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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woo Jun 11. 2024

ADHD인의 낮은 정신 연령과 30%의 노력

아이와 함께 키즈 카페에 갔던 날, 예상치 못했던 뜻밖의 만남이 있었습니다. 기억 저편에 희미하게 기억되는 얼굴의 남성이 다가와 저에게 아는 척을 했습니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초등학교 시절 같은 동네에 살던 한 살 어린 친구였습니다. 지백이 1권에서도 말했던 것처럼, 저는 어린 시절 작은 시골 마을에서 자랐습니다. 마을에 있는 전체 초등학생이라고 해봐야 10명 남짓이었다 보니, 시간만 생기면 동네 놀이터로 모여서 함께 뛰어 놀았습니다. 그 친구도 그 중 한 명이었습니다. 세월이 흘러 각자의 아이를 데리고 키즈 카페에서 만나게 된 것이었습니다. 서로 연락처를 교환하고 지금까지도 한 달에 한번씩은 아이들과 함께 만나 시간을 보내곤 합니다. 

ADHD에 대한 책을 쓰다 보니, 저는 어린 시절, 또래 친구들에게 제가 어떤 아이로 기억되고 있는지 궁금해졌습니다. 그래서 어느 날 그에게 이에 대해 물어봤습니다. “내가 좀 독특 했었나? 만약 그랬다면 어떤 점이 그렇게 느껴졌어?” 친구는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이렇게 말했습니다. 


“25년 전이라 그렇게 자세하게 기억은 나지 않아. 근데 형은 확실히 독특했어. 다른 형들과는 달랐지, 다른 형들 같지 않게 웃기고 재밌었던 모습이 기억나. 좀 허술하긴 했지만, 착하고 말투도 재밌었어. 다들 아는 얘기를 굳이 알려준다며 말하고 있을 때도, 다들 그냥 듣고 있었지. 근데 스스로 독특하다고 생각했었다니, 그런 생각을 하는 게 쉽지 않은데 말이야. 어른이 되더니 뭔가 달라졌네? 하하.”


친구의 말을 듣고 곰곰이 생각해보니, 어린 시절 저는 또래보다 어린 친구들과 어울릴 때도 늘 격의 없이 지냈습니다. 어른스러운 척 훈계하거나 가르치려 들기보다는, 그저 또래 친구처럼 함께 뛰어 놀았습니다. 동네 어른들은 그런 저에게, “어린 동생들과 잘 어울려주는 착한 아이”라고 칭찬했지요.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그저 제가 어린 동생들과 노는 게 더 재미있었을 뿐이었던 것 같습니다.


“너는 왜 이렇게 철이 없니?”

“나잇값 좀 해.”

“네 또래는 안 그러는데 왜 너만 그러니?”

제가 기억할 수 있는 가장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끊임없이 부모님께 들어왔던 말입니다. 부모님 속을 썩이는 게 일상이었던 저는, 이런 잔소리가 너무 익숙한 말이라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버리곤 했습니다. 대한민국 사회에서 위와 같은 말들은 상대방의 언행과 사고과정이 나이에 맞지 않고 미숙하거나 또는 책임감이 부족할 때 사용합니다. 보통 위와 같은 표현은 다음과 같은 상황에서 사용합니다.

1. 사회적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행동을 할 때: 실제 나이에 비해 유치하거나 충동적일 때 또는 자신의 행동에 변명과 핑계를 일삼을 때.

2. 나이에 비해 미숙한 모습: 또래 나이대까지 보통의 경우라면, 누구나 마땅히 경험했을 일을 회피하는 등 특정 상황에 대한 경험이 또래에 비해 부족해서 적절하게 행동하지 못할 때.

3. 타인을 배려하지 못하는 모습: 자신의 언행이 상대방에게 어떤 영향을 줄지 생각하지 않고 자신의 감정대로 행동할 때 또는 자신의 입장만 생각할 때.


저는 위 표현들 외에도 ‘정신연령이 낮다’, ‘순수하다’, ‘아이 같다’는 말도 자주 들었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철이 없다’, ‘나잇값을 못한다’를 ‘정신연령이 낮다’는 말과 비슷한 맥락에서 사용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표현들은 심리학적 용어인 ‘정신 연령(mental age)’과 차이가 있습니다.



1. 정신 연령(mental age): 지능 검사에서 측정되는 지적 능력 수준입니다. 특정 연령대의 평균적인 지적 능력과 비교해서 어느 정도 수준인지 알 수 있습니다. 

2. 수행 연령(Executive age): 특정 연령대가 평균적으로 특정한 과제를 수행하는 수준을 고려해서, 그 과제를 수행하는 능력을 나타냅니다. 여기 과제에서는 의사 결정 능력, 문제 해결 능력, 감정 조절 능력, 계획 능력 등이 포함됩니다. 

☞ 수행 연령은 ‘ADHD 기본서들(지백/초록/하양)’에서 말하는 ‘실행 기능(Executive functions)’과 관련됩니다. 즉, Executive (function) age입니다.



