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청춘처럼 건강하게, 청년장수

#생명을 살리는 미래의 가능성

by 닥터파브르

나는 어릴 적부터 호기심이 많은 아이였다. 그림을 사랑했고, 스케치북과 연필만 있으면 외롭지 않았다. 울던 나를 달래는 데 말보다 효과적인 건 언제나 종이 한 장과 연필 한 자루였다. 아버지는 종종 말씀하셨다. 울음을 터뜨리던 나에게 스케치북을 쥐여주면, 거짓말처럼 금세 조용해졌다고. 처음 그렸던 그림은 외갓집 대청마루에 누워 바라보던 풍경이었다. 마당 한편, 묶인 강아지가 졸린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그 장면을 천천히, 조심스럽게 따라 그렸다. 그날 이후, 그림은 내 마음의 언어가 되었다.


언제부턴가 내 꿈은 화가였다. 그림을 그리는 삶, 그것으로 살아가는 사람. 하지만 세상은 꿈을 쉽게 허락하지 않았다. '예술가는 굶어 죽는다'는 아버지의 단호한 말 한마디와, 늘 빠듯했던 집안 형편은 내 손에서 연필을 놓게 만들었다. 화가의 꿈은 결국 마음속에만 간직한 채, 고등학교 시절 나는 조용히 미대입시를 포기했다.


하지만 진짜 꿈은 따로 있었다. 내가 진정으로 되고 싶었던 건 화가가 아닌, 영화감독이었다. 그 갈망은 중학교 시절부터 마음속에 조용히 자리 잡고 있었다. 사실 영화를 특별히 사랑했던 것은 아니었다. 다만, 내 이야기를 세상에 들려줄 수 있다는 가능성 하나만으로 영화는 내게 설렘이자 희망이 되었다. 그래서 미대에 진학하여, 언젠가는 더욱 아름답고 강렬한 미장센을 창조해 내는 감독이 되기를 꿈꿨다. 하지만 미술조차 반대하던 아버지에게 영화감독이라는 말은 입 밖에 꺼낼 수 없는 금기였다. 그렇게 나는 오래도록 입을다물었다.


나는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야 비로소, 조금은 늦은 걸음을 내디뎠다. 오래도록 망설이던 끝에 나는 결국 영화의 세계로 들어섰고, 그 현장은 내게 또 다른 길을 열어주었다. 그 길의 끝자락에서 나는 대학원에 진학했고, 그리고 그곳에서 한 사람을 만났다. 예술교육 프로젝트에서 함께했던 PD. 따뜻한 시선과 단단한 신념을 지닌 사람이었다. 그녀가 지금의 아내다.


생각해 보면 우리는 참 많은 장면을 함께했다. 소아암 환아들과 나눈 봄날의 미소, 유방암 환우들의 조용한 용기, 이주여성과 다문화가정 아이들의 작은 목소리, 노인주간보호센터에서 피어오른 기억의 그림, 시골 마을회관에서 어르신들과 함께한 건강체조의 노래까지. 우리는 예술교육이라는 이름 아래, 참으로 많은 현장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마주쳤다. 그리고 그만큼, 함께 성장해 왔다. 나는 항상 카메라를 들고 기록하는 사람이었고, 그녀는 프로젝트를 이끄는 총괄 PD였다. 언제나 카메라 너머에 그녀가 있었고, 어느 날 문득, 우리 둘은 예식장에서 같은 프레임 안에 서 있었다.


그리고 함께 전국 방방곡곡을 누비며 예술교육을 이어가던 날들 속에서, 유독 마음에 오래 남은 장면이 두 가지 있다. 하나는 소아암 아이들과 보낸 봄날의 기록. 또 하나는 노인주간보호센터에서 함께했던 ‘나의 살던 고향’이라는 예술교육 프로그램이었다.


아이들과 함께였던 그날들엔 웃음보다 침묵이 더 진하게 남아 있다. 항암치료로 머리가 빠지고, 작고 마른 어깨로 고통을 견디는 아이들. 왜, 신은 아무 죄도 없는 아이들에게 이런 고통을 허락하신 걸까. 도무지 납득할 수 없는 장면들 앞에서 나는 질문을 삼키고 기도를 올렸다. 그땐 몰랐지만, 아이를 키우는 지금에서야 비로소 안다. 그 작은 생명을 지키기 위해 부모들이 얼마나 많은 눈물을 삼켜야 했는지. 어쩌면 나보다 더 아프고 지친 건, 아이들 옆에서 밤을 지새우던 부모들이었을 것이다. 그 기억은 오래도록 마음을 놓아주지 않았다. 그리하여 오늘도 나는 기도를 한다. 누군가의 아픔이 조금은 덜해지기를, 신이 존재한다면 가장 먼저 아이들의 고통을 걷어가 주시기를.

