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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Oct 08. 2020

변이 하는 세계와 이변의 사람들 237

9장 3일째 저녁

237.

 엄마는 매일 아버지에게 두드려 맞았다. 거르지 않고 아버지에게 맞던 엄마는 눈두덩에 쌓여있던 멍의 피가 밖으로 나오지 못하고 계속 고여 있다가 뇌로 가는 혈관의 길목을 막아버렸다. 엄마는 움직이지 못하는 몸으로 며칠을 고통스럽게 있다가 그대로 사망에 이르렀다. 소피는 엄마의 장례식장에서 마지막으로 본 엄마의 모습에 몸이 덜덜 떨렸다. 죽으면 모두 잠을 자는 듯 평온하게 보인다고 했지만 엄마는 죽는 순간까지 고통에 몸부림치다 죽었다는 모습이 드러나는 표정이었다. 고통을 참아가며 더 심한 고통을 느끼는 표정. 인간은 죽음의 고통이 닥치면 뇌에서 엔도르핀을 분수처럼 생성해서 고통을 줄이려 한다. 하지만 엄마의 얼굴에서 그런 모습은 소거되어 있었다.


 소피도 그동안 잘 참아왔다. 앞으로는 자신이 돈을 벌어서 엄마의 고생을 줄이고 싶었다. 엄마의 얼굴이라고는 알아볼 수 없는 얼굴이 관속에 누워있다는 것에 아랫도리의 힘이 빠져나갔다. 소피는 바로 주저앉아 버렸고 소리 없이 마음으로 울었다. 이모라고 하는 사람이 와서 소피를 안고 큰 소리로 울었다. 하수구에 드러누운 기분 나쁜 불쾌함과 함께 익숙한 편안함이 아랫도리를 타고 몸을 적시고 팔을 적시고 눈과 코를 적셨다. 익숙하지만 불온한 냄새가 퍼졌다. 육신은 현실의 반응에 기계처럼 딱딱해졌다. 몸은 현실의 사실에 기계처럼 적응하지 못했다. 어지러움이 먹구름처럼 몰려오고 자신 때문에 엄마는 얼굴도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망가졌다는 자괴감이 망치가 되어 소피의 등을 사정없이 찍었다.


 엄마를 잃은 슬픔과 공부의 필요성을 잊어버린 소피는 어떤 결심을 하고 미국행에 올랐다. 자신이 살고 있는 이 나라가 싫었다. 아버지에 대한 증오는 극에 달해 있었다. 증오는 살인에 대한 충동으로 이어질 것 같았다. 아버지는 술 때문에 정신의 문제가 있었지만 가장 큰 형량을 받고 교도소에 수감이 되었다. 전해 들은 이야기로 교도소에서 아내를 폭행으로 죽였다는 사실이 소 내에 퍼지면서 그곳의 재소자들 중 가장 높은 위치에 있는 재소자의 눈 밖에 나면서 따돌림을 당하며 교도관들 모르게 폭행을 당하고 있다 하였다. 높은 위치의 그 재소자의 아내가 반대파에게 폭행으로 죽었기 때문이었다. 형질이 너무 악질이라 몇 번의 심리를 거쳐 최종 사형이라는 선고를 받았다. 1992년 사형제도가 사라진 이후 1995년 의회의 만장일치로 전면 폐지가 되었지만 이례적으로 소피의 아버지라는 남자에게는 사형이 선고되었다.


 엄마가 아버지 몰래 남긴 약간의 돈이 있었다. 소피에게 유산으로 남겨진 그 돈으로 맨해튼 섬의 북동부 지역으로 건너와서 먼저 연예기획사를 돌며 오디션을 봤다. 연예기획사라고 하지만 지역의 연극 공연이나 작은 단막극을 연출하는 곳에서만 오디션이 있었다. 하지만 미국이라는 나라에서 소피처럼 영어가 제대로 되지 않고 얼굴이 동그란 여자가 연예기획사의 오디션을 통과하기는 바늘구멍을 낙타가 통과하는 것과 흡사했다.


 소피는 유난히 카메라에 얼굴이 둥글게 나왔다. 썩 예쁘게 나오지 않았다. 무엇보다 영어 발음이 엉망이었다. 고등학교 때부터 대학교를 다니는 동안 영어를 언어학으로 공부를 한 덕에 의사소통은 겨우 됐지만 발음이 부정확했다. 현실적으로 가망이 희박했다. 오디션을 보는 대부분의 지원자들은 소피보다 나이는 몇 살 위였지만 이 바닥을 꽤 잘 알았다. 이미 여러 번의 경험 덕에 떨지 않았다. 게다가 미사일 같은 가슴을 자랑하며 얼굴도 카메라에 잘 나왔다. 화면에 얼굴이 잘 나올 수 있도록 의사의 손길을 거쳤다. 대부분이 그랬다. 물론 안 그런 여자도 많았지만 필요에 의해서 선택받은 사람들은 안 그런 사람보다 카메라에 잘 나오는, 얼굴이 예쁜, 가슴이 큰 여자들이었다. 그들도 소피처럼 다른 나라에서 온 여자들이 많았지만 영어 발음이 좋고 섹시함으로 중무장했다.


 소피는 낮에는 대형 퍼브에서 일을 했고 그곳에서 마련해주는 숙소에서 생활을 하며 조금씩 돈을 모았고 저녁이면 오디션을 보러 다녔다. 소피가 일하는 퍼브는 분점이 많은 대형 프랜차이즈로 소피가 일하는 곳은 규모가 미국에서 3번째로 큰 퍼브였다. 일하는 직원들이 로테이션으로 돌아갔고 그 수 만 해도 30명이 이르렀다. 퍼브 안에서 자기의 구역이 있어서 자신의 역할을 충실히 했고 소피는 동그란 얼굴의 북유럽 인이라 미국 사람, 즉 미국 남자들에게 인기가 좋았다. 퍼브에서 글라스 비어나 와인을 팔고 있기 때문에 낮에 햄버거 스테이크와 술을 마시는 사람들이 많았고 일을 하는 소피를 보려고 오래 앉아있는 남자들이 늘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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