습작 단편
그 집엔 괴물이 살고 있다.
처음 그 사실을 알린 것은 멧나물을 캐러 뒷산에 갔던 쌍둥이 형제였다. 물론 나물을 캔다는 것은 핑계였다. 집에서 빈둥거리면 자신이 집안에서 가장 많은 일을 하고 있다며 불만에 가득 찬 누이에게 욕을 들을 테니, 호미 하나 짊어지고 나와 꽃이나 따먹으려는 심산이었다. 그날따라 도무지 참꽃을 발견할 수 없었다. 술 취한 나비 떼처럼 흥청망청 피어있는 것들은 대부분 개꽃이었다. 쌍둥이들은 참꽃을 따라 좀 더 높은 곳으로, 여간해선 아이들이 가지 않는 해넘이재 부근까지 간 모양이다. 그리고 그 집을 발견했다.
그들 나이의 몇 배는 더 먹었을 낡고 허름한 집이었다. 듬성듬성 세운 나무를 기둥으로 삼고 흙 반죽으로 벽을 세운 뒤 이엉을 덮은 그저 비바람만 겨우 막을 수 있을 만한 움집으로, 땅을 끌어안듯 엎드려 있었다. 개초를 한지 몇 년은 된 듯 여기저기 썩어서 악취가 났다. 쌍둥이를 향한 쪽으로 툭 튀어나온 입구는 거적문으로 가려져 있었다. 허술한 거적문에 여기저기 커다란 구멍이 뚫려 있었지만 안에 보이는 것은 컴컴한 어둠뿐이었다.
덜미에 닿는 햇빛이 조금씩 따가와지는 계절이었다. 그러나 유독 그 집이 있는, 키 큰 가문비가 둘러싼 한정된 공간만이 깊은 늦겨울에 잠겨 있는 듯 했다. 집은 가문비의 그림자가 여러 겹 겹친 가장 어두운 곳에서 마치 낮잠을 자는 짐승처럼 웅크리고 있었다. 졸려서가 아니라 그저 만사가 귀찮아 눈을 감아버린 늙은 짐승의 잠이었다. 기가 죽어버린 쌍둥이들의 등에서 왠지 모를 소름이 오소소 돋아났다.
아이다운 심술이었을 것이다. 혹은 쌍둥이 형제와 같은 작고 어린존재에 대해 무관심한 그 집에 대한 거부감, 그리고 그것에 대항해 자신들의 존재감을 표현하고 싶어 하는 마음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하지만 그 집을 향해 돌을 던진 아이가 둘 중 누구였는지는 끝까지 알 수 없었다. 쌍둥이 형은 동생이, 동생은 형이 던졌다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그들이 던진 돌은 둥그런 호를 그린 끝에 움집의 지붕에 부딪혔다. 되튕겨진 돌은 다시 바닥에 떨어졌다.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돌이 던져지자마자 뒤로 몇 걸음 물러섰던 쌍둥이들은 멈춰 섰다. 그리고 서로의 얼굴을 보며 고개를 갸우뚱했다. 조금 용기를 되찾은 그들은 좀 더 정확히 겨냥하여 다시 한 번 돌을 던졌다. 첫 번째 돌보다 크고 무거운 돌이었다.
날아간 돌은 공교롭게도 집의 지붕에 난 커다란 구멍으로 쏙 들어가 버렸다. 쌍둥이들은 숨을 죽이며 가만히 몸을 숙였다.
역시 반응이 없었다. 약 세 호흡 후에도 여전히 조용한 것을 확인한 쌍둥이들은 그제야 피식 웃었다. 그들에게 위화감을 주었던 그 집은, 알고 보니 잠자는 짐승이 아니라 오래전에 죽어버린 짐승이었던 것이다.
그들의 웃음은 석류 알처럼 톡톡 터지며 점점 커졌다. 겁먹었지? 아냐, 아냐. 썩 유쾌해진 그들은 더욱 크게 키득거렸다. 그리고 웃음이 최고조에 달하기 직전, 무시무시한 괴성이 그것을 얼어붙게 했다.
