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장 3일째 저녁
247.
마동은 아파트 옥상의 난간에 앉아있다. 새벽의 밤공기도 단조롭게 옥상에 내려앉아 있었다. 고개를 들어 저 먼 곳의 어둡고 불길한 하늘을 보았다. 마른번개가 불규칙적인 주기로 내리쳤다. 이제 정상인처럼 살아가는 것은 포기해야 할지도 몰랐다. 일어나지 말았으면 하는 일이 닥쳤을 때는 얼마나 빨리 받아들이는가 하는 자세에 대한 문제에 봉착하게 된다.
치누크가 몰고 온 묘한 바람의 흐름을 느꼈던 그날 사라 발렌샤 얀시엔을 만나고 조금씩 변이하고 있었다. 그것이 실로 진정한 변화인지 마동의 본성이 사라 발렌샤 얀시엔을 만난 후 깨어나게 되었는지는 모르는 일이다. 비록 신체의 상태 변화뿐만 아니라 의식의 변화까지 깊고 어두운 바닷속에서 속도감 있게 변해가는 것처럼 느껴졌다. 의식의 본질은 껍질을 벗고 껍질 속의 새로운 살갗의 냄새를 맡았다. 의식의 바다 깊은 곳에서 기포를 타고 올라왔다. 기포가 터질 때마다 붕괴하고 질척이는 피 냄새도 났다.
어김없이 해가 아침을 점령하면 난 어제보다 더 일어나지 못할 것이다.
마동은 허리를 약간 구부렸다. 다리는 옥상의 난간 밖으로 나 있었다. 엉덩이는 난간에 아슬아슬하게 걸쳐있고 양 손도 옥상의 난간을 위태롭게 잡고 있었다. 하지만 마동은 전혀 개의치 않았다. 어린아이가 뒤에서 살짝만 밀어도 아파트 밑으로 추락할 것 같은 모습이다.
아침에 눈을 뜨면 목소리도 나오지 않을 것이다. 집으로 들고 온 꿈의 리모델링 작업 때문에 회사에서 연락이 많이 올 것이다. 어쩌면 연락 속에서 최원해 부장이 출근하지 않았다는 소식을 전해 들을지도 모른다. 최원해는 아직 지각 한 번 조퇴 한 번, 결근도 한 번 해 본 적이 없는 사람이다. 회사 입장에서는 충성도가 아주 높은 사람이었다. 이제 하루 이틀 뒤에 경찰이 와서 최원해의 실종에 대해서 이것저것 물어볼지도 모른다. 아니 취조를 할 것이다. 눈앞에 그런 광경이 죽 나타났다.
가스층이 두터운 여름밤의 어두운 하늘이 밝았다. 마른번개가 내리칠 때마다 하늘은 기분 나쁘게 더 밝아졌다. 마른번개가 마동의 마음에 어떤 미지의 자극 같은 것을 전해주었다. 마동은 내리치는 마른번개가 자신의 마음속 밸런스를 무너뜨린다는 것을 알았다. 마음의 밸런스가 무너져서 질서가 깨져 버리니 외부의 풍경이나 사물, 사람들의 행동양식을 제대로 바라보는 것이 되지 않았다. 마동은 다시 고개를 들어서 하늘을 바라보았다. 어둡고 흐리고 꿉꿉하고 그 사이에 밝은 하늘빛이 눈앞에 어울리지 않게 펼쳐졌다.
며칠 만에 아주 뜨거운 무더위가 한반도를 찐 고구마로 만들었다. 열기 가득한 더위가 몰려오기 전, 태풍의 전운이 감도는 분위기를 한껏 머금고 있는 여름의 새벽하늘이었다. 욕망에 가득한 충혈된 눈처럼 보이는 구름이 하늘 사이사이에 껴있었다. 마동은 들었던 고개를 숙여 아파트의 밑을 바라보았다. 이 새벽에 아직도 걸어 다니는 사람들이 있었고 그 대부분은 술에 취했는지 걸음걸이가 완벽함에서 벗어났다. 습한 공기의 암울함은 밤의 세계를 떠나기 싫다는 듯 서로 엉겨 붙어서 불안한 걸음걸이로 걷는 사람들의 숨에 들어차 그들의 불쾌함을 더욱 자극했고 그들의 걸음걸이를 느리게 만들어 주었다.
새벽의 단신상들이 모여 오후의 군상을 만들어내고 하나일 때 없었던 힘은 집합으로 하여금 큰 소리가 된다. 비록 불합리성을 지닌 목소리라도 여럿이 떠들어대면 정합성이 되어 버리고 만다. 폭주한 기차처럼 앞으로 끝없이 나가지만 멈추지는 못하는 것이 인간 군상이었다.
마동은 아슬아슬하게 아파트 옥상의 난간에 앉아있었지만 고층에 대한 공포가 들지 않았다. 그는 고소공포가 심했다. 예전에 마동은 아주 높은 곳에 올라간 적이 있었다. 적당히 높은 곳이 아니었다. 고층의 외부가 드러난 곳이었다. 올라가니 심장이 빨리 뛰었고 손과 발바닥에서 이유 없이 땀이 났다. 무엇보다 지상에서 할 수 있었던 생각을 전혀 할 수 없었고 타인이 되어서 자신의 육체를 내려다보는 더러운 기분이 들었다. 다리는 이유식을 먹는 아기처럼 힘이 몽땅 빠져나가 서 있기도 불안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