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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바롬 Aug 09. 2024

검은물잠자리 날아가는 동안 - 외전2

소년기

 초저녁 도시 외곽의 베드타운 냄새, 점점이 불빛이 박힌 야경, 주홍색 가로등불이 구석구석 스민 골목길. 아비를 피해 집밖을 떠돌던 어린 아이는 그런 것들을 보면 가슴 구석구석이 미어져서 가로등 아래 홀로 서서 쿨쩍쿨쩍 울었다. 아이가 뛰어난 감수성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일까 싶었지만, 보다 냉정하게 따져보면 그 때부터 이미 소아우울증이었다.


 학교든 학원이든 또래 집단이든 아이는 어딜가나 좀 이상한 놈이었다. 그저 외로웠을 뿐이지만 배고픈 갓난아기가 자신이 왜 괴로운줄 모르고 그저 울기만 하는 것처럼 아이도 그랬다. 몇 안 되는 친구들이 참새를 잡았다. 아이가 자신도 보여달라 하고 실수인 척 날려보냈다. 연기력이 부족해서 친구들은 일부러라는 것을 알았다. 감당하기 힘든 수준의 비난에 맞서 아이는 참새를 불쌍히 여긴 나약한 아이가 되느니 차라리 심술궂고 괴팍한 아이가 되길 선택했다. 이후로는 친구없이 지냈다.


 아이는 소년이 되었다. 그 시기 소년들이 으레 그랬듯 손에는 하루끼의 노르웨이숲을, 귀에는 라디오헤드의 크립을 꽂고 다녔다. 용돈이 없었던 소년은 일찍부터 아르바이트를 전전했다. 편의점에서 일할 때는 새벽마다 근처에서 장사하는 노부부가 왔다. 늘 인스턴트 떡볶이를 하나 사다가 나눠먹었다. 아 맵다 아 맵다 하면서. 으레 남편은 떡볶이를 하나 더 계산하며 쑥스러운듯 덧붙였다. 안해가 워낙 좋아해서... 두 사람은 고등학생 커플처럼 나란히 앉아 떡볶이 하나를 나눠먹었다. 아 맵다 아 맵다 하면서. 편의점에서도 이상해서 곧 잘릴 운명이었던 소년은 그러나 노부부에게만은 친절했다. 감사합니다. 또 오세요.


 공익으로 대체 복무를 하는 중에도 여전히 소년은 좀 이상한 놈이었다. 근무처인 복지관 앞에서 잡초를 뽑다가 왜 이건 뽑지 않느냐고 묻는 관장에게 답했다. 개망초는 잡초 아닌데요? 심하게 꾸짖는 관장에게 끝까지 바락바락 덤볐다. 꽃말은 화해인데요?


 한 번은 복지관의 미취학 아동과 싸웠다. 자기에게 욕을 했다는 이유였다. 차마 물리력을 쓸 수 없어 말로만 싸우는 와중, 열이 오르는 이마를 식히려 손을 들어올렸다. 욕을 퍼붓던 아이가 깜짝 놀라 엎드려 벌벌 떨었다. 자기를 때리려는 줄 안 모양이었다. 소년은 어린 나이답지 않은 걸진 욕설이 아이 나름의 가로등불 아래 눈물이었다는 것을 알고 머쓱했다.


 소집해제 후에도 여전히 단기직과 계약직을 전전했다. 딱히 하고 싶은 것이 없었다. 글을 써보고 싶었지만 그만한 재능이 있는지 확신할 수 없었다. 끈 떨어진 연처럼 둥싯둥신 세상을 전전하는 동안 더 중요한 건 삶의 재능이라는 것을 어렴풋이 알았다. 어떤 삶을 살든 삶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공통의 재능이 있었다. 소년은 잘 해봐야 범재에 가까웠고 소년의 아비는 여지가 없는 둔재였다. 삶은 재능마저 불공평했지만 그래도 외로움만은 평등했다. 문득 깨닫고 보니 스스로를 불쌍히 여기는 노래나 글은 굳이 찾지 않게 되었다.


 아비는 사우디에 갔고 쇼팽은 파리에 갔고 윤동주는 이미 죽었던 나이에 소년은 훌쩍 호주로 떠났다. 남북으로 1만리 동서로 2만 5천리는 될 드넓은 나라에서 남북으로 5미터 동서로 3미터 남짓한 주방에 갇혀 죽도록 설거지를 했다. 흠집있는 접시에 이름을 붙여 노동량을 가늠했다. 예의 접시를 대여섯번 닦으면 하루가 끝났다. 주말이라면 열두번도 더 닦아야 했다.


