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fiesta Jan 03. 2021

바이킹의 상상이 빚은 판타지

『북유럽 신화』- 닐 게이먼







    판타지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도, J.r.r 톨킨의 《반지의 제왕》을 들어본 적 있을 것입니다. 중간계를 포함한 다중 세계, 엘프와 오크, 드워프와 거인족 등 현대 판타지의 세계관들은 톨킨의 작품에서 개념을 재활용한 것이 많죠. 그러면 톨킨은 모든 걸 혼자 힘으로 상상했을까요? 당연하게도, 그 역시 이미 존재하는 역사와 신화의 이야기들로부터 영감을 많이 얻었습니다. 그리고 그에게 아이디어를 제공한 많은 이야기들 사이에는 북유럽 신화 역시 당당히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현대인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판타지들 사이에는, 상상력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 마초적 이미지의 노르만족이 나눈 이야기가 스며들어 있는 것이죠.


    판타지보다 조금 더 대중적으로 우리가 북유럽 신화를 접할 수 있는 예가 있습니다. 바로 마블의 야심작 《어벤저스》죠. 영화의 스토리라인에서 토니 스타크와 함께 주인공처럼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매력 있는 캐릭터, 토르가 바로 북유럽 신화의 인물입니다. 토르와 로키, 오딘 같은 북유럽의 신들은 마블 세계로 오며 많은 각색이 들어갔지만, 대형 영화사답게 본래 그들의 성격과 특징을 잘 살려서 영화 속에 녹여내었어요. 이처럼, 우리에게는 익숙하지 않지만 다양한 대작들이 차용하는 북유럽 신화는, 어떤 매력을 가졌길래 작가들의 상상력 속으로 녹아들 수 있었을까요?


    먼저 알아둘 것은 북유럽 신화는 에다라는 구전 문학의 소재였고, 초반부에는 운문의 형태로 주로 활용되며 전승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즉, 노르만 인 입장에서는 북유럽 신화는 그저 흥미로운 노래 가사였고, 당연히 주민들과 즐거운 이야기를 공유하고자 부르는 노래 가사를, 세부적인 설정까지 철저히 따져가며 작성하진 않았죠. 그래서 북유럽 신화는 다양한 버전과 스토리 내 여러 모순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목적에 충실해서 내용이 흥미롭고, 같은 이야기도 다양한 버전이 있지만, 닐 게이먼이 정리한 신화의 내용은 주로 활용되는 내용을 잘 정리해 놓았습니다. 북유럽 신화를 볼 때는 세계관에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는 대신, 신들이 벌이는 좌충우돌 일대기를 그냥 보고 즐기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북유럽 신화만이 갖는 특징


    신화는 다양한 흥미로운 에피소드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신화답게 일상에서 만날 수 있는 현상들의 원인을 자기만의 방식으로 풀어낸 이야기들과, 신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에피소드들이 내용 대부분을 채우고 있죠. 전능하지 않은 신들이 얽히며 만들어내는 이야기를 읽어가다 보면 신화의 주인들에게서 쉽게 느낄 수 없는 친근감이 들곤 합니다. 《어벤저스》의 토르가 갖는 친숙함 역시 신화의 이런 특색을 반영한 것이겠죠. 책에 담긴 세부적인 에피소드들은 직접 한번 읽어 보시는 것을 권장드리며, 이 글에서는 신화를 읽을 때 참조할 만한 북유럽 신화만의 특징들을 간략히 소개하고자 합니다.


    먼저, 북유럽 신화에는 세계 종말의 계시이자 신들의 전쟁인 라그나로크가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신화의 세부적인 에피소드들은 대부분 영감의 원천, 지진의 원인 등 일상적인 현상들을 과학적 지식 없이 설명하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아마 게르만 족의 농민들이 세계를 자기 나름대로 설명하려 내놓은 그들만의 이야기일 것이고, 이런 이야기들을 모은 신화는 허구이지만 그들의 눈에 비친 세계가 어떤 것이었는지를 추론하게 해 줍니다. 신화가 문화의 일부이자 중요한 사료로써 기능하는 이유이지요. 그런데 그런 신화가 세상의 종말을 예견하고 있고, 신들도 이를 알며 라그나로크를 대비하는 것이 그들의 중요한 과업이라는 사실은 의미심장합니다.


    전쟁과 멸망이 세계의 종착역이라는 점에서, 이는 상당히 염세적인 세계관인 것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전쟁에 대한 이들의 인식을 들여다보면, 과연 이게 비관적인 미래만을 의미하는 것일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북유럽 신화의 최고신 오딘은 산하에 에인헤랴르라는 정예 전사 부대를 유지하고 있는데, 죽고 나서 전사들의 궁전인 발할라에 들어가는 것은 신화에서 천당에 해당하는 최고의 영예입니다. 이곳은 전투 중 영예롭게 전사한 자들만이 들어갈 자격을 얻는 곳인데요, 힘들게 싸워 들어간 발할라에서 하는 일이 뭘까요? 전사들은 천국에 가면, 영원히 서로 싸울 수 있는 특권을 얻게 됩니다. 피 흘리는 전투와 전쟁의 참상은 노르만 인에게 우리와 다른 의미로 다가왔던 것 같습니다.


    전쟁과 함께 추위에 대한 이야기도 많이 나오는데, 대표적으로 신화에 자주 나오는 적대 세력인 서리 거인들이 있습니다. 영화에도 나오는 이 거인들의 서식지는 동쪽 바다를 건넌 거인들의 땅 요툰하임인데, 스칸디나비아 반도의 동쪽 바다를 건너면 우리가 잘 아는 시베리아가 나옵니다. 현재도 비슷하지만 실제 바이킹들이 바다를 누비기 전 스칸디나비아 반도는 매우 추운 상태였고, 추위 속에서 지낸 사람들이 만들어낸 신화답게 북유럽 신화의 세계는 얼음 위에 창조되어 있습니다. 참고로 창조된 세계의 북쪽에는 서리의 땅 니플헤임이, 남쪽에는 불꽃의 땅 무스펠헤임이 있는데 이 역시 실제 기후를 반영한 것이겠죠.

  


추위와 전쟁에 시달리는 민족이 창조한 문화


    신화의 배경을 종합하여 보면, 북유럽 신화는 추위와 전쟁에 시달리는 민족들이 만들어 낸 이야기입니다. 척박한 환경을 개척해 나가며, 다른 부족들과 전쟁을 일삼는 부족 사회의 시인이 지어낸 노래 속, 그들이 처한 환경을 신화로써 설명해 주고, 수많은 전쟁으로 인한 불안정한 일상을 발할라의 영광으로 칭송하면서, 쉽지 않은 생존 환경 속에 희망과 낭만을 불어넣어 준 것이죠. 피와 술만 넘쳐흐르는 듯한 북유럽 신화의 비극적인 세계관은 세상에 대한 부정적인 관점이 아닌, 거친 삶을 설명하고 위로해 주는 역할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더 이상 아무도 토르와 오딘을 진심으로 섬기지 않고, 바이킹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지만, 그들의 신화는 세계 곳곳의 언어와 문화에 희미한 족적을 남기며 생명줄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그들의 문화가 살아남는 이유는 먼저 그 역사가 오래되고 깊기 때문이며, 다른 한 가지 이유는 힘든 삶을 헤쳐나가며 만들어 낸 그들의 이야기, 거칠고 잔인하지만 순수하며 친숙하기도 한 이야기들이 갖는 호소력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전혀 다른 시공간, 다른 문화에서 사는 우리가 신화를 집는다 해도, 천 년을 넘게 살아남은 이야기들의 일부는 우리의 공감대에 와 닿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