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기적이고 비인습적인 영화 소개
진실한 이야기는 하나의 배경만을 가진다. 어디든 적용되는 것은 이야기가 품고 있는 삶에 대한 관점, 흔히 주제의식이라 불리는 것이지 이야기 자체가 아니다. 어느 배경이든 적용할 수 있다면 좋은 이야기가 맞는지 의심해볼만 하다.
범작이나 그 이하도 많지만 걸작도 심심찮게 있는 넷플릭스 오리지널 중 <결혼이야기>라고 있다. 역설적이게도 부부였던 두 주인공은 영화가 시작하자마자 이혼 절차를 밟는다. 그들은 육체적인 것부터 정신적 것에 이르기까지 사람을 이루는 모든 층위에서 갈등을 일으키는데, 그 중 하나가 그들의 사회적 지위, 즉 직업과 거처에 관한 것이다. 남자는 다소 실험적이나마 젊고 잘 나가는 연극 연출가다. 여자는 주목받는 신인배우였으나 남자와 결혼한 후 영화계를 떠나 연극 배우를 하고 있다.
남자는 자신이 가장 가치 있을 수 있는 연극계, 즉 브로드웨이가 있는 뉴욕에 계속 머물고 싶다. 여자는 그저그런 배우로 대접받는 연극계를 떠나 훨씬 인정받을 수 있는 영화계, 즉 헐리웃이 있는 엘에이로 돌아가고 싶다. 이혼 소송에 들어간 여자는 아이를 데리고 엘에이로 간다.
미국의 양끝단, 모르긴 몰라도 비행기를 타도 어지간한 국외선 만큼이나 오래걸릴테고 꼴랑 일본이나 제주도 가는 비행기도 못 견디는 나에겐 더더욱 까마득한 거리다. 그 까마득한 거리는 두 주인공의 타협 불가능한 갈등의 심각함을, 또한 그 거리를 극복했을 만큼 한 때는 깊이 사랑했다는 것을, 더불어 두 사람의 결합은 한쪽의, 적어도 한가지는 일방적인 희생으로 유지될 수 있었다는 것을, 내심 짐작하면서도 일언반구도 하지 않은 남자를 기다리다 견디지 못한 여자가 이혼을 결심했다는 것을, 그 외의 많은 세부 사항을 말하지 않고도 보여준다.
배경이 한국이라고 해보자. 남자는 대학로에 있고 싶고 여자는 충무로에 있고 싶어 이혼 소송을 하면 신구 아저씨가 아니 시발, 그럼 동대문에 살면 되잖아? 하고 4주 후에도 보지 말자 그러면서 쫓아내 버릴 것이다.
진실한 이야기는 단 하나의 배경만을 가진다. 어디든 적용되는 것은 이야기가 품고 있는 삶에 대한 통찰이다. 사랑을 가장한 이별이야기지만, 또한 이별을 가장한 사랑이야기다. 부부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지만 모든 연인과 가족과 친구와 소중한 사람들 간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이다. 미국에 사는 부부의 이야기지만 지구 반대편에 사는 독신남조차 이것은 나의 이야기라고 느낄 수 있는 이야기, <결혼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