충격과 공포가 혈관을 타고 스멀스멀 온몸에 퍼졌다. 괴성의 여운이 귓바퀴에서 뱅뱅 돌았다. 쿵. 쿵. 육중한 발걸음 소리가 뒤를 이었다. 거적문이 거칠게 열렸다. 그 안에서 쌍둥이들이 던진 돌을 들고 있는 거대한 검은 그림자가 언뜻 보였다. 쌍둥이들은 더 자세히 확인 할 만큼 어수룩하진 않았다. 그들은 엄마야 비명을 지르며 반쯤 굴러서 산을 내려왔다. 그리고 강 건너에 팔매를 치며 놀고 있던 우리들에게 달려왔다.
우리들은 믿지 않았다. 폐가의 존재에 대해서는 대부분 알고 있었지만, 그런 우리들이 알기로 그 집에는 아무도 살지 않았기 때문이다. 늙은 산지기가 살던 그 집은 그가 죽고 어른들이 빈례를 치러준 뒤로 늘 비어 있었다.
우리들의 지적에도 불구하고 쌍둥이들은 무안한 얼굴로 뒤통수를 긁적거리거나 하진 않았다. 오히려 흥분한 얼굴로 침을 튀기며 자신들의 말을 몇 번이나 반복했다. 우리들은 쌍둥이들의 손짓에 따라 해넘이재 부근을 바라보았다. 달리 특별한 표현이 사치라고 생각될 만큼, 너무나 평범하고 목가적인 우리 마을 뒷산의 모습이었다. 다시 말해 아무리 눈을 부릅떠도 예의 괴물이 숨어있을 만한 곳으로 보이지 않았다.
우리는 그들의 말을 무시하기로 하고 돌팔매 연습을 재개했다. 건넛마을과의 대결이 얼마 남지 않았던 것이다. 쌍둥이들은 그 후로도 한참을 무어라 떠들었지만 아무도 관심을 가져주지 않자 제풀에 지쳐 돌아가 버렸다.
다음 날은 이른 아침부터 햇살이 수천 개의 달군 바늘처럼 쏟아지는 날이었다. 우리는 팔매 치는 연습 같은 건 때려치우고 천렵을 하고 있었다. 한참이 지나 냇가에서 나올 때쯤, 저쪽에서 삶은 쇠꼴마냥 흐느적거리는 쌍둥이들과 푸줏간 집 막내아들이 나타났다.
그들은 몸을 말리고 있는 우리들을 붙잡고 떨리는 목소리로 무언가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세 명이 각자 따로 설명을 하려 들었고 그나마도 심하게 더듬었기에 도무지 알아들을 수 없었다. 우리는 한참동안 이야기를 듣고 나서야 그들이 어젯밤에 겪은, 더할 나위 없이 끔찍하다는 사건을 재구성해 볼 수 있었다.
전날 쌍둥이들은 해가 지고 나서야 그 집 앞에 호미를 내팽개치고 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밤사이 옆집 사는 푸줏간 집 아들까지 대동해 호미를 찾으러간 모양이다. 푸줏간 집 아들은 내켜하지 않았지만, 쌍둥이들이 그가 응구 할배의 개를 죽인 범인임을 고발하겠다고 협박하는 데야 별다른 수가 없었을 것이다.
달밤에 산길을 더듬어 괴물의 집을 찾아갈 때의 긴장감과 공포는 그들의 서툰 어휘로 감히 표현하기가 힘이 드는 듯 했다. 사태의 명확함을 흐리는 극단적인 표현만 과도하게 사용될 뿐이었다. 그들은 갈수록 보폭이 좁아지는 걸음으로 그 집에 도착했다. 낮에 늙은 개처럼 보였던 그것은 어둠 속에서 몸을 웅크린 맹수처럼 보였다. 잘 넘어가지 않는 침을 삼키고 조심스럽게 다가가던 그들은 뒤쪽에서 느닷없이 부스럭거리는 소리를 들었다. 뻣뻣해진 목을 돌린 그들은 어느새 나타난 괴물의 검은 그림자를 보고 말았다.
점점 얼굴에 제 빛깔이 돌던 쌍둥이와 푸줏간 집 아들놈은 무시무시한 표정과 역동적인 몸짓으로 우리를 집중시켰다. 자신들을 괴물로 착각하고 있는 듯한 꼬락서니였다. 그 극적인 변화에 우리는 약간 긴장했다. 그들은 흥분한 목소리로 괴물의 흉측한 모습을 설명했다. 곰 같은 덩치, 씰룩이는 근육, 온몸을 뒤덮은 씨꺼먼 털가죽, 솥뚜껑 같은 손, 일곱 개나 되는 손가락, 그 끝에 돋은 길고 날카로운 손톱, 점배기네 황소의 그것과 유사한 다리, 커다란 입안에 꽉꽉 들어찬 송곳니들, 뚝뚝 떨어지는 침, 섬뜩하게 굽은 뿔, 쇠좆매 같은 꼬리, 음침한 붉은 색의 눈… 어둠 속에서 잠깐 보고 도망친 것 치고는 꽤나 상세했다.
