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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바롬 Sep 25. 2022

아버지들의 아버지

그래도 아빤 착해

 다른 모든 분야와 마찬가지로 예술 장르 또한 이 시대에 이르러 끝없이 세분화 되고 있지만, 여전히 그 원형이 되는 장르는 이야기라고 할만하다. 은하의 운명을 걸고 우주함대전을 치르는 SF 판타지든 일상에서 일어날 법한 평범한 것이든 평생 가볼 일 없는 지구 어딘가에서 일어나는 갈등이든, 이야기는 결국 우리 자신의 인생에 대해 말한다. 그렇기에 이야기 또한 다시 그 원형이라 할만한 것들 몇가지를 추려낼 수 있는데, 그 중 하나가 아비와 투쟁하는 아들의 이야기일 것이다.


 스타워즈가 이토록 회자되는 건 지금 보면 헛웃음 나오는 특수효과가 아닌 저 유명한 '아 엠 유어 파더' 덕이고, 대부는 아비를 사랑하고 싫어하고 저항하는 아들이 끝내 닮아가는 이야기다. 그리고 보다 수천년 전, 이야기의 고향 그리스의 신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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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스 신화의 프롤로그는 주인공 제우스의 할애비 우라노스로부터 시작된다. 우라노스는 천공을 상징하는 신이었고, 아내인 가이아 사이에 많은 자식을 두었다. 자식들은 하나같이 흉폭하고 추악하여, 그들을 미워하고 두려워한 우라노스는 그들을 추방해버린다.


 가이아는 추방당한 자식들의 복수를 위해 막내아들 크로노스를 사주해 우라노스를 몰아내기에 이른다. 그 방식이 하필 '거세'인 것은 더 이상의 형제, 즉 경쟁자를 차단하기 위함이 아니었을까? 그 양물이 일으킨 파도거품에서 태어난 아프로디테는 아마도 우라노스의 유복녀이리라. 하여간 쫓겨난 우라노스가 막내아들에게 내린 저주는 너무나 유명하다. '언젠가 너도 너의 자식에게 똑같이 당하리라!'


 아마도 이후 그리스 비극의 원형이 되었을 이야기답게, 우라노스의 저주는 자기 실현적으로 현실화된다. 아비의 저주를 두려워한 크로노스가 이후 자식이 태어나는 족족 잡아먹어 버린 것이다. 아비의 자식 포식에서 유일하게 벗어난 막내아들 제우스는 무사히 장성해 크로노스에게 맞서 마침내 우라노스의 예언을 실현하고 만다.


 여기서 제우스는 아비와 다른 선택을 한다. 물려받은 권력을 독점하는 대신 그것을 아비의 뱃속에서 부활한 형제들과 나눈 것이다. 우라노스로부터 이어져왔던 폭력의 유전은 제우스에 이르러 끊어지고, 마침내 그리스 신화는 본격적으로 막을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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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부분의 이야기가 그러하듯 그리스 신화의 프롤로그 또한 현실에서 그 소재를 차용했다 여겨진다. 아마도 역사가 시작되지 않은 선사시대 발칸 지역의 부족정에 대한 은유가 아닐까?


 흔한 예상과 달리 부족정 또한 이후와 다를 바 없는 엄격한 계급제 사회였다. 생산하는 자원의 대부분은 물론번식의 기회 또한 족장이 독점했다. 아마도 그 권력의 근거는 족장의 물리적 힘에서 기인하는 경우가 많았을 것이고, 자연스럽게 나이가 들수록 그 유지가 힘들어졌을 것이다. 노쇠한 족장은 젊고 야심만만한 부족원, 결국은 자신의 아들에게 도전받고 패한 뒤 비참하게 몰락했겠지.


 크로노스와 제우스가 하필 막내였던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신세대 부족원, 즉 족장의 아들들은 장성하고도 아비의 힘과 노련함을 당해내지 못했을 것이고, 차라리 뛰쳐나가 새로운 부족을 만드는 것을 시도했을 테니까. 아무래도 막내가 자신의 육체적 전성기와 아비의 노쇠의 시기가 일치하는 행운을 누렸을 가능성이 높다. 후에 유목민족에게 이어진 말자상속의 전통의 원형은 아마 이런 것이었을 테다.