 떠나오며 내심 기대했지만 특별한 건 아무것도 없었다. 몇몇 새로생긴 인연이 있었지만 소년은 여전히 워낙 가난해서 누군가를 사랑할라치면 백석의 시마냥 호주에도 눈이 올 지경이었다. 적도 아래에서는 욕조물이 반대로 빠진다고 들었지만 가난한 외노자 숙소에는 욕조가 없었다. 청소일을 하며 마대자루를 빨 때 물이 빠지는 방향을 유심히 확인했다. 그제야 소년은 한국에서도 욕조 있는 집에 살아본 적이 없다는 것을, 원래 물이 어느 방향으로 빠지는지 모른다는 것을 깨달았다.


 지내는 거처의 한인 외노자들 사이에서 소년은 처음으로 덜 이상했다. 이상한 사람들은 다 그곳에 모이는 듯 했다. 다섯개의 방에 다섯 명이 살았다. 소년은 이웃들을 그들이 지내는 방으로 구분했다. 소년은 5호실에 살았다. 종종 한인마트에서 사온 13불짜리 밀수 쏘주를 두고 이웃과 대작했다.


 1호실은 자신이 얼마나 많은 불행과 고난을 겪어왔고 겪고있는지 강조했다. 늘 소년과 겨뤄 자신이 더 불행한 사람임을 증명하고 싶어했다. 단순한 인정이 아닌 압도적인 승리를 원했다. 부모는 없는게 더 나았을 인간들이었고 세상은 한 마음으로 공모해 집요하게 괴롭혔다. 자신이 그런 고통을 견뎌온 대단한 사람이라는 건 또 아니었다. 그의 태도는 온몸이 상처투성이지만 오히려 그래서 도덕적 권위를 획득한 유흥가 파출소 피해자의 떳떳함과 비슷해 보였다. 자꾸만 보기에 유쾌할 것도 없는 자기 상처를 눈 앞에 들이밀며 네 상처도 한 번 보여달라 하는 것이 부담스러웠다. 이후엔 거리를 뒀다.


 2호실은 세상은 누구에게도 악의가 없고, 그저 무관심할 뿐이라고 말했다. 서른이 넘은 후의 인생의 모습은 구십구쩜구프로도 아니라 일백프로 내 탓이기에 더이상 남의 탓을 할 수 없다고도 했다. 이 나라 생활 1년차의 가을엔 농장에 가서 목돈을 벌고 이후의 계획을 다듬어야 한다고 했다. 아예 종이를 가져다 지역별 돈 많이 주는 작물 목록과 향후 호주 생활 10년차의 계획까지 세세하게 적어줬다. 소년은 이 계획표를 날 줄게 아니라 당신이 쓰면 되지 않냐고 물었다. 2호실은 모든 것에는 때가 있는데, 자신은 때를 놓쳐버렸다고 했다. 이후엔 거리를 뒀다.


 3호실은 다른 한인들과 마찬가지로 식당과 청소와 페인트칠과 공사판 일을 닥치는데로 했다. 술이 약했다. 쏘주 반 병에 흥청망청 취해 말했다. 난 이런 일을 할 사람이 아냐. 이런 일은 뭘 말하는 건지 이런 일을 할 사람이란 건 따로 있는 건지 알 수 없었다. 소년보다 먼저, 3호실이 소년과 거리를 뒀다.


 4호실은 학술적인 사람이었다. 진화심리학이니 유전학이니 늘어놓으며 소년의 넋을 흩어놓았다. 모든 것이 유전과 환경이라고 했다. 그것을 극복하려는 노력조차 유전과 환경이라고 했다. 의도한 것은 아니겠지만 소년의 인생에 저주를 퍼부은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이후엔 거리를 뒀다.


 5호실의 소년은 이상한 사람은 다 이곳에 모이는게 아니라 그저 시간이 흘러 나이를 먹었을 뿐 아닌지 생각했다. 이후로는 늘 독작했다. 그 독작의 갈피에 문득 소년은 자신의 소년기가 끝났음을 알았다. 소년은 내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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