‘철이 없다’ 또는 ‘나잇값을 못한다’는 표현은 ‘전반적인 성숙도’를 지적하는 표현인데, ‘전반적인 성숙도’는 정신 연령(mental age)와 수행 연령(executive age)를 모두 포함합니다. 하지만 엄밀히 말해서, 수행 연령(executive age)에 더 가깝습니다. ‘철이 없다’, ‘나잇값을 못한다’는 표현들은 단순히 지적 능력이 부족하다는 의미보다는, 사회적으로 기대되는 수준의 생각과 행동을 보여주지 못하는 등 사회생활을 하면서 필요한 여러 능력이 부족하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흔히 일상에서 말하는 정신연령은 실제 정신 연령(Mental age)보다는 수행 연령(Executive age)을 의미합니다. (이 글에서 앞으로 언급되는 ‘정신 연령’은 ‘수행 연령’의 의미로 사용됩니다.)



“또래보다 정신연령이 낮은 것도 ADHD인의 특징인가요?”

지백이 대화방 뿐만 아니라 여러 ADHD커뮤니티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질문입니다. 이를 보면, 많은 ADHD인들이 저와 비슷한 경험을 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낮은 정신 연령은 ADHD와 관련이 있을까요? ADHD분야에서 저명한 연구원인 러셀 바클리 박사는 그렇다고 합니다. 

자료에 의하면, ADHD인의 전두엽은 또래보다 약 30%정도 늦게 발달합니다. 지백이 1권에서 전두엽의 기능을 다루며, 특히 강조했던 기능이 ‘실행 기능(Executive functions)’을 기억하시나요? 추상적인 목표를 설정하고, 계획 수립, 유연한 대처, 자기관리 기능 등 인간을 인간 답게 만들어주는 핵심 기능입니다. 그런데 ADHD인의 경우, 이 기능을 담당하는 전두엽의 발달이 또래보다 30% 지연되면서, 실제 연령에 비해 정신 연령이 낮게 나타나는 경향이 있습니다. 아래 표는 ADHD인의 실제 연령과 정신 연령(수행 연령)을 비교한 자료입니다. 



여기서 30%는 실행 기능을 구성하는 각 항목들의 평균값입니다. 따라서 ADHD인이라고 해서 모두 같은 정도로 실행 기능이 부족한 건 아닙니다. 각 항목에 따라 30%보다 더 나을 수도, 더 부족할 수도 있습니다. 지백이 1권의 주제처럼, ADHD인이라고 해서 다 같지 않다는 점을 기억해야 합니다.

표에서 볼 수 있듯이, 실행 기능의 발달은 30대 초반에 멈춥니다. 이는 우리 뇌가 30대 초반 이후에는 더 성장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즉, 30대 초반까지 발달한 수행 연령은 그 이후에도 그대로 유지되기 마련입니다. ADHD를 진단받았다면, 평균적으로 32세에 21.33세 수준의 수행 능력을 갖게 되는 것이며, 나이가 들어도 더 상승되지 않지요.

하지만 러셀 바클리 박사는 ADHD인이 ADHD대처하는 새로운 기술과 전략을 배우는 데 불가능한 건 아니라고 강조합니다. 단지 실행 기능과 관련된 부분에서 또래보다 30% 정도 부족한 것이며, 이는 약물 치료를 통해서 충분히 메꿀 수 있다고 말합니다. 나이와 상관 없이 말이죠. 


그렇다면, 지금 이 순간 우리는 어떤 마음가짐으로 살아야 할까요?

낙관이:

 “에이, ADHD랑 정신연령이 무슨 상관이람? 그럴 리 없어. 나는 나 자신을 믿어.” (부정)

긍정이:

 “ADHD인은 실행기능이 또래보다 30%정도 부족하다는 전문가의 의견이 있구나. 그렇다면 약물 치료를 꾸준히 하고, 지백/초록/하양 같은  ADHD기본서를 통해 대응 전략을 익히고 실천하는데 힘써야겠어. 자만하지 말고 꾸준히 노력해야지.” (수용과 대책)


ADHD를 진단받은 많은 사람들은 과거를 후회하고 아쉬워합니다. 억울한 마음도 들지요. 시간이 흘러도, 이 감정은 사라지지 않고, 내 안에 머물곤 합니다. 그러다 이런 글을 읽으면, ‘아, 그래서 내가 그때 그랬구나. 진작에 내가 이런 사실을 알았더라면...’하는 생각에 아쉬운 감정이 다시 떠오르며 씁쓸해지기도 합니다. 저는 그 마음이 어떤 지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지나온 길을 너무 아쉽게만 바라보지 마세요. 후회에 빠져서 과거에 매몰되기에는 지금 이 순간은 너무 소중합니다. 우리 ADHD인은 다른 사람들에 비해서 30% 더 노력하면서 살아왔습니다. 이 사실을 늘 기억하며, 언제나 ‘긍정적으로’ 자신과 세상을 바라보며, 앞을 향해 나아갑시다.



참고 자료.

https://ceril.net/index.php/articulos?id=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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