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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바롬 Oct 07. 2023

엠비티아이를 위한 변명록

내 안의 계몽주의는 갈대와 같아서

 어릴 때 기억으로는 별자리가 유행했다. 세기가 바뀌니 혈액형이 붐이었다. 요샌 그 자리를 엠비티아이가 차지한 모양이다. 그 교조화는 이제 웃어넘길 수준이 아니게 되어 가히 우리 시대의 꾸란이라고 할만하다. 처음만난 사람에 대한 아이스 브레이킹으로 엠비티아이를 묻는 건 더이상 이상하지 않다. 난 기억력이 준수한 편이라 자부하는데도 도무지 내 엠비티아이를 외울수가 없어 그냥 플래너 한구석에 적어뒀다. 제 엠비탸이요? 잠깐만요...


 내후년 쯤엔 뭐가 또 유행할까. 사주? 관상? 풍수? 그러고보니 그만둔 직장에선 그만두겠다는 선언을 네댓번 하고 나서야 진짜로 그만둘 수 있었는데, 그 첫번째 선언은 대표가 새 사무실 위치를 풍수를 고려해 정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서였다. 팀장은 자기도 못마땅하면서 참으로 에이치-아르 팀장답게 내색하지 않(으려 애쓰)고 수능날 자녀에게 굳이 미역국을 끓여주지 않는 엄마의 마음으로 생각해달라 주문했지만(후에 들었는데 끝내 내게 얘기해준 직원을 찾아내서 심하게 갈궜다고 한다. 참으로 학군단에 대기업 출신 휴먼-리쏘쓰 팀장다웠다), 난 비로소 합리성도 일관성도 없는 대표의 행보에 숨겨진 비밀을 포착한 느낌이었다. 나는 월급만 꼬박꼬박 나오면 하루 세 번 조화에 물주는 일도 콧노래 부르면서 할 수 있는 사람인 줄 알았는데, 전혀 그렇지 않다는게 직장생활을 하면서 얻은 뜻밖에 깨달음 중 하나였다. 굳이 안해도 될 얘길 하자면, 팀장님은 참 좋은 분이었다. 지난 추석에도 안부 여쭸다.


 하여간에, 알쏭달쏭 도무지 알 수 없는 세상사의 숙명적 불가지성에 맞서 어떻게든 해답을 찾아보려 하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그러나 그 해답이 결코 풍수나 사주, 관상이나 손금, 혈액형이나 엠비티아이는 아닐 것이다. 그것은 사실 불가지성에 대한 저항이 아니라, 가장 비겁한 유형의 포기에 지나지 않는다.


 물론 해몽 또한 의미 없는 짓거리임은 당연하다. 얼마 전엔 꿈을 꿨다. 어느 방 안을 가득채운 배설물 위에서 뒹굴거리는 불쾌한 꿈이었다. 한낮이 다 되도록 그 여운이 남을만큼 생생했다. 그러나 나는 생애 대충 계산해도 만 번은 넘어갈 꿈을 꾸며 단 한 번도 시간 혹은 공간을 뛰어넘는 초자연적 예지를 경험해본 적이 없다. 결국은 역전앞 같은 동어 반복이기 때문에 굳이 꿈을 개꿈이라 칭할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다. 유달리 생생한 것은 그것이 어떤 의미가 있어서가 아니라 자는 동안 전두엽이 제대로 기능하지 않아 비합리적인 상황을 비합리적이라 인지하지 못한 것에 불과할 것이다.


 또한 보통 불쾌한 꿈이 좋은 징조로 해석되는 것은 실은 감정으로 살아가는 인간에게 불쾌한 꿈이 준 부정적 영향력을 최소화 하려는 것일 확률이 높다. 흔히 이삿날 비가 오면 잘 살게 된다는 것, 개똥을 밟으면 운수가 좋다는 것, 그 외 기타등등의 나쁜일을 겪으면 굳이 액땜이라 칭하는 것도 비슷한 이유겠지.


 하여간 그렇게 얻어낸 좋은 징조로 결국 한다는게 맨 복권 구매인 것도 어리석긴 마찬가지다. 인생의 모든 문제를 단번에 해결, 혹은 해소해주는 마스터 키가 있을 리 없다. 설령 있다고 해도 그것이 로또라면, 로또만 된다면 모든게 해결되는 삶이라는건 얼마나 비루한 것인가. 게다가 복권은 수학을 모르는 사람의 세금이라는 말처럼, 기대값을 생각하면 차라리 요새 유행한다는 탕후루라도 사다 먹는게 이득이다. 누군가 좋은 꿈을 꾸고 복권에 당첨된 사람의 예시를 말한다면, 나는 좋은 꿈을 꾸고도 안내도 될 세금만 내버린 사람이 수십만배는 더 많을 거라 답하겠다. 그것도 일종의 생존자 편향의 오류인 것이다. 같은 이유로 난 남의 성공담 같은 것도 믿지 않는다.




 ...여기까지 생각하고, 나는 숫자하나 맞지 않은 로또 용지를 구겨버렸다. 세상에, 아예 하나도 안맞는 것도 확률상 1프로는 될텐데 뭐 아차상 같은 거 없나.


 거참. 모든 꿈은 개꿈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알게 되었지만, 생각해보면 완전히 헛짓은 아니었다. 덕분에 한 일주일 때때로 즐거운 상상을 했다. 그러고보면 별자리나 혈액형, 엠비티아이도 마냥 헛짓만은 아니다. 적어도 생일이라도 짐작할 수 있고, 위급상황 때 도움을 줄지도 모를 뿐더러, 외향적인 성향을 정상으로 내향적 성향을 비정상으로 보는 야만적 이분법은 사라지지 않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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