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들 나이들어서 나 또한 나이들었음을 안다. 몇 달 전 아버지의 장례식 때 아버지의 친구분이 오셨다. 아이고 어떻게 알고 오셨을까 하며 맞절하려고 봤더니, 어? 내 친구였다.
죄다 전국팔도에 뿔뿔이 흩어져 일하고 있기에 모두가 서울 본가에 올라오는 구정에 겨우 답례인사를 했다. 평생 먹을 수 있는 고기와 술을 이십대에 다 먹어서 그런지 별달리 가난한 내 지갑에 타격을 주지 못했다. 파인다이닝이라도 온 양 우아하게 젓가락 끝으로 소금구이를 집어먹고 와인처럼 품위있게 맥주로 입술만 적시는데 십 년 전의 내게 말해준들 믿지도 못할 절경이었다.
특히나 가장 극적인 변화를 보인 친구는, 물어보니 수술로 쓸개를 뗐다고 했다. 왜? 튀어나오려는 말을 겨우 억눌렀다. 뭐, 쌩쓸개를 떼지야 않았겠지. 덕분에 역시나 십 년 전이라면 상상도 못했을 화제인 건강검진 받는 이야기로 꽃을 피웠다.
창작물과 정치와 스포츠를 넘나드는 형안과 독설의 비평가이자 현상의 이면을 들여다보는 통찰이 있었고 현실 세계의 각종 문제의 근원과 해결책을 모색하고자하는 열정이 있었으며 그러면서도 만취하지 않으면 입밖에 잘 내지 않는 꿈을 간직하고 있었고 더불어 말술에 고기도 잘 먹었던 나의 친우들을 보며, 이제는 완전히 길이 갈렸구나 싶었다.
얼마 안 있어 대장내시경 받을 나이가 되는 친구들이 공포에 떨었다. 가족력이 있어 몇 년 이르게 첫 경험을 한 내가 수면이 되질 않아 맨정신으로 검사받은 얘기를 해줬더니 다들 뒤집어졌다. 나도 덩달아 웃으며, 길이 갈리면 그게 또 어떠랴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