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fiesta Jan 10. 2021

지도 위의 신경전

『지리의 힘』- 팀 마샬






     국제 뉴스를 보다 보면 들어보지 못한 지역에서 참 다양한 일들이 일어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아제르바이잔이란 동네에선 전쟁이 일어나고, 홍콩에선 중국에 대항하는 시위가 발발하며, 이란의 핵 과학자가 암살당하는 사건도 일어나곤 하죠. 분명 국제적인 분위기에 영향을 미칠 사건인 건 알겠는데, 과연 어떤 영향을 미칠까? 그리고 이런 일들은 왜 일어나는 걸까요? 정신없는 일상 속에서 이런 사건들은 한때의 흥미로운 뉴스거리를 제공하고 잊혀 가지만, 이런 사건들은 자기만의 스토리를 가지고 지금도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세상의 흐름을 읽기 위해서 이런 이야기들을 무시하긴 힘듭니다.


    그럼에도 이런 사건들이 머릿속에 자리잡지 않는다면, 이는 아마도 이런 사건들을 담아 둘 맥락이 잡히지 않은 것이라 생각합니다. 세상은 너무 넓고, 하루에도 너무 많은 일들이 일어나서, 사실상 이 모든 걸 맥락 없이 저장만 해 두는 것은 말이 안 되죠. 저 역시 국제 정세에 초보적인 지식밖에 없었고, 『지리의 힘』은 이런 저에게 세상의 사건들을 해석할 수 있는 하나의 틀을 제공해 주었습니다. 세계 곳곳을 훑어 가며 이름만 알던 그곳의 국가들 사이의 관계, 정세를 짚어 주었고, 더군다나 저널리스트가 쓴 글이라 전문성은 조금 떨어질지라도 정말 잘 읽히는 책입니다. 지정학에 지식이 없다면, 이 가독성 때문에라도 부담 없이 권하고 싶은 책입니다.



강대국들의 패권 다툼


    우리 대다수는 전쟁의 공포가 없는 시대와 국가에 태어나 평화를 당연시하며 살고 있습니다. 휴전 중인 분단국가의 특수성에도 불구하고, 실질적으로 우리의 재산과 생명을 잃을 가능성을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봐도 될 것 같습니다. 하지만, 국가 단위로 가면 안보의 개념은 달라집니다. 평화에 익숙한 선진국 간에도, 자국민의 재산과 안전을 위협할 아주 작은 요소라도 다른 국가가 차지하고 있다면, 이는 상대 국가에 전략적인 우위를 점하게 해 주는 일이 됩니다. 이는 안전과 관련해서는 산과 바다 등 지형적 우위, 이에 따른 군사의 배치, 혹은 고도의 기술력을 가진 무기의 보유 등이 될 수 있고, 재산과 관련해서는 원자재 및 국가가 구축해 둔 경제적 환경 등이 있을 수 있습니다.


    경제적 환경은 지정학을 다루는 책의 범위가 아닙니다. 그러나 이를 제외하고 보더라도 국가 간의 협상력 우위를 점하기 위한 전략에서, 지리가 관련된 요소가 많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각 국가는 자국이 갖는 지리적 요소를 최대한 활용하여 국익을 확보하려 노력합니다. 이들의 행동 하나하나는 수많은 경제, 정치적 논리로 뒷받침되겠지만, 결국은 국가 단위로 벌어지는 눈치 싸움입니다. 그리고 이 판에서 분위기를 만드는 것은 명실상부한 강국으로 인정받는 미국, 중국, 러시아 같은 국가들이죠.


    이들은 자원, 해상 패권 등을 얻기 위해 치열한 신경전을 벌입니다. 자국의 이익을 수호하고, 상대를 견제하기 위해 천문학적인 돈을 쏟아붓고, 전략적으로 군사를 배치하며, 다양한 국가 사이에 걸린 이해관계에서 자신에게 유리한 편을 지원합니다. 대표적으로 중국과 미국이 이런 신경전을 많이 벌이고 이는 무역분쟁 뉴스만 봐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죠. 이들의 행동은 마치 지구 전체를 판으로 삼아 체스 게임을 벌이는 것 같습니다. 넓고도 날카로운 시야를 가지고 논리적이며 전략적으로 행동하는데, 이들의 행동 하나하나가 게임의 판도를 바꿀 수 있기에 작은 나라들은 본인이 갖는 지정학적 특징뿐만이 아니라 이들과의 관계 역시 국가의 운명을 좌우하는 요소가 될 수 있습니다.



