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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바롬 Oct 14. 2023

매우 성공적인 브랜딩의 그림자에 대해

친환경 이전에 윤리 경영이나 하세요

 딱히 필요하지 않아 평생 맥을 비롯한 애플 제품을 써본 적이 없건만, 한때는 어지간한 개발자보다 애플 가로수길을 자주 오갔다. 나는 총무였고, 맥북엔 늘 이슈가 있었다.


 회사 동료들을 안심시키기 위해 입으로야 쉬지않고 투덜거렸지만, 실은 그다지 나쁘지 않았다. 스토어의 오픈은 오전 열시였고 덕분에 나는 평소보다 훨씬 느즈막히 출근할 수 있었다. 사무실로 복귀하면 곧 점심시간이었으니 사실상 오전을 날로 먹는 셈이었다.


 처음 그곳을 방문했을 때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오픈 몇 분 전부터 직원들이 입구쪽에 몰려들더니 곧 로켓 발사나 새해 첫 날을 앞둔 것처럼 카운트다운을 시작했다. 오, 사, 삼, 이, 일! 그리고 매장에 들어온 나를 비롯한 사람들을 둘러싸고 마치 아이돌이나 스포츠스타에게 그러하듯 환호성을 보내는 것이다.


 어떤 악의가 있을리 만무하고, 실은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일이었겠지만 나는 그것이 못내 불쾌했다. 당시엔 불쾌함의 근거를 제대로 설명할 수는 없었다. 짐작이나마 하게 된 건 조금 시간이 흐른 뒤였다. 위대한 작가이면서도 드물게도 살아있는 애런 소킨이 쓴 영화 <잡스>를 보고 나서였다. 영화의 훌륭함과 별개로 주인공은 정말이지 가까이 두기 싫은 인간이었는데, 그가 '클로즈 투 클로즈'라고 선언했을 때, 그러니까 호환성이나 유연함이 아닌 제품의 완결성을 추구한다고 했을 때 내가 고생하는 이유를, 유독 애플 제품이 가지고 있는 폐쇄성과 경직성의 근원을 짐작할 수 있었다. 세상에. 천재라더니, 죽은 뒤 한참 뒤 지구 반대편의 어느 스타트업 일개 총무에게도 그는 영향력을 투사할 수 있었던 것이다. 뭐 그가 워즈니악의 말을 따라 호환성과 유연함을 추구했다면 나야 편했겠지만, 애플은 지금의 위치가 아닌 마이크로소프트의 뒤를 잇는 콩라인으로 빌빌거리다 진작에 사라졌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내가 싫은 건 바로 그 클로즈 투 클로즈가 비단 제품 개발 철학에서 그치지 않고 브랜딩에서도 사용되고 있다는 의심 때문이다. 그들은 어디까지나 그저 돈주고 사서 사용하다 낡으면 버리는 '제품'에 대해 특수한 아우라를 뒤집어 씌우는데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애플 애호가들이 어지간한 정치인 지지자나 아이돌 팬보다 맹목적이고 또 폐쇄적인 것이야 주지의 사실이다. 제품에 대한 비판을 자기 자신에 대한 것으로 받아들여(그 중에는 오히려 자기를 욕하는 것쯤은 너그럽게 넘어가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결코 용납치 않으며, 더 많이, 더 비싸게 팔아먹겠다는 속내를 어설프게 가린 약한 명분과 거짓말에도 기꺼이 속아준다. 그 대가로 단순한 제품 사용자가 아니라 뛰어난 아이티 지식과 훌륭한 감식안, 트랜드에 민감하고 또 주도하는 사람, 이른바 애플 오우-너의 대접을 받는 것이다.


 예의 스토어 오픈과 함께 보내는 환호의 정체는 바로 그 착각을 유지하기 위한 또 하나의 개수작인 것이다. 자존감, 자존감, 씨발거 자존감 중요한 건 아는데, 그깟 싸구려 환호에 충족되는 건 실은 자존감이 아니다. 마치 학교 앞 문방구 불량식품으로 허기를 채우려는 소치와 같다. 애플이 창조한 혁신과 새로운 패러다임, 그들이 누릴 자격있는 성공을 존중하는 것과 별개로, 그들이 조장한 일부 애플 애호가의 행태가 못내 못마땅한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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