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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Oct 08. 2020

야성을 빛낸 국밥 한 그릇

국밥 한 그릇은 시로 탄생해


계속해서 국밥 이야기를 해 보면, 날이 차가울 땐 속을 데워줄 따뜻한 국 한 그릇을 찾게 된다. 쌀쌀한 저녁이 파도처럼 밀려와 거리를 뒤덮고 먼지고 차가워지는 밤이 도래하고 허기가 몰려와 곡기가 당길 때 생각나는 따뜻한 국밥 한 그릇.


쓸쓸함이 버석한 소리를 내고 마른기침을 하며 내 곁으로 올 때면 국밥이 몹시 생각난다. 시시각각 변하는 날짜변경선 위에서 나는 위태롭기만 하고 구두 수선집의 불빛은 아슬아슬하여 거칠게 숨을 내쉬고 겉옷의 깃을 세우는 밤이 찾아오면 국밥이라는 간판을 찾아서 거리로 나온다. 


국밥을 마주 대하면 국밥은 살아서 펄펄 끓는다. 살아있는 것들은 건드리기가 참 힘겹다. 생의 정점에서 국밥은 여봐란듯이 요란을 떤다. 숟가락으로 그 요란을 잠재우려 줄다라기를 하지만 쉽게 끝나지 않는다.


살아있는 국밥은 국수사리를 넣고 밥을 말아도 여태 살아있어서 먹을 때는 국밥의 살아있음이 고스란히 숟가락을 통해 몸으로 들어온다. 몸 안으로 들어온 살아있는 국밥은 위장을 데워주고 더 이상의 존재를 생각지 않게 한다. 자유로의 갈망은 땀샘의 역할로, 못다 한 행동은 턱의 움직임으로, 살아있는 국밥은 내 몸에서 최영철 시인의 말처럼 야성을 빛낸다. 


마주하고 먹는 것보다 나란히 앉아 먹기를 바라는 나를 위해

너는 내 옆에 앉아서 지구인이 되었지

내 고독을 껴 보기도 했고

나의 쓸쓸함을 입어 보기도 했다

나란한 세계를 우리는 걷고 있었다

시를 좋아한 너는 나에게 시를 적어주었고 나는 그 시로 꿈을 만들었다


국밥을 먹으며 시 한 소절을 탄생시켜 본다. 국밥이 끓어오를 때 요란함이 나에게로 옮겨 왔다. 오늘도 시인 최영철이 말한 야성을 빛내기 위한 돼지국밥을 먹으러 간다. 땀 뻘뻘 흘리며 히죽이 웃는 야성의 돼지국밥을 아버지들은 좋아했다. 먹고 나면 목 따는 야성에 시인도 히죽이 웃고 만다. 홀로 돼지국밥을 먹는 시인들의 이마에도 야성은 빛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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