 하여간 아비를 제끼고 권력의 정점에 선 아들, 새로운 족장의 우선 과제 중 하나는 뜻밖에 죄책감을 극복하는 것이었다. 원시인이라고 괴물 딱지는 아니었을 것이고 동족, 특히 혈족을 죽이고도 본능적인 죄책감이 없는 존재였다면 애초에 부족정이 가능할 만큼의 대규모 집단을 이루지도 못했을 것이다.


 그들의 아마도 인류 최초의 원시적 프로파간다에 의해, 제껴진 옛 족장은 '죽은'게 아니라 '승천'했고, 지금은 그의 아비와 그 아비와 그 아비와... 무수한 아비들과 함께 우릴 굽어보는 존재가 되어버린다. 때론 날씨도 바꾸고 계절도 바꾸면서. 천공의 신 우라노스와 시간의 신 크로노스의 모델은 각각 생전에 유독 날씨를 잘 맞추던 족장과 계절 변화에 민감한 족장이 아니었을까? 아마 여기에 으레 아비가 신의, 혹은 신이 아비의 메타포인 이유가 있을 것이다.


 아비의 신격화를 끝낸 새 족장은 이번엔 막 태어나기 시작한 자식들로 시선을 돌린다. 자신이 아비에게 그랬듯, 조만간 자신이 늙으면 언제든 권력 탈취를 시도할 불온하고 위험천만한 존재들로 보였을 것이다. 결국 신임 족장은 주어진 권력을 활용해 잠재적 도전자들, 자식을 견제하고 억압하게 된다. 아비와 같아진 것이다. 우라노스의 저주와 그로 인해 촉발된 크로노스의 자식 포식은 이것의 은유일 것이다.


 물론 제아무리 강대한 족장이라도 (공교롭게도 크로노스가 관장하는) 시간의 흐름은 피할 수 없었고, 길어야 수십 년 후에는 자기 아비와 같은 운명을 맞았겠지. 그러한 이야기는 고작 우라노스로부터가 아닌 그 이전 십수세대, 어쩌면 수십수백 세대에 걸쳐 반복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명확히 역사에 남진 못했을지언정 그리스 신화의 주인공 제우스의 모델이 되어 도리어 영생을 누리게 된 누군가가 나타났다. 자식을 억압하던 아비를 '승천'시키고 새로이 권력을 잡은, 막내 혹은 막내에 가까운 젊은 족장. 그가 이전 수십세대, 어쩌면 당대의 다른 족장들과 결정적으로 달랐던 점은, 새로 얻은 권력을 다른 이들과 나눴다는 점이다. 이전 족장의 견제와 억압을 못이겨 추방당했던, 때론 자의로 떠났던 형제들을 다시 불러온 것이다. 제우스가 크로노스의 배를 갈라 잡아먹혔던 형제들을 구한 것은 아마도 이에 대한 은유일 것이다.


 그렇게 그는 잠재적 경쟁자와 도전자들에게 권력과 그로인한 이득을 분배함으로써 까마득한 옛날부터 이어졌을 아비와 자식들간의 피의 투쟁과 폭력의 유전을 끊어낼 수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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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고 다시 수천 년이 지나, 마침내 오늘이 되었다. 난 우리 모두가 그러하듯 제우스의 무수한 사생아들의 후손 중 하나고 우리 모두가 그렇지만 그 중에서도 특출날 만큼 아비를 증오하는 아들이다. 요새는 오래전에 썼던, 아비와 아들의 이야기가 담긴 단편 소설을 희곡으로 고쳐쓰는 작업을 하고 있다. 프롤로그는 마치 우라노스와 크로노스의 대결처럼 보이도록 하려는데, 누군가 왜 그런 선택을 한 것이냐 묻길래 답한 내용을 정리해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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