각자의 자리에서 벌어지는 생존 경쟁


    세계 랭킹을 다투는 강국이 아니라고 해서, 치열한 전술 게임에 참여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국제 분쟁의 대표 예시인 중동 같은 경우에도, 세계대전 이후 강대국들이 남겨 둔 제멋대로의 국경과 민족 구성 등 여러 악조건을 헤치고 국내 문제로 고통받으면서도 국제무대에서 자신의 입지를 확보하기 위해 고군분투 중입니다. 자력으로 막을 수 있는 좁은 바닷길은 무역을 쥐락펴락할 열쇠가 되고, 석유 등 원자재은 부를 끌어올 수 있는 원천이 됩니다. 대부분의 국가들은 악조건 속에서도 자신이 손에 쥔 패를 전략적으로 잘 사용합니다. 반면, 몇몇 풍부한 자원과 빈약한 정치체를 가진 국가들은 타 국가들의 먹잇감이 되기도 합니다.


    개인적으론 이런 국지적인 전략 싸움이 더 흥미롭게 읽혔습니다. 이 책에서 중국은 안정적인 무역을 위해 바다 위의 헤게모니를 차지하려고 노력한다 하는데, 벨라루스 같은 몇몇 내륙국가들은 해안선 자체가 없어 무역이 안 되기도 합니다. 이런 나라가 해안선을 차지하고자 분투하는 과정,  혹은 파키스탄 같은 국가가 지리적 요인 때문에 다양한 강국 사이에서 눈치 싸움을 하며 국익을 챙기는 과정 등은 훨씬 더 필사적이며, 더 잘 와 닿는 것 같습니다. 


또한 미중 관계 같은 거시적인 이슈는 우리가 자연스럽게 접하기 훨씬 쉽습니다. 하지만 남미나 아프리카, 북극 같은 곳은 우리의 인식에서 보통 벗어나 있어, 국제적인 관계를 따질 때 주요한 주인공들이 아닌 주변부 국가들은 배제되기 쉽습니다. 하지만 이 책은 지정학을 다루다 보니 아프리카, 인도, 남미 등 지리적인 비중이 큰 지역들은 그에 맞게 다룰 수밖에 없고, 이는 세계를 아우르는 시각을 갖는 데 큰 도움이 됩니다.



세상을 더 잘 볼 수 있도록


    『지리의 힘』을 읽으면 세계 역사를 훑었을 때 보이지 않던 주인공들이 여럿 튀어나옵니다. 그리고 현대 사회를 이해하는데 이는 훨씬 중요한 의미를 갖는데, 이미 흘러버린 역사는 현시대에 제한적인 영향만을 끼치지만 아무리 정세가 바뀌고 국가들의 흥망성쇠가 활발히 일어나도 산과 바다는 그 자리에 있을 것이기 때문이죠. 이 책은 중국과 티벳의 분쟁, 핵무기 협정, 테러리즘 등 다양한 주제에 대해 사건 이면의 이해관계를 읽는 하나의 지침을 제공합니다. 덕분에 우리는 국제 뉴스를 조금 더 날카로운 눈으로 볼 수 있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이 책의 장점인 저널리스트가 써서 읽기 쉽다는 사실은, 역으로 읽기 쉽지만 전문성이 부족할 수 있다는 단점이 될 순 있습니다. 이 책에 한국에 대한 내용이 나와 우리가 그 수준을 판단할 수 있는데, 신뢰도 면에서 저자가 읽는 국가의 분위기 등이 상당히 정확하다는 느낌은 받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넓은 범위를 논하는 책인 만큼 디테일의 희생은 감수해야겠지요. 또한 국가 간의 관계를 지리로만 모두 설명할 수 없기에, 이 책만을 읽고 좁은 시야로 정세를 논하는 것은 지양해야 할 행동이겠습니다.


    정치, 경제, 사회적 분위기와 마찬가지로 지정학 역시 국가 단위에서 일어나지만 종국에는 우리 삶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요소 중 하나입니다. 세계를 보는 자신만의 관점을 세우기 위해서 다양한 분야에 호기심을 갖고 여러 책들을 읽어 나간다면, 여러 책들 사이에서『지리의 힘』은 통찰력을 기르는 데 아주 큰 도움을 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바이킹의 상상이 빚은 판타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