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장 3일째 저녁
246.
마동은 숨이 차올라 크게 쉬어야 했다. 정신은 누군가 뒤로 돌아와서 스위치를 내린 다음 가져갔다가 와트수가 다른 전구를 꽂아서 스위치를 올려 버린 것 같았다. 제어가 불가능한 두려움이 마동의 몸을 엄습했다. 호흡이 거칠어졌다. 심장이 크게 뛰었고 맥박이 빠르게 움직였다. 마동은 정신을 차리고 소피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디렉트 메시지: 소원이라곤 별거 없어. 여기서는 모두들 아파트에 살고 싶어 하지만 난 마당이 있는 큰 집에 살고 싶어. 그리고 정원에 한국산 소나무를 심어놓고 매일 바라보며 지낼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그것이 소원이라면 소원이야.
마동은 이제 소원이 점점 멀어진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디렉트 메시지: 소나무? 확실히 동양의 친구는 멋진 사람이었어. 내 직감은 빗나가지 않아서 나는 지금 더욱 기쁜걸.
디렉트 메시지: 그래 소나무 말이야. 여기서는 소나무를 근처에서 자주 볼 수 있어서 그런지 사람들은 소나무에 그렇게 관심을 두지 않아. 하지만 소나무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정말 신비로운 나무야. 게다가 근처에 늘려있는 소나무는 일본에서 들여온-그렇다고 일본산 소나무는 아니다- 소나무가 많은데 나의 집 마당에는 한국 금강송이라는 소나무를 심어놓는 거야. 나무가 띠는 빛이 오묘하고 소나무의 몸통이 붓놀림과도 같아. 소피도 어쩌면 봤을지도 모르겠네. 붓글씨? 혹시 알아?
디렉트 메시지: 설마? 내가 알 거라고 생각하진 않겠지? 전혀 모르겠는걸.
디렉트 메시지: 그래 나중에 만나게 되면 이야기를 자세하게 해 줄 수 있을 거야-만약 만나게 된다면 말이지- 집의 정원에 큰 소나무를 심어놓고 하루 종일 어루만지며 관리를 하는 거야. 소나무를 쳐다보며 지낸다면 매일 행복할 거야. 소원이지. 나의 소원. 왜 그런 따위가 소원이 되었을까. 나도 잘 알 수가 없어 소피.
마동은 갑자기 일어나 바닥에 엎드려 팔 굽혀 펴기를 했다. 서른 개를 했다. 역시 전혀 힘들지 않았다.
나는 소나무를 잊기 위해서 갑자기 운동을 했을까. 내 안의 또 다른 내가 운동을 하라고 시킨 것일까.
마치 철탑 밑에서 눈을 떴을 때 떠오르는 유년시절의 기억을 떨쳐버리기라도 하듯 힘 있게 팔 굽혀 펴기를 했다. 하지만 마동은 왜 팔 굽혀 펴기를 하는지 이유를 찾지 못했다. 스무 개를 하고 다시 열 개를 했다. 그리고 그렇게 세 파트를 순식간에 했다. 턱의 끝이 바닥에 닿을 듯 말 듯 내려갔다가 팔을 뻗어 힘차게 올라왔다.
디렉트 메시지: 저기 소피?
디렉트 메시지: 응? 동양의 친구?
디렉트 메시지: 나와 이렇게 이야기를 하면 블랙우드가 생각나지 않아?
디렉트 메시지: 동양의 친구, 난 그동안 꽤 많은 종류의 사람들을 만났어. 직장인들처럼 같은 사람을 매일 만나는 것이 아니라 늘 다른 사람들을 만났어. 그들은 정말 세상에서 별종의 인간들이야. 끝까지 내몰린 사람들일지도 모르지. 나의 친구여. 나는 당신을 꽤 믿어 버렸어. 나 역시 어떻게 당신이라는, 보지도 만나지도 못한 사람을 믿어버리게 되었는지 누군가 물어본다면 대답할 길은 전혀 없어. 하지만 마음이 그렇게 말을 하고 있어. 내 마음이 향하는 촉을 믿는 거야. 나에게 철없이 흘러간 시간과 맞먹을 만큼 독선적인 직감이 내재되어 있어. 그리고 그만큼의 많은 사람들을 만난 경험과 관찰이 있지. 나의 직관을 믿고 받아들일 수 있는 상태와 나이가 되었다는 거야. 감각이 있어. 그것뿐이야. 그 외에는 없어. 동양의 친구.
마동의 마음속에서 무엇인가 발현의 꿈틀거림이 포착되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