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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바롬 Aug 05. 2023

총무의 추억

생애 최대 미스테리

 호주 농장 숙소에서 총무 노릇을 할 때의 일이다. 시즌이 다가오고 워커들이 기백명으로 늘어나며 나혼자 감당할 수 없는 지경이 되어, 청소를 전담할 직원이 추가됐다. 토모미. 비슷한 연배의 일본 출신 여자애였다.


 갓 스무살을 넘긴 애들, 게다가 대부분은 생애 첫 해외 생활을 통한 '자유(실상을 알고나면 모국보다 훨씬 못하지만)'를 만끽하려는 인원 기백명이 생활하다보면, 제아무리 선의와 에티켓으로 가득찬 이들이라 해도 개판이 나기 마련이다. 더불어 내가 판단하기에 그들은 선의와 에티켓도 못 배워먹은 놈들이었다. 매일, 특히 밤이면 지옥의 뚜껑을 열었다 닫은 꼬락서니의 주방과 휴게실의 복구를 떠넘길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토모미의,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 얼굴이 그렇게 예뻐보일 수 없었다.


 그녀의 유토리 세대답지 않은 융통성의 결여와 그 외 사건들을 통해 나름대로 얻게된 통찰은 졸저 '나는 작가입니다, 밥벌이는 따로 하지만'에 설명한바 있으므로 여기서는 통과하기로 하자.


 그녀는 그 외에도  청소 전담 직원으로서 치명적인 결함이 있었는데, 해가 지면 혼자 밖에 나가질 못한다는 것이다. 고단한 하루 일과를 끝내고 사장의 창고에 박스채 쌓인 참이슬 두 병을 가져다 무사하진 않았지만 어쨌든 또 하루 넘긴 것을 자축하려는 나의 방문을 두드리며 쓰레기 버리러 같이 가달라 요청하며 혈압 수치를 높이곤 했다.


 그 날 밤도 오늘이 정말 마지막이라고 결국은 지켜지지 않을 약속과 함께 토모미와 쓰레기 버리는 뒷마당으로 나갔다. 그리고 난 보았다. 민소매티를 입은 토모미의 어깨 아래 삐져나온 굵직한 두 개의 가닥을.


 뒷마당의 조명이라곤 부실한 등불 뿐이었다. 그러나 난 비록 눈이 나빠 공익갔지만 동시에 봐야하는 건 꼭 보는 매서운 시력을 갖췄기 때문에 돌이켜보면 꼭 봤어야 하는 지 의문이 드는 그것 또한 보고만 것이다. 나의 첫인상은 왜 겨드랑이에 먹다 남은 먹물 파스타를 보관하고 다닐까 하는 것이었다. 스파게티보다는 페투치네에 가까웠다.


  그럴리가 없다는 것을 인지할 만큼 다소 정신을 차리고도 도무지 눈을 뗄 수 없는 압도적 광경이었다. 자연스럽게 못 본 척 하기에 나의 선의와 에티켓은 한창 더 단련이 필요한 시기였다. 토모미의 어깨 밑 존재의 더 놀라운 것은 바람 한 점 없었음에도 꿈틀, 꿈틀, 움직이고 있었다는 것이다. 방향도 제각각이었고 그 전환도 매우 신속했다. 나의 별 것 아닌 물리학적 지식으로는 도무지 설명할 수 없는 희한한 현상이었다.


 부실한 조명을 뛰어넘는 밝기를 가지게된 내 눈을 토모미도 알아차렸다. 어리둥절 내 시선이 꽂힌 부분을 확인한 토모미는 화들짝 놀라며 팔을 들어올렸고, 그 안에서... 거미가 튀어나왔다.


 한국에 흔한, 통통한 몸에 가느다란 다리가 달린 종류가 아닌, 털이 부숭부숭한 우람한 다리를 가진, 타란툴라 같이 생긴 종류였다. 더불어(호주 기준으로는 아니겠지만 극동아 기준으로는) 그 크기도 엄청났다.


  물론 숙소 총무로서 몇 번 잡아야할 일도 있었고 농장 생활 전후 셰어하우스에 살며 침실에서 출몰한 것도 여러 번 봤기에, 일반적인 상황이라면 그렇게 호들갑 떨만한 일은 아니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너무나 뜻밖의 상황이었던 만큼, 나는 소녀같은 비명을 질렀다. 토모미도 뒤따라 만취한 전인권 같은 비명을 질렀다. 들고 있던 쓰레기 봉투들이 삼미터 정도 두둥실 떠올랐다. 토모미는 미친듯이 열정적인 박수를 쳤는데, 그 강렬한 타격음을 제외하고도 특기할 점이 있다면 일반적으로 박수칠 때 오른손이 수행하는 역할을 오른쪽 겨드랑이가 대신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슬슬 잠자리에 들던 혹은 이미 들었던 워커들이 맨발로 뛰쳐나와 무슨일이냐고 물었다. 나는 상황을 영어로 설명할 자신도 없고 믿어주지도 않을 것 같아 뭔가 착각했다고 하고 말았다. 토모미도 쪽팔렸는지 아무 말 안했다. 그러나 이후 줄기차게 무슨 일이었는지 묻는 동향애들에게 뭔가 꾸며낸 이야기를 한 건지, 한동안 일본애들 사이에 숙소에 귀신이 있다는 소문이 돌아 날 귀찮게 했다.


 대체 손바닥 만한 커다란 거미가 어떻게 그곳에 도달할 수 있었을까? 그리고 토모미는 그걸 어떻게 모를 수 있었을까? 남들은 한 번 씩 겪는다는 초자연적 현상을 본적도 들은 적도 없는 내게, 상기한 사건은 가장 공포스럽고도 미스테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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