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아기
아버지의 걸음이 눈에 띄게 더디고 위태로워졌다. 2층 계단을 오르내리시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언젠가는 큰일이 나겠다 싶었다. 결국 1층 서실 원장실을 치우고 그 자리에 방을 들였다. 그 일로 나는 올해 들어서만 벌써 세 번이나 마산을 다녀왔다.
그때마다 여든아홉의 치매인 아버지를 욕실로 모시고 아버지를 씻겼다. 좁은 욕실 안은 금세 김이 차올라 바깥세상과 단절된다. 물 떨어지는 소리와 아버지의 가쁜 숨소리만이 남는다. 그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옷을 벗은 아버지의 알몸을 마주하는 일은 내 안의 무언가를 무너뜨린다. 내 기억 속의 아버지는 언제나 깎아지른 절벽처럼 단단하고 거대한 산이었다. 나를 번쩍 들어 올려 세상을 구경시켜 주던 그 억척스럽던 팔뚝과, 한 집안의 생계를 짊어지고도 끄떡없던 어깨는 이제 어디로 갔을까!. 나와 함께 있는 지금의 아버지는 그저 세월이라는 모진 풍파에 깎이고 깎여 작아질 대로 작아진 한 사내였다. 배는 축 늘어졌고, 다리는 힘없이 가늘어졌다. 등은 스스로를 지탱하기에도 버거운 모양으로 휘어 있었다. 나는 아버지가 혹여 무너질까 봐 조심스레 팔을 부축해 욕조 의자에 앉혔다.
"아부지, 물 따땃하지예?"
아버지는 잠시 나를 쳐다보더니, 짧게 대답하셨다.
"따땃해!"
수식어도 군더더기도 없는, 명료하기 짝이 없는 단답형. 마치 처음으로 '온기'라는 관념을 배운 아이가 내뱉는 순수한 감탄사 같았다. 그 짧은 대답이 내 가슴팍으로 돌아와 박힐 때 나는 짐짓 아무렇지 않은 척 샤워기를 고쳐 쥐었다. 아버지는 당신이 지금 아기가 되어가고 있다는 것을, 이토록 투명한 대답으로 고백하고 계신 것일까?.
때를 밀어드리며 시원하시냐 물어도 돌아오는 건 "허!" 한 마디뿐이었다.
"아부지, 고개 좀 쑤기보이소.",
"발 좀 들어보이소."
하는 나의 채근에도 아버지는 아기처럼 순종적이셨다.
예전 같았으면 "내가 알아서 한다"며 불호령을 내리셨을 가부장의 자취는 그림자조차 찾을 길 없다. 그저 내 손길에 당신의 전 존재를 온전히 맡기고 계실 뿐이다.
그 순한 모습을 보고 있자니 가슴 한구석이 아릿해지며 기시감이 밀려왔다. 장년의 아버지가 아기였던 나를 정성스레 씻기셨을 그날의 풍경이 겹쳐 보였다. 그때의 나도 지금의 아버지처럼 아무것도 모른 채 그저 따뜻한 물길에 몸을 맡기고, 아버지의 투박하고 커다란 손길을 무조건 신뢰했을 것이다.
아버지는 나에게 세상을 가르쳐준 최초의 스승이었으나, 이제는 내가 아버지에게 물의 온도를, 비누의 미끄러움을, 수건의 포근함을 다시 일깨워주어야 하는 보호자가 되었다. 시간이 거꾸로 흘러 아버지는 아기가 되었고, 나는 그 아기를 품어야 하는 아버지의 마음이 된다.
목욕을 마치고 커다란 수건으로 아버지의 작아진 몸을 닦았다. 아기 기저귀를 채우듯, 행여나 얇아진 살갗이 쓸릴까 봐 톡톡 두드려 물기를 닦아낸다.
팔 좀 들어보이소! 다리도 벌리보고예!
내말에 고분고분한 아버지의 움직임에 안쓰러움과 슬픔이 파도처럼 밀려오지만, 형언할 수 없는 숭고함도 같이 차오른다. 아버지를 씻기는 이 행위는 단순히 육신의 오염을 닦아내는 일이 아니다. 아버지가 내게 주셨던 생명의 온기를, 이제는 내 체온을 섞어 고스란히 되돌려드리는 '사랑의 마지막 매듭'이다.
잠자는 방으로 종종걸음치며 들어가는 아버지의 뒷모습을 보니 가슴이 먹먹해졌다. 얼마 있지 않아 아버지는 주간보호센터에 가셔야 한다. 그곳을 다니시다가 더 치매가 깊어지면 그 요양원에서 마지막까지 지내셔야 한다.
오래된 아기가 된 아버지와 난 얼마나 더 목욕탕에서 함께 일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