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소 30년은 써야 할
어머니의 임플란트 시술이 끝났다. 비가시적인 성과 중 가장 큰 것은 어머니의 치아가 부실했던 이유를 확실히 알게 된 것이다. 나는 올 연초만 해도 스케일링 하러 치과에가서 의사가 감탄할만큼 치아의 뿌리가 깊고 단단해서 오히려 치아에 대한 지나친 과신으로 육포나 마른 오징어를 무리하게 씹다가 금이 가는 상황을 걱정해야 한다고 당부 받을 정도였는데, 정작 어머니는 그렇지 않다는게 의문이었다. 내심 오래전 아비가 쥐어패서 그렇게 된 것 아닌가 싶었다.
열두번 정도 대답을 회피하던 어머니는 정답을 말해주기 전에는 질문 지옥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뒤늦게 깨닫고 나서야 고백했다. 젊은 시절, 술 마시고 자빠져서 앞니가 왕창 나갔단다. 스무살 때 큰언니가 야매의사를 통해 해준 치아를 이십년이 지나 남편이 야매의사를 통해 다시 해줬고 또다시 이십년이 지나 아들이 임플란트를 해주니 어머니의 인생도 생각보다 서사가 있는 편이었다.
비록 어머니가 괜히 말해줬다 후회로 몸부림을 칠만큼 놀렸지만, 실은 난 기분이 좋았다. 어머니가 아비에게 폭행을 당해서, 혹은 유전적 형질 때문이 아니라, 젊어서 술마시고 신나게 놀다가 치아가 그 모양이 됐다는 것이 어쩐지 나에겐 감옥벽 틈새에 핀 꽃처럼 위안이었다.
지난 몇 달간 빈 잇몸덕에 입술이 옴폭 들어가 함죽 할머니가 되었던 어머니는 치아가 다시 제자리를 잡으니 그제야 제 나이로 보였다. 오히려 전보다 나아보였다. 어머니는 여기에 중고차 한 대 값을 박았는데 당연히 전보다 나아야지, 했다. 실전 성능 점검을 위해 고깃집에 갔다. 어머니는 수 년 만에 비로소 제대로 고기를 먹는다고 했다. 민망한지 괜시리 내게 왜 그리 실실 쪼게냐고 퉁을 줬다.
치아도 해결됐으니, 이제 같이 올리브영이라도 가서 화장도 하고 예쁘게 꾸미고 살라고 했다. 몇 년 뒤면 양로원에 출입 가능한 나이가 될 텐데, 화려하게 데뷔해서 이 영감 저 영감 양다리 삼다리도 걸쳐보면서 살라고 했다. 게 중 외롭고 점잖고 특히나 돈 많은 영감이 있다면 신속하게 낚아채라고도 했다. 나는 걱정말라고 했다. 정중하게 친아버지처럼 모심은 물론 필요하다면 성씨도 영감의 것으로 바꿀 의사가 있다. 늙으막에 다소 매니악하나마 뛰어난 매력과 고도의 지성을 가진 장성한 아들이 생겨 젖어든 행복의 물이 빠지기 전에, 어머니가 베갯맡에서 은근슬쩍 운을 띄우는 것이다. 영감, 우리 아들 가게 하나 차려줍시다.
엄마와 나는 이야기 속 악당 모자처럼 뒤집어지게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