이내 집중력이 떨어진 우리는 그들의 말이 끊이지 않고 이어지는 동안 불을 피워 물고기를 굽고 있었다. 그것들이 먹음직스럽게 익었을 무렵에야 이야기는 끝이 났다. 숨이 차 씩씩거리는 그들에게 우리는 나뭇가지에 꿰어 익힌 버들치를 내밀었다. 우리가 자신들의 말을 전혀 믿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은 그들은 괴물에 대한 이야기를 처음부터 다시 시작했다. 그러나 한 편으로는 이야기 하는 것 이상의 열정으로 버들치를 냠냠거렸기 때문에 신뢰성은 더욱 떨어졌다.
그 때까지도 우리는 사태의 심각성을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그 후로 며칠 동안 쌍둥이들은 자신들의 보물, 그러니까 파르스름한 조약돌이나 사금파리나 새알껍질이나 도토리나 뱀허물이나 심지어 마을 아이들 모두가 탐내는 구미호 꼬리털을 걸고 호미를 찾아올 사람을 모집했다.
하지만 그에 응하는 아이는 별로 없었다. 물론 헛것임이 분명한 괴물에 대한 불안감 때문은 결코 아니었다. 웬일인지 우리는 워낙 바빴고, 또한 쌍둥이들이 항상 숨겨오던 보물이 구체적으로 드러나자 오히려 그에 대한 흥미를 잃었을 뿐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부탁을 들어준 한가한 아이도 있긴 했다. 점배기가 그랬다. 그는 그 입을 봉하느니 이질 걸린 놈 항문을 봉하는 게 낫겠다는 평을 듣고 있었고, 수다의 내용은 마을 어귀에서 걸식을 하며 사는 바보 담이도 믿지 않았다. 그가 왜 쌍둥이들의 부탁에 응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점배기가 호미를 찾으러 간 다음 날, 그가 미쳐버렸다는 어두운 소문이 돌았다. 그가 마지막으로 목격된 것은 전날 해질녘이었다. 점배기는 그 입만큼이나 가벼운 발걸음으로 사뿐사뿐 산을 오르고 있었고, 아무런 광기도 엿볼 수 없었다.
점배기는 쌍둥이 형제들을 포함한 몇몇 방문자들을 신경질적으로 거부했다. 자신의 수다를 들어줄 사람을 찾아 건넛마을로 가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던 그답지 않았다. 쌍둥이 동생이 걱정스럽게 말했다. 어른들이 미친놈은 쫓아내야한다고 했는데. 쌍둥이 형이 단호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미친놈은 두들겨 패야 되는 거야. 그게 약이래. 일단은 그가 확실히 미친 건지 파악하기 위해 다 함께 점배기를 찾아가기로 했다. 쌍둥이 형은 어느 샌가 두툼한 몽둥이를 하나 들고 있었다.
어른들은 일을 하러 나간 것인지 집에는 점배기 혼자 있었다. 그는 이렇게 우르르 몰려왔으니 할 수 없다는 듯 우리를 맞이했다. 권하는 데로 대청에 둘러앉은 우리는 찬찬히 점배기의 통통한 얼굴을 살펴보았다. 평소와 달리 시무룩한 표정이었지만 다행히 미친 것 같지는 않았다.
뒤춤에 숨긴 몽둥이 쥔 손을 꼼지락거리던 쌍둥이 형이 조금 주저하는 목소리로 말했다. 저, 찾았어? 호미.
우리는 퍼뜩 정신을 차렸다. 점배기가 미친 게 아니라면 역시 중요한 것은 호미의 행방과 괴물의 정체였다. 어느새 우리는 점배기를 중심으로 둥글게 모여 앉아있었다. 그는 이런 구도가 썩 만족스러운 듯 처음으로 살짝 웃었다. 하지만 그 미소는 금방 지워졌다. 그의 집 황소가 낳았다는 뿔 달린 말이 평범한 송아지로 밝혀진 뒤 그의 말을 절대 믿지 않겠다고 다짐했던 우리였지만, 그런 것은 이미 까맣게 잊고 있었다. 우리는 지난 가을 마을에 왔던, 모둘빼기로 다섯 명을 넘던 노릇바치를 볼 때보다도 높은 집중력으로 점배기의 말을 경청했다.
