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앗잎 향내를 좋아 하시나요?

우리 엄마식 바닷장어국

by 김명재

우리 엄마식 바닷장어국

평내에 살 때 자주 지나다니던 길에서 어느 날 방앗잎 향내를 맡고서는 나는 그만 걸음을 멈추고 말았다. 경상도 사람이라면 콧날 끝에서부터 먼저 알아차릴 그 매콤하고도 비누 냄새 같은 향기. 나는 주인의 허락도 없이 잎사귀 몇 점을 훑어 손바닥에 문질렀다. 그날 저녁, 손끝에 밴 그 향기를 나는 차마 씻어내지 못했다. 그것은 향기가 아니라, 엄마의 냄새이었기 때문이다.

엄마의 부엌은 내게 쉬이 허락되지 않았다. 독일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 대학 강사라는 허울 좋은 이름으로 보따리장수처럼 떠돌던 시절, 나는 엄마의 바닷장어국 레시피가 못내 궁금해 국 끓이는 엄마 주변을 서성였다. 하지만 엄마는 내게 부엌은 허락하지 않으셨다. 당신의 손끝에서만 우러나오던 그 오묘한 맛을 크게 자랑으로 생각하지 않은 것일까? 아니면 음악대학 교수가 되길 바라는 아들이 쓸데없는 것에 관심을 두는 것이 못내 불안하셨던 것일까?


귀국 후 대학 한 곳에서만 강사 생활을 이어 나갈 시절, 한식과 일식 요리사 자격증을 땄을 때, 엄마는 한국에 잠시 들른 아내에게 “너그 인자 밥 굶지는 않것다!” 하셨다. 옆에서 보시기에 불안한 대학 강사 생활에 그래도 뭔가 안전판이 된다고 생각하셨던 모양이다.

우리 엄마식 바닷장어국은 여느 집 국물과는 결이 달랐다. 펄떡펄떡 살아있는 바닷장어를 고아 내고 뼈와 살을 분리해서, 그 국에 물을 더 첨가하고 단배추와 숙주를 넣어 끓인 시원한 국물. 그러나 그 맛의 완성은 역시 방앗잎이었다. 알싸함이 장어의 비린내를 잠재우고, 독특한 향이 국물의 격을 올렸다.


세월이 흘러 엄마의 기억에 구멍이 숭숭 뚫리기 시작했을 때, 비로소 엄마는 부엌의 빗장을 풀었었다. 국을 끓일 때 내가 함께 있으면 언제나 "재야, 국 간 좀 봐라." 하셨다. 간 보기를 내게 부탁할 때부터 엄마의 기억을 갈아먹는 치매가 엄마에게 도착했음을 나는 미처 몰랐다. 그때부터 엄마는 김장철이면 나와 함께하려 하셨다. 힘에 부치는 김장을 혼자 감당하기 어려우셨던 탓도 있겠지만, 잃어가는 미각 때문에 한참 후에 맛이 드는 김장을 망칠 수 있다는 공포 속에서 엄마가 할 수 있는 마지막 맛에 대한 안전장치였을 것이다.

언젠가는 엄마가 끓여주시던 그 바닷장어국에 도전해 봐야 할 텐데, 여태 엄두가 나지 않는다. 아니, 사실은 엄두가 없는 게 아니라 심술이 난 것일지도 모르겠다. 돌아가신 후 야속하게도 한 번을 꿈속에 나타나지 않는 엄마가 미워, 바닷장어국을 들이키지 못해서 내 아쉬움이 커가는 만큼 천국에서 아들의 아쉬움을 보고 계신 엄마의 아쉬움도 커가라고 심술을 부리고 있다. 그 아쉬움이 부풀어 오르고 오르면 언젠가는 찾아 오시겠지!

오늘도 내 손끝에서는 그날 평내에서 묻혀온 방앗잎 냄새가 나는 듯하다. 바닷장어국 냄새 가득했던 그 부엌에서, 엄마는 어쩌면 당신의 장엇국 레시피를 궁금해하는 아들이 아니라, 독일 유학도 다녀오고 독일극장에서 직장 생활도 했던 아들이 꼭 음악대학 교수가 되어 세상에 이름 날리는 사람이 되길 빌고 계셨을 것이다.

허나 나는 여전히 그 시원하고도 알싸한 장엇국 도전하지 못하고 있고, 대학교수도 되지 못했고, 세상 사람들이 알만하게 이름을 날리지도 못했다. 그러므로 아직도 우리 엄마식 바닷장어국의 맛을 잊지 못하고 가슴속에 방앗잎 향기만 문대며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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