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의 부재, 혹은 부재한 철학
누군가 어느 유명 경제학자에게 남미 특정 국가의 경제 파탄의 이유가 무엇인지 물었다고 한다. 학자는 답했다. 어떤 사람이 백발의 총알을 맞아 죽었다고 칩시다. 이 사람을 죽인 결정적인 한 방이 백발의 총알 중 어느 것인지 짚어낼 수 있겠소? 설령 짚어낸다 한들, 그것이 의미가 있겠소?
전세계와 시대를 통틀어 유래가 없는 수준의 대한민국 저출산이 떠오르는 일화이다. 저출산은 무엇을 짚어도 정답이라고 할 수 있는 수많은 이유의 축적이며 이를 단숨에 해결할 수 있는 환상적인 해결책은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 모두는 탈출할 수 없는 호랑이 아가리에 들어와 있고 호랑이의 치악력에 대해 논의하는 것은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는다. 가장 실용적인 행동은 서서히 죄여오는 아가리가 마침내 완전히 닫혔을 때 죽지 않는 방법, 되도록 온전한 신체 부위를 많이 남기는 것일게다.
계속되는 폭염으로 현관문 공포증에 빠져 틀어박힌지 수 일, 임시로 나 자신을 방구석 사회학자로 임명하고 이에 대한 근본적 원인을 찾아보고자 한다. 이를 위해서는 가장 먼저 저출산이라는 현상의 위치를 원인에서 결과로 옮겨야 할 것이다. 저출산은 결과이다. 저출산으로 인해 나라가 망하는 것이 아니라, 나라에 이미 망조가 들었기에 저출산이라는 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저출산이라는 결과를 만들어낸 백발의 총알을 하나하나 짚어내는 대신, 그 공통의 궤적을 따라 발사된 총을 찾을 필요가 있다. 아주 멀리갈 필요까지는 없다. 대한민국은 육이오 전쟁으로 인해 한 번 '리셋'된 적이 있다는 것은 전문가와 비전문가 양자에게 주지의 사실이다.
이후 70년이 넘는 기간, 역사를 보는 관점에서 짧다 말할 수 있지만 전근대와는 차원이 다른 발전(혹은 변화) 속도를 고려한다면 결코 짧지 않은 시기 동안 고도성장기, 민주화, imf, 코로나, 기타등등, 기타등등등을 겪었다. 그 어떤 위기도 만만치 않았고 아직은 나라가 망하지 않은 것을 보면 어찌어찌 넘어서는데는 성공한 모양이지만 이제야 체감하듯 결코 공짜는 아니었다. 각 단계를 넘어설 때마다 후유증과 흉터, 때로는 결코 아물지 못할 상처를 얻었고 그 모든 것이 그래도 오늘보다는 내일이 나을 거라는, 이른바 '성장'이라는 키워드 아래 묻혀버린 것이다. 상처는 언제나 있었다. 숨겨졌을 뿐이다. 굳건했던 성장에 대한 신앙심이 무너져버리자 애써 숨겨왔던 묵은 상처가 노출되어 버린 것 뿐이다.
가장 큰 상처는 가치관, 철학의 손상이다. 우리의 생각과 행동, 사건과 현상을 대하는 태도와 가치판단의 기준의 손상이다. 이로인해 우리는 '숫자로 치환할 수 없는' 가치를 측정할 수 있는 능력을 잃어버렸다. 대신 화폐나 평수, 경력과 학력, 배기량과 연비 등 '숫자로 치환할 수 있는' 가치만을 측정하는 기능만이 비대하게 과잉성장하여 퇴화한 기능의 빈자리를 채워버린 것이다.
물론 비단 이 나라 뿐만의 일이 아니다. 아시다시피 저출산은 세계적인 현상이다. 그러나 가장 심한 낙차를 보이는 것이 한국이며, 뒤따르는 것이 중국이라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우리는 단기간의 초고도성장이라는 열매를 사기위해 잃어서는 안되는 것을 지불해버리는 악마와의 거래를 한 것이 아닐까?
전술했듯 이 상황을 단번에 해결해줄 환상의 마스터키는 있을 수 없다. 다만 숫자로 치환되지 않는 가치를, 이를테면 언젠가 양재꽃시장에 뜨거운 꽃차의 향기같던 햇빛과 반포대교 강변이 지금과 달랐을 시기의 갈대밭, 빨려들듯 까만 하늘에 점점히 박혀있던 별과 깜짝 놀랄만큼 부드러웠던 손, 시린 가로등불 아래 애써 따라웃던 슬픔, 함께 걷던 그 길의 복욱한 초목의 향기의 가치를 새삼 돌이켜보며 아리아드네의 실을 찾을 수는 있다는 생각이다.
늘 아무것도 모르는 것 같은데 어떨 때 보면 모든 것을 아는 것 같은 나의 모친께서 요새는 왜이리 노총각 노처녀들이 많으냐며 말씀하시길, 하긴, 느이 애비야말로 지금 났으면 나같은 등신도 못 만날 양반이지, 하고 날카롭게 촌평했다. 그렇게 짧게 말하고 말수도 있는 것을. 노인과는 지혜겨룸을 할 게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