전날, 점배기는 쌍둥이들의 상세한 설명을 따라 별 무리 없이 그 집으로 갈 수 있었다. 부드러운 빛의 석양 한 겹이 덮여있는 그 집은 예상보다 위험해 보이지 않았다. 다만 다가갈수록 콧속을 날카롭게 할퀴는 악취가 진동했다.
이 대목에서 우리는 잔뜩 긴장하여 점배기의 콧구멍을 바라보았다. 왠지 그 코 밑의 커다란 점이 평소보다 더 커보였다.
하여간 악취는 집 뒤쪽에서 풍겨오고 있었다. 자신의 무수한 장점 중 한 가지가 강한 호기심이라고 여기고 있던 점배기는 호미에 대한 생각은 잠시 뒤로 미뤄두고 뒷마당으로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그리고 점배기는 온몸이 뻣뻣하게 굳어버릴 만큼 경악했다. 나무를 베어 공간을 확보한 널찍한 공터에는 짐승들의 주검이 가득했다. 점배기는 그것들이 괴물의 먹잇감임을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대부분은 가죽이 벗겨져 여러 부위로 토막 난 상태였다. 그러나 몇몇 형상을 보존하고 있는 것들도 있었고, 그 중에는 놀랍게도 사람의 송장도 여럿이었다는 것이다. 상황이 워낙 급박하여 점배기의 날카로운 눈으로도 그 신원을 제대로 확인할 수는 없었지만, 얼핏 봐서 단돌이의 얼굴인 것 같았다고 했다.
우리는 이 대목에서 소스라칠 수밖에 없었다. 단돌이는 지난겨울 산에서 실종되었던 바보 담이의 형이었다. 어른들이 며칠 동안이나 뒷산을 샅샅이 뒤졌지만 끝내 찾지는 못했다. 어른들은 그저 약초를 찾아 너무 깊은 곳까지 들어갔다가 실족한 것이리라 말했지만, 알고 보니 그는 흉악한 괴물의 먹이가 되었던 것이다. 때문에 불쌍한 담이는 하나 뿐인 혈육을 잃고 걸식을 하며 연명하고 있는 것 아닌가.
우리들은 괴물의 악행에 진심으로 개탄스러워했다. 그러자 점배기는 갑자기 흥분하여, 다시 생각해보니 그것은 단돌이가 분명하다며 목에 핏대를 세웠다. 우리는 안타깝게 고개를 끄덕이며 당분간은 불쌍한 담이에게 돌을 던지거나 옷을 벗겨 개울물에 빠뜨리는 일 따위는 하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괴물을 처단하여 단돌이의 복수를 하는 것도 시급한 문제겠지만, 우선 점배기의 이야기를 모두 듣고 나서 논의하기로 암묵적인 합의를 했다.
전술한 바와 같이, 점배기는 그 충격적인 장면을 목격하고 온몸이 마비되는 듯 했다. 하지만 냉철한 이성과 불굴의 용기를 가진 그가 그런 상황에 오래 처해 있을 리 만무했다. 정신을 수습한 그는 우선 호미를 찾은 다음 마을로 돌아와 괴물의 존재와 그 악행에 대해 고발하리라 마음먹었다. 그러나 좀처럼 찾을 수 없었다. 결국 괴물의 집 안을 수색하려 마음먹은 순간, 얼마 전 태어난 뿔 달린 말, 그러니까 송아지에게 여물을 주지 않았다는 것을 뒤늦게 깨닫는 바람에 아쉬움을 뒤로하고 하산했다는 것이다.
이야기가 끝나고 우리들이 참았던 숨을 길게 내쉬자, 기운을 되찾은 듯했던 점배기는 갑작스레 피로한 표정을 지었다. 우리들은 송아지가 벌써 젖 대신 여물을 먹느냐는 질문을 포함하여 더 묻고 싶은 것이 헤아릴 수 없을 지경이었지만, 그가 피곤함을 이유로 우리를 몰아내는 바람에 아쉬움을 뒤로 하고 물러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