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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바롬 Jan 27. 2023

시대의 분수령

모든 시대의 모두가 말했겠지만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일이겠지만, 다 큰 어른이면서 최근 몇 년 간 호잇, 호잇! 마법을 쏴재껴서 날 당혹스럽게 하는 셜록이 영화 '이미테이션 게임'에서 분하기도 했던 컴퓨터의 아버지 앨런 튜링이 말했다.


 - 이 친구들아, 진정한 의미에서 인공지능이 무엇인지, 결국 우리의 '의식'이란 무엇인지 끝없이 이어지는 논의는 우리가 실질적인 업무에 착수해야할 시간과 자원을 갉아먹을 뿐이야. 그 영역은 철학자들에게 맡겨두기로 하고, 우리끼린 대충 '블라인드 테스트를 해서 사람인지 인공지능인지 알 수 없다면' 인공지능인 걸로 치지 않을래?


 그것을 튜링테스트라고 한다. 간혹 출처가 의심스러운 인터넷발 기사로 드디어 모 AI가 튜링테스트를 통과했다느니 법썩을 떨기도 하지만, 자세히 알아보면 늘 편법에 가까운 수를 통해 어거지로 통과한 것임이 밝혀져 학계에서 인정하지 않는 모양이다. 이에 대해, 이미 존 설이란 양반이 '중국어 방'이라는 사고 실험을 고안해 예견한 바 있다.


 - 과연 그게 되는 얘길까? 봐봐, 중국어를 한마디도 할 줄 모르는 내가 중국어로 씌어있는 카드 세 쌍을 받는다고 쳐. 카드에는 각각 이렇게 적혀 있어.


 A1 마일드쎄븐 한 갑은 얼마입니까?

 A2 담배에 '마일드'라는 표현이 금지되어 '뫼비우스'로 이름을 바꾼 구 마일드쎄븐의 가격은 한국, 2023년 초 기준 4,500원입니다.


 B1 맥주 중엔 어떤 것이 가장 맛있습니까?

 B2 사람의 취향이 제각각이고 맛은 정량적으로 계측할 수 없는 부분이라 어렵지만, 개인적으로는 이태리 맥주 페로니를 가장 좋아합니다.


 C1 355밀리리터짜리 몬스터 한 캔에는 카페인이 얼마나 들어있나요?

 C2 100밀리그램 들어있습니다. 성인 남성 기준, 하루 최대 네 캔 이하 섭취를 권장합니다.


 난 카드에 무슨 내용이 씌어있는 지 전혀 알 수 없어. 하지만 각각의 카드가 한 쌍이라는 것만 파악한다면, 중국어를 전혀 모르는 나도 완벽하게 대답할 수 있단 말이지. 질문이 늘어나도, 중국어가 아닌 히브리어라고 해도 상관없어. 게다가 다양하게 변주한 답변 카드를 특정 가중치에 따라 내놓는다면 더욱 자연스러워지지. 따라서 많은 질문에 자연스럽게 대답할 수 있다고 해도 그건 단지 입력에 대한 반응일 뿐, 인공지능이 스스로 '사고'한다고 볼 수는 없는 거란 말이지. 죽은 개구리 뒷다리에 전류를 흘리면 움직이지만, 그렇게 움직인 다리가 우연히 눈먼 축구공에 맞아 골이 터졌다고 인공 축구 선수를 만들었다고 할 수는 없는 것과 같지.


-


 그럴듯한 말이지만, 난 그것이 오히려 주장하는 바에 대한 반박을 암시하고 있다고 느낀다. 이를테면, 웃음기를 쫙 빼고 이렇게 물을 수도 있는 것이다.


 - 우리 사고라는게 중국어 방이랑 뭐가 다른데?


 실은 우리도 별로 다르지 않을지도 모른다. 컴퓨터가 오직 0혹은 1만을 표현할 수 있는 회로를 무수히 겹쳐 우리가 아는 기능을 출력하듯, 인간 또한 전기신호가 통하는 거나 통하지 않을 뿐인 뉴런 수백억개의 명멸로 우리의 사고와 의식을, 어쩌면 우리가 '사고와 의식이라 착각하는 것'을 빚어낼 뿐인지도 모르는 것이다. 당연히 내 의식의 실존을 확신하고 고로 존재를 확신하지만, 실은 그 또한 전류가 흐르는 개구리 뒷다리와 다를 바 없을지 누가 알겠는가.


 지금껏 인류가 빚어낸 모든 학문체계는 아마도 철학에서 시작되었을 것이며, 철학은 인간이 가질 수밖에 없는 의문 중 가장 근원적인 질문, 즉 '나는 누구인가'에서 시작되었을 것이다. 수천 년이 지나, 달 뒤편에 망원경도 쏘고 소립자의 비밀을 밝혀내고 우주의 시작과 끝을 짐작이나마 할 만큼의 성과를 내놓았지만, 지금에 이르러 파랑새를 찾아나섰다 돌아온 오누이처럼 잊고 있던 유년의 질문을 다시 마주하는 것이다.


 - 나는 누구인가?


 첨언하자면, 체스와 바둑은 물론 의료 등의 전문 영역, 그림그리기와 어쩌면 곧 글쓰기조차 인공지능보다 훨씬 못하게 될 나는 말이다.


 언젠가, 어쩌면 그다지 머지 않은 미래에 인류의 영역은 모조리 인공지능에게 함락되어 우리에겐(물론 좋게 풀렸을 때 얘기지만) 빵과 서커스 정도만 남게될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끝내 함락될지언정, 마지막까지는 버틸 최후의 보루는 바로 철학일 것이다.


-


 Chat GPT라는게 화제인 듯 하다. 난 조금 업그레이드 된 심심이나 이루다인 줄 알았는데, (종종 그 정도 수준의 답을 하기도 하지만) 그 수준의 격차가 놀라울 정도다. 일반에 공개된 게 이정도라면 공개되지 않은 건 어느 정도일까? 생각하면 가끔 섬뜩하기도 하다.


 하여간 저것을 이용해 꽁트를 써보고 있다. 이게 가능하다면 정말이지 글쓰기의 패러다임이 바뀔 것이다. 아마도 주류 문학계는 인정하지 않겠지. 마치 파크리크 쥐스킨트의 '향수'에 등장하는 구식 조향사처럼. '세상에, 원료에서 향료를 추출하는 방법도 모르는 것들이 기성품 향료를 사다가 이리저리 섞어 향수를 만드는 꼴이라니. 저걸 진정한 조향사라고 할 수 있단 말인가?'


 아마도 비슷한 시대의 화가들도 후대의 화가들을 보면 비슷한 한탄을 하지 않았을까? '세상에, 물감을 만드는 법도 모르는 것들이 홍대 화방에서 기성품 물감을 사다가 그림을 그리는 꼴이라니. 저것들은 화가도 아냐!'


 그리고 홍대 화방에서 물감사서 그리던 화가들은 요즘의 화가들을 보면서 분통을 터뜨리겠지. '세상에, 이젠 붓도 캔버스도 물감도 잡아보지도 못한 것들이 태블릿으로 그림그리면서 화가입네 하네!'


 나도 나이들면 비슷한 불평을 하게 되지 않을까? '세상에, 제대로된 문장하나도 못쓰는 것들이 AI한테 소재만 던져주고 이거, 이거, 선택만 해서 완성된 걸 글이라고 하네. 저게 무슨 작가야?'


 아마도, 분명 그것도 작가일 것이다. AI의 발달에 따라 모든 분야에서 '정확히 답하는 것'이 아닌 '적절히 질문하는 능력'이 중요해질 테고, 창작자라고 해서 다르지 않을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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