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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Oct 07. 2020

변이 하는 세계와 이변의 사람들 236

9장 3일째 저녁

236.


 내가 어릴 땐 말이야, 라며 소피의 메시지는 첫 운을 떼었다.


 디렉트 메시지: 난 시장에서 파는 작은 거북이를 구입해서 집으로 왔어. 그때 내가 10살쯤이었어. 거북이는 내가 가장 아끼는 친구였지. 내가 살던 동네는 거북이를 잘 팔지 않았고 키우기도 힘들어. 그래도 나는 거북이가 좋았거든. 거북이를 어렵게 구했어. 하지만 아빠는 그런 나와 거북이가 싫었던 거야. 사람이 사람을 싫어하는데 이유가 없고 가족이라는 울타리는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다는 것을 알았어. 어쩌면 가족이라서 더 쉽게 괴롭히는 거 같았어. 너 때문에 내가 이러고 산다,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면서 말이지. 사람들은 가족에게서 가장 힘을 얻잖아? 하지만 난 제외였지. 배신의 상징인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가족을 포장하고 있었어. 나는 가족이기 때문에 상처를 많이 받았어, 가족으로 묶여 버리는 순간 타인에게서 받은 아픔의 몇 배에 달하는 고통을 받았지. 피로 맺어진 관계라고 하지만 가족은 결국 전혀 모르는 불특정 다수 중에 한 사람을 만나서 가족을 이뤄야 하잖아. 사실 혈연으로 연결되어 사랑으로 뭉쳐 있으려면 가족은 가족과 연결이 되어 가족을 만들어야 하잖아? 하지만 지구에서 그것은 용납되지 않는 터부지. 아빠는 나를 괴롭히기 위해서 나를 낳은 것 같았어. 정말 무서웠지, 폭력이라는 것 말이야. 내 가슴이 나오기 시작하면서부터는 괴롭히는 방법이 달라졌어. 나는 반항을 했어. 그 인간은 매일, 어떠한 방식으로 나를 괴롭혔어. 괴롭히는 방법을 연구하는 사람처럼 보였어. 입에서는 늘 술 냄새가 풍겼어. 더럽고 추악한 악취야, 사람의 입에서 그런 냄새가 난다는 것이 믿을 수 없을 정도였어. 엄마는 어째서 이런 사람과 가족을 이뤘을까. 아빠가 술을 마시고 들어올 때면 난 거북이를 숨겨야 했어. 사실 매일 술을 마셨으니까 매일 숨겨야 했지. 어느 날은 철사가 보였어. 아빠가 철사를 사놓았지. 철사가 집에 필요한 곳이 없었는데 말이야.     


 소피는 잠시 소강을 가졌다. 소피와 자주 일상적인 이야기를 나눴지만 소피의 개인적인 어린 시절의 오래되고 감추고픈 이야기를 듣는 것은 처음이었다.


 디렉트 메시지: 며칠이 지나고 학교에서 돌아와 보니 엄마의 얼굴은 멍으로 알아볼 수 없었고 내 거북이는 팔다리가 전부 잘린 채 산산조각이 나 있었어. 거북이의 잘린 몸통에 철사가 꽂혀 있었지. 철사를 타고 거북이의 피가 흘렀어.


 피가 묻은 철사는 철길을 떠올리게 했고 차갑고 달을 향해 뻗어있는 철탑을 생각나게 했다.     


 소피는 이후로 애완동물을 키우지 않았다. 아버지에 대한 증오는 소피 주위의 모든 현실을 내려놓게 만들었다. 소피는 엄마의 도움으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집에서 떨어진 곳에서 독립하여 대학에 진학을 했다. 아빠에게는 어느 학교를 다니는지 어느 지역으로 갔는지 엄마는 이야기하지 않았다. 엄마는 소피에게 늘 미안한 존재였다. 대학에서 인문학을 전공했고 교수에게도 칭찬을 받았다. 소피는 사르트르, 자크 데리다, 미셀 푸코 같은 철학가에 대해서 근원적으로 빠져 들었다. 인문학은 묘하고 꽤 매력적인 학문이었다. 인문학은 인간사 전반의 모든 분야에 대해서 공부가 절실하게 요구되었다. 철학가와 인문학자들은 인간과 고통을 같이 느끼고 그들의 고통을 끌어안고 옆에서 걸어가 주어야 한다. 정치가들보다 격렬하고 더욱 거칠게 인간을 위로했다. 소피는 자신이 하는 공부가 후에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에 일조를 할 것이라 믿고 있었다. 희망을 가지게 만들었다. 사람들에 대해서 이해할 수 있었다. 사랑받아야 할 가족에게 미움을 받는 사람들을 도우리라. 그러기 위해서는 공부가 필요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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