 비중이 높지도 않다. 그러나 언급했듯 이 책은 인공지능 시대라는 시류를 탄 책이고, 많은 독자는 인공 지능에 대한 관심으로 책을 집었을 것이다. 그러나 나와 흥미가 다른 독자 분들은 메타 프로그램 혹은 인공 호기심 등 다른 주제에서 비전을 보았을 수도 있다. 이 책은 관점의 다양성이 부족하지 않기에, 사회를 보는 시각을 얻고 자신만의 미래관을 세울 수만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가치를 얻어 간 게 아닐까.
학습과 지능이라는 주제를 논하기에 지면이 얇아,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다 못 했을 것이다. 그러나 저자가 충분한 절제심을 가지고 책을 써 준 덕분에 우리는 큰 부담 없이 지능에 대한 통찰을 얻어갈 수 있었다. 하지만 아쉬운 점이라고 한다면, 지능을 탐구하는 데 지능의 발달사를 깊게 다루는 것은 우선순위가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첫 장에 발달사를 간략히 다루고 학습, 사회성, 창의성 등 다양한 주제에 지면을 더 할애했다면 내용이 더 풍성해지지 않았을까?
그 주제 중 학습만을 집어 이야기한 것도 내가 이 책을 인공지능에 대한 내용을 에둘러 가르쳐주는 책이라고 판단한 이유 중 하나이다. 그러나 그 목적이 맞다고 한다면, 지능을 이해하는 틀을 효과적으로 잡아 준 것도 사실이다. 다양한 내용을 얕게 다루었기에 더 다양한 책을 읽어야 지식을 탄탄하게 다질 수 있지만, 쉽고 흥미로운 내용과 높은 신뢰도의 지식을 다 잡는 책은 흔하지 않다. 뇌과학 입문서로 감히 추천할 만한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