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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바롬 Jul 21. 2020

에더와드

 난 나이 상한선인 만 서른 살을 거의 가득 채워 호주로 워킹홀리데이를 떠났다. 가슴에 손을 얹고 나이로 유세부리는 짓은 하지 않았다 자부하지만, 대부분 20대 초중반인 워홀러들은 내 나이에 불편한 기색을 보였다. 심지어 대게 20대 초중반의 피고용인만을 대해 온 중장년의 교포들도 마찬가지였다. 거참, 다들 그렇듯 나도 사실 속내는 10살짜리 어린애와 크게 다를 것도 없는데 말이다.


 그러나 멜번의 주방에서 만난 소녀에게 평소 이상의 동지의식을 가진 건 비단 동갑내기여서만은 아니었다. 그녀는 스무살 때부터 온갖 알바를 전전했고, 20대 후반이 되어 이건 아니라는 것을 절감했고, 무언가 바뀔지도 모른다는 실낱같은 희망을 쥐고 적도를 넘었고, 역시나 별달리 바뀐 것 없이 호주에서도 온갖 일을 전전하고 있다고 했다. 뭐야, 이건 흡사 나잖아?


 생애 처음으로 고향 도시를 떠나온 소녀는 심한 영남 사투리를 써서, 가끔 같은 한국인 직원끼리도 영어로 대화하기도 했다. 난 여러번 그걸 놀렸다. 이 노래 뭐드라? 많이 들으봤는데? 니 아나? 아, 이거 휘성이라고, 서울에서 유명한 가수야. 주방에는 폭소가 터지고, 그녀는 니 죽을래! 하며 때리는 시늉을 했다. 난 좋아하는 짝꿍의 댕기머리를 잡아당기는 10살짜리 어린애처럼 두근거렸다.


 우린 친했고, 서로를 밀어낼 생각은 전혀 없었지만, 끝내 소녀는 호주에 남고 난 한국에 돌아왔다. 돌이켜보면 애초에 우리의 경로는 스칠지언정 만날 수 없었고 밀어내지 않을지언정 애써 당길만큼의 열정도 없었다. 그와 같은 결론을 내리기까지 소녀와 빚어낸 몇가지 사소한 추억은 글이 아닌 기억으로만 남기기로 하자. 다만 한 가지, 그녀를 생각하면 꼭 떠오르는 또다른 기억이 있다.


 다른 대부분의 워홀러들과 달리 난 영어 이름을 쓰지 않았다. 내 이름이 외국인에게 특별히 어려운 발음도 아닌 것 같았고, 정 익숙치 않아하는 사람에게는 그냥 킴이라고 불러, 하면 그만이었다. 그러다 시드니에 있을 때, 킴-줭-운이 미사일을 쏘는 바람에 짓궂은 호주 아저씨들에게 너 싸우쓰 말고 노쓰에서 왔지? 뉴스에 나오는 그 놈 형제지? 성이 같잖아. 닮은 것 같은데? 하고 놀림을 받게 되었다.


 그래서 그 참에 나도 한 번 영어 이름을 가져보기로 했다. 숙고 끝에 결정한 이름은 에드워드. 좋아하는 배우의 이름을 땄다.


 결국 실제로 써먹어본 건 딱 한 번 뿐이지만. 언젠가 함께했던 버스정류장에서, 소녀가 물었다. 닌 영어 이름 읎나? 있지. 에드워드.


 뭐가 그렇게 웃겼는지 모르겠다. 소녀는 나중엔 눈물을 줄줄 흘릴만큼 웃더니 그 후 나를 영어 이름으로만 불렀다. 에드도 에디도 아니고 에드워드. 정확히는 그 억양에 따라 '에더와드'에 가까웠지만.


 각자의 인생은 힘차게 굴러가고 이제 와선 얼굴조차 가물가물하지만, 지금도 쉽게 떠올릴 수 있는 소녀의 성조가 뚜렷한 말투만큼은 계속해서 기억하고자 한다. 언젠가 우리의 경로가 다시 스칠 때, 누군가 등 뒤에서 에더와드, 하고 불렀을 때 보다 자연스러운 미소로 돌아볼 수 있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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