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이 하는 세계와 이변의 사람들 240

9장 3일째 저녁

by 교관

240.


“개새끼, 이게 뭐 하는 거야!”


“소피, 미안해. 소피도 비자가 만료되어 가잖아. 저들이 소피의 고민을 덜어 줄 거야. 소피, 소피는 늘 나에게 미안해하며 지내고 있어. 이제 그럴 필요가 없어.”생명력이라고는 전혀 느껴지지 않는 전자음 같은 블랙우드의 목소리는 소피의 마음을 칼바람에 뺨이 아플 정도로 찔렀다. 눈물이 한 줄기 흘렀다. 엄마가 죽었을 때도 마음으로만 울었다. 이런 일 따위에 눈물을 보이면 안 된다. 나약해지는 꼴을 보이는 것이다. 소피는 침대에서 벗어나려고 몸을 움직였다. 놀란 숭어처럼 파닥거리기만 할 뿐 생각만큼 몸은 움직여지지 않았다. 발을 들어 올리려 해도 주먹 쥔 손과 팔을 움직이려 해도 전혀 되지 않았다. 그럴수록 무식한 역기로 단련된 흑인들의 힘은 더욱 강해지기만 했다. 흑인들은 사람 같지 않았다. 주인에게 버림받은 며칠 굶은 도사견 같았다. 한나 아렌트가 말하는 명령만 하면 움직이는 그런 놈들이었다. 흑인과 동양인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수치심이 물결치고 온 몸을 휘감았다. 흑인들은 두 마리의 사나운 개에게 영혼 없이 움직이는 무거운 검은 물체로 변했다. 소피의 가슴이 드러났다. 소피는 주위 사람들이 들을 수 있도록 더욱 세게 고함을 질렀다.


“블랙우드 이 개새끼! 내가 널 얼마나 사랑하고 믿었는데!”소리를 지르고 나니 흘리던 눈물은 통곡으로 바뀌었다. 그러지 말아야 했지만 의지와는 무관하게 눈물이 마구 흘렀다. 믿고 있는 사람에게 희망보다는 배신을 당하는 자신의 꼴이 더욱 싫었다. 블랙우드는 고개를 저었다.


“사람이 사람을 믿는다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은 없어. 소피.”


몸에 기대어 소피가 겁탈당하는 모습을 가만히 쳐다볼 뿐이었다. 얼굴에 비해 허옇게 보이는 이를 드러낸 두 마리의 검은 괴물보다 소피의 눈에 블랙우드가 더 인간처럼 보이지 않았다. 인간이 아니었다. 초점이 빗나간 시선이었다. 블랙우드에게 시각은 의미가 없었다. 본능적으로 망막의 맹점을 자신이 보고 싶은 것으로 맞추었다. 표정도 없었고 회색빛의 눈으로 묵묵히 소피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소피는 팔과 다리를 꼼지락 거리며 소리를 질렀다. 소피의 윗도리는 다 찢어졌고 바지는 반쯤 벗겨져서 팬티의 반이 드러났다. 흑인들은 서로 손바닥을 마주치며 즐거워했다. 생쥐를 잡은 고양이처럼 소피를 가지고 놀았다. 소피는 아버지에게 두드려 맞았을 때도 이를 다물고 견뎌냈다. 능욕당하는 수치심이 가슴으로 크게 밀려 올라왔다. 점점 뜨거워졌다.


“소피, 시끄럽게 하지 마, 여긴 누가 도와주러 오지 않아. 자꾸 시끄럽게 굴면 저들이 가만있지 않을 거야. 내 말을 들어 소피. 이번 한 번으로 그냥 넘어가는 거야. 모든 것이 잘 될 거야. 난 정말 약이 필요해. 저들이 너를 가지고 나면 이 자리에서 나는 바로 약을 받을 수 있어. 소피는 이 땅에서 머무를 수 있을 때까지 걱정하지 않고 머물 수 있어. 기회의 땅이잖아. 괜찮은 조건이야. 시간이 지나면 알게 될 거야. 그러니 받아들여. 그저 받아들이면 돼. 더 이상 나에게 미안해하며 지내지 않아도 되고 말이야. 늘 미안해하는 모습을 보는 것도 지긋지긋해.”


“시끄러워 개자식아!”소피의 얼굴은 눈물로 범벅이 되어서 퉁퉁 부었다. 격앙했고 죽을힘을 다해 소리를 질렀다. 그때, 얼굴에 뜨거운 것이 닿는 느낌이 들었고 갑자기 몸에 힘이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옷이 전부 벗겨지는 느낌이 들었고 항문과 성기가 불타오르는 불쾌함이 몸을 덮쳤다.


[계속]



keyword
작가의 이전글변이 하는 세계와 이변의 사람들 2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