작은 손, 떨리는 붓끝에서 아픔을 넘어 피어난 예술의 온기 – 국립암센터에서(2016)

그리고 또 하나의 기억. 노인주간보호센터에서 어르신들과 함께했던 시간. 그분들은 마치 어린아이처럼, 조심스럽게 기억을 꺼내어 고향의 풍경을 그리셨다. 어떤 분은 그림 한편에 또박또박 고향의 주소를 적어 넣으셨다. 누구는 뺨에 눈물을 흘리셨고, 누구는 멜로디를 흥얼거리기 시작했다.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진달래~, 울긋불긋 꽃 대궐 차린 동네~, 그 속에서 놀던 때가 그립습니다~"

그리움으로 그린 고향의 풍경 – 노인주간보호센터에서(2018)

그 순간, 방 안 가득 진동하던 노래와 추억. 그것은 삶이 끝나가는 곳에서 피어난 또 다른 시작 같았다. 그러고 보면 노화는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여정이다. 점점 바깥으로 휘어가는 손가락, 기억의 안갯속에 희미해져 가는 이름들. 먼저 떠난 부모, 형제들. 결국 우리는 모두 고아가 된다. 하지만 어르신들에게 '살면서 가장 잘한 일이 무엇이냐'라고 묻자 한결같이 대답하셨다.


'자식을 낳고 키운 것.'


그 말에 나는 깊이 고개를 끄덕였다. 부모가 된다는 건 단지 아이를 키우는 일이 아니라 스스로 어른이 되어가는 여정이라는 걸, 이제는 안다. 아이만 자라는 게 아니다. 부모도 함께 자란다. 그렇기에 서로 건강해야 오래도록 행복할 수 있다. 그 시간들이 삶을 살아갈 수 있는 힘이 되어주기에.

어르신들의 오감을 깨우는 섬세한 감각의 예술속으로 – 노인주간보호센터에서(2018)

그리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곤충이 아픔과 고통 그리고 어려움에 놓인 사람들에게도 도움이 될 수 있을까?"


사람들은 말한다. 곤충은 미래의 식량이라고, 환경을 살릴 대체자원이라고. 하지만 그보다 더 가능성 있는 사실이 있다. 곤충이 생명을 살릴 수도 있다는 것. 단백질이 풍부한 곤충 식품은 수술 후 회복에 도움을 준다는 연구 결과들이 있다. 밀웜으로 만든 식사를 섭취한 환자들은 기존 환자식만 먹은 그룹보다 훨씬 나은 영양 상태를 보였다. 그리고 왕지네는 관절염에 좋고, 추출 성분은 아토피 치료에도 탁월한 효과를 보였다. 또한 곤충 유래 성분은 비알코올성 지방간에도 효과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허청 자료에 따르면, 곤충을 활용한 의약품 관련 출원은 매년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그리고 곤충생리학 수업 때 황재삼 교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곤충을 소재로 한 신약 개발의 가능성은 무궁무진합니다”라고.


나 역시 꿈꾼다. 언젠가 곤충이 인류의 질병을 치료하는 실질적인 해답이 되기를. 그 작은 생명 안에 담긴 가능성이 더 큰 생명을 살리는 길이 되기를.

캡처.PNG 오늘도 청춘처럼 건강하게

닥터파브르는 지금, 새로운 이름을 준비하고 있다. 그 이름은 바로 ‘청년장수’. ‘청년’은 젊음과 건강을 뜻하는 말이다. ‘장수’는 오래도록 이어지기를 바라는 삶의 소망이다. 서로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두 단어를 우리는 하나로 엮었다. 그 안에는 누군가의 근감소를 조금이라도 늦추는 데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겨 있다. 건강이란 이름의 일상에 조용히 힘이 되어주기를 바라는 바람이다.


그리고 ‘청년장수’의 마스코트는 거북이다. 거북이는 십장생 중 하나이며, 장수와 지혜, 그리고 용기를 상징하는 존재이다. 깊은 바다에서 용왕의 건강을 기원하며 지상으로 올라온 거북이는 몸에 좋은 것을 찾아 오늘도 묵묵히 한 걸음씩 나아가는 존재이다. 그 걸음은 느리지만 단단하다. 지혜롭고도 꾸준하다. 희망과 도전, 낯선 길 앞에서도 두려워하지 않는 존재가 바로 거북이다. 우리는 그 거북이처럼 살아가고자 한다. 작지만 진실된 마음으로 나아가고자 한다. ‘청년장수’는 삶을 오래도록 건강하게 이어주는 한 모금의 용기이다. 그리고 우리의 이야기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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