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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iesta Jun 07. 2020

<영화> 잉여들의 히치하이킹

영화를 찍고자 삶을 영화로 만들어버린 젊은이들의 이야기



스무 살이라는 단어에는 설렘이 스며 있다. 20대, 우리에게 단 한 번 주어진, 미래의 가능성이 무궁무진한 젊음의 대명사와 같은 시절이다. 우리는 꿈을 위해 달려가거나, 달콤한 사랑을 맛보거나, 젊음으로 누릴 수 있는 것들을 누리면서 각자의 방식으로 이 시간을 보낸다.


 나는 더 좋은 대학 타이틀을 위해, 무 살 젊음의 초입을 오롯이 재수학원에 헌납했다. 최선을 다 한 시절이었으나 아쉽게도 결과는 좋지 못했고, 한 학기 학교생활을 한 후에도 현실에 만족하지 못한 나는 자퇴를 생각하기에 이른다. 그때 나를 만류하며 하신 어머님의 제안이, 한 학기 휴학을 하고 유럽을 여행하며 생각을 정리할 시간을 가져 보라는 것이었다.


 그렇게 정말 베낭 하나와 하루 5만 원 안팎의 예산으로 계획 없이 나선 유럽 여행. 사람과 제도와 문화 모든 게 다른, 낯설지만 매력적인 타지에서 예상치 못한 문제로 처음 보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청하고, 비록 실패였지만 히치하이킹을 시도하고, 노숙도 해 보며 지냈다. 그 속에서 만난 사람들, 특별했던 기억들, 낯선 공간을 거침없이 종횡무진하며 얻은 자신감. 행이란 경험은 나의 값진 보물이 되었.


 그런데, 가끔씩만 살짝 꺼내 보는 여행의 기억들이, 서툰 대학생 다큐멘터리를 보며 살아나게 될 줄은 몰랐다. 믈랭으로 무작정 출발하는 잉여(surplus) 크루를 보며 그 시절의 도전 의식이 혈관에 다시 들어찬 느낌이 들었다. 감정 묘사 기법, 촬영 테크닉 어떤 것도 갖추어지지 않은 서투른 저예산 독립 영화이지만, 내가 겪었던 젊음을 그들도 열정적으로 헤쳐가는 모습이 눈에 보여, 어떤 영화보다도 감정을 이입해서 볼 수 있었다.


  첫 화에 나타나는 그들의 모습은 너무나도 평범한 대학생들이다. 영화를 보며 더해지는 수식어도 훌륭하지는 않다. 계획적이지 못하고, 여행 내 가벼운 농담으로 대화를 채우며, 객기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대학생. 철없는 청년의 전형적인 모습 같다. 사회가 잘 닦아 놓은 교육제도에서 벗어나 여행이라니. 누군가의 눈에는 미래를 생각 않는 어린애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나 역시 그들의 판단이 옮았는지 판단할 만큼 성숙하진 못하다. 그러나, 자기 앞에 놓인 문제를 자기만의 힘으로 책임질 능력이 있는 사람이면, 누구나 성인으로 불릴 자격이 있다고 생각한다. 미래에 대한 불안, 쉽게 열리지 않는 타지의 문, 차비 같은 사소한 문제로도 느껴지는 막막함. 이 모든 걸 온전히 견디는 일이 쉬우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스무 살은 성인의 초입이자 젊음의 정점에 해당하는 시절이다. 과연 이들만큼 젊음의 패기를 온전하게 사용하고, 성인에게 주어지는 삶의 무게를 멋지게 감당해 냈다고 주장할 사람이 몇이나 될까? 나는 그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고, 젊음을 가치 있게 활용했다고 생각한다. 그들이 삶에 무책임한 사람이라면 어떻게 인생을 바꿀 여행을 기획할 수 있을까? 영화 내내 그들의 여정을 마음 깊이 응원하며 보았다.


그들의 여정을 지배하는 키워드는 무모함이다. 앞뒤 재지 않고, 학비가 모자라니 모아 둔 돈으로 여행을 가자. 여행비가 모자라니 우리 영상 기술로 돈을 벌자. 차비가 모자라니 히치하이킹을 하자. 어느 것 하나 성공할 것 같지 않지만 몇 개월 시행착오를 거친 후 그들은 꽤 많은 호스텔에서 영상 편집을 맡길 만큼 자리를 잡는다. 그들의 영상 편집 실력이 뛰어난 것도 무시할 수 없겠지만, 아무리 영상을 잘 만든다 한들 도전이 없다면 주어지지 않았을 기회들이다.


 패기와 도전이 만들어낸 이야기가 갖는 매력 덕에, 이 대학생 영화학도들은 연출을 할 만한 베테랑들도 아니고, 짜여진 시나리오가 아님에도 뮤직비디오를 만드는 과정에는 흡입력 있는 전개와 희로애락, 반전까지 갖춰져 있다. 그들의 여행 자체가 하나의 완성도 있는 시나리오라는 것이다. 그들이 안정적인 수입을 가져다주는 호스텔 홍보에 안주했다면, 대본 없는 이 영화이 절대 멋들어진 시나리오가 만들어질 수 없었을 것이다.


 영화의 대사는 날것 그대로이고, 화면은 초보적으로 편집되어, 만듦새가 좋은 영화는 아니다. 고로 작품 감상을 원하는 사람에게는 추천하고 싶은 영화가 아니다. 그러나 투박해 보이는 이 영화에는 이십 대에 가져야 할 삶에 대한 태도가 짙게 녹아 있다. 이십 대라는 나이처럼, 서툴고 어리숙하지만 고유의 매력을 잃지 않고, 보는 사람에게 열정을 불어넣어 주는 영화이다.


 그러므로, 모두가 한 번쯤 봐야 하는 시대의 명작이라 주장하지는 않겠다. 그러나 꿈을 좇다가 현실에 지쳐 버려, 날개를 접은 대한민국의 수많은 청년들에게는 이 영화를 조심스레 권해 보고 싶다. 아직 주어진 시간이 많으니 두려움은 떨쳐 두고 무작정 뛰어들어, 스스로의 젊음을 빛내 보라고. 내 나름대로 건네는 작은 격려이자 위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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