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추의 약속
입추(立秋), 스물네 절기 중 가을의 첫 문이 열리는 날. 달력 위로는 가을이 시작됐다고 적혀 있지만, 햇볕은 여전히 매섭고, 공기 속에는 한여름의 열기가 가시지 않았다. 그럼에도 이 날은 오래전부터 농부들의 마음속에 풍년의 약속을 담아두는 절기였다.
옛 속담에 '입추 때 벼 자라는 소리에 개가 짖는다'는 말이 있다. 그만큼 벼가 하루가 다르게 여물고, 들판이 숨을 쉬듯 살아난다는 뜻이다. 바람이 이삭을 스칠 때 들리는 가느다란 속삭임이, 개를 놀라게 할 만큼 크고 선명하다는 상상. 그 속에는 농경사회 사람들의 마음과 희망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2025년 8월 7일 입추(立秋), 나는 이 절기에 맞춰 닥터파브르를 세웠다. 스물네 절기 중 가을의 첫 문을 여는 날, 긴 여름 끝의 숨결 위에 단단한 뿌리를 내리듯이. 마치 하늘을 향해 기청제를 올리던 옛사람들처럼, 나 역시 속으로 조용히 빌었다. 부디 이 뿌리가 튼튼히 자라, 메마른 땅 위에 그늘을 드리우는 나무가 되기를.
며칠 전, 유치원에서 돌아오던 아이가 불쑥 물었다.
“아빠, 나 아빠 회사 가고 싶어.”
그 말이 어찌나 귀엽던지,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그래? 그럼 한 번 와볼래?”
그리고 다음 날, 아이는 엄마 손을 꼭 잡고 유치원을 땡땡이치고는 내 사무실로 찾아왔다. 낯선 공간에 들어서자마자 아이는 두리번거리며 물었다.
“여기도 유치원처럼 점심에 밥 줘?”
그 작은 질문 하나에, 사무실이 잠시 유치원으로 변한 듯 웃음이 퍼졌다. 이곳저곳을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둘러보던 아이는, 책상 위에 놓인 시제품들을 발견했다. 때마침 고소애 곡물음료 샘플 시식 테스트를 진행하던 날이었다. 나는 조심스레 작은 컵에 음료를 따라 건넸다. 아이의 손에 들린 투명한 컵 속에서 고운 빛깔이 흔들렸다. 아이는 잠시 망설이다가 한 모금 들이켰다.
“맛있다!”
단순한 한마디였지만, 그 목소리는 또렷하게 내 마음속 깊은 곳에 스며들었다. 그날 이후, 그 말은 하루 종일 내 귓가에 울려 퍼졌다. 마치 ‘아빠가 하는 일이 참 멋져’라고, 말 없는 응원을 보내준 것 같았다.
아이를 집에 보내고 책상 앞에 앉아 밀린 일을 정리하다가, 문득 생각이 스쳤다.
‘닥터파브르는 사람들에게 어떤 기업으로 기억될까?’
바람이 들판을 스친다. 한 줄 한 줄 정성스레 가꾼 곡식들이 고개를 숙이며 햇살을 안는다. 그 속에는 한 해의 기다림, 비와 바람을 견딘 끈기, 그리고 보이지 않는 수많은 손길의 온기가 깃들어 있다.
닥터파브르가 바라는 것도 이와 같다. 곤충에서 얻은 지속가능한 단백질로 만든 청년장수처럼, 누군가의 식탁 위에 한 그릇의 밥처럼 건강하고 든든한 먹거리를 올려놓는 일. 그 안에는 단순한 식재료가 아니라, 사람과 땅, 그리고 생명을 잇는 약속이 담겨 있다.
아이들이 오래 기다린 과일을 한입 베어 물며 눈을 반짝이는 순간처럼, 우리는 세상이 이 맛을 느끼기를 꿈꾼다. 그리고 입추의 들판이 어느 날 초록에서 황금빛으로 물들듯, 우리의 마음속에도 이 이야기가 기억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