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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Oct 19. 2020

변이 하는 세계와 이변의 사람들 248

9장 3일째 저녁

248.

 옥상 난간에 앉아있는 지금은 그런 증상이 전혀 없었다. 변이 덕분이었다. 현재는 더 높은 곳에 올라가서 매달려 있어도 상관없었다. 딱 꼬집어 낼 수는 없지만 하나의 두려움이 사라지는 대신 또 다른 새로운 두려움이 들었는데 그것을 모른다는 것이다.


 하나의 생명이 태어나면 하나의 세계가 시작된다. 누가 했던 말일까.


 또 다른 두려움을 감싸고 있는 가려진 실체는 어렴풋하나 옅은 커튼 뒤의 형체와 같았다. 여름밤의 아파트 옥상은 낮 동안 내려받은 복사열과 밤새도록 집집에서 가동하는 에어컨 열기 때문에 달아오른 거대한 두꺼비집처럼 변했다. 짙은 새벽으로 시간이 나아갈수록 공기의 밀도는 조여오기 시작했다. 험악하고 음산하고 기분 나쁜 습한 새벽의 공기가 마른번개가 치는 저곳에서 이곳으로 와서 마동의 어깨며 팔다리를 좋지 못한 기분으로 만들었다. 그리곤 이내 어깨를 쓰다듬더니 습함은 마동의 목을 타고 내려왔다. 여름밤 대기에 노출되어있는 피부에 달라붙었다. 얼굴로, 그리고 얼굴에 뚫려있는 구멍으로 음험함이 습, 하며 빨려 들어왔다.


 오토바이 한 대가 처절한 굉음을 내며 아파트 단지 밑의 도로를 질주했다. 아파트에 자아를 저당 잡힌 70대 노인이 떠올랐다. 아파트와 함께 서서히 죽어가는 노인의 삶에 대해서 생각했다. 마동은 어린 시절 그 사건 이후 죽음이라는 것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했다. 적어도 타인보다 죽음에 대해서 가까이 다가가려고 했다. 인간은 나이가 들어 병약해지고 세포들이 점점 죽어가면서 면역력이 떨어지고 나면 육체가 쇠퇴하여 그 사이로 틈입해 온 바이러스는 신나게 증식을 한다. 그리하여 고요하고 편안하게 죽음을 맞이하는 경우는 드물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죽음이라는 게 서서히 오는 경우가 있고 느닷없이 오는 경우가 있다. 가까이 와있지 않던 죽음이 갑자기 들이닥쳤을 때 죽음을 맞보는 그 몇 초, 몇 분, 몇 시간, 며칠은 깨달음과 환멸이 교착되는 시간이다. 그 외의 감정은 배재하게 되거나 이탈해버리게 된다. 억울하다고 느끼는 이도 있을 것이다. 짧은 순간 많은 생각을 하거나 그렇지 못하거나. 죽기 직전 인간의 뇌는 엄청난 엔도르핀을 분출시켜 극심한 고통을 완화시켜 준다.


 마동은 그동안 죽음에 다가서는 훈련을 많이 해 왔다. 종교가 없어서 종교적인 측면에서 훈련을 한 것은 아니었다. 현세에 불만족이나 누리지 못한 부분을 죽어서 천수를 누리겠다는 생각도 없었다. 죽음이란 삶의 한 부분이다. 소피의 말을 생각했다. 소피는 죽음에 대해서 가까이 다가갔다. 적어도 마동보다는 훨씬 가까이 다가갔었다. 그렇다고 마동은 생각했다. 그녀는 분명히 죽음이 있는 그 너머의 세계 가까이 조심스럽게 다가가서 죽음이 던지는 관념에 대해서 만져보고 느껴보고 왔다. 오늘 죽으면 내일부터는 더 이상 죽지 않아도 된다는 셰익스피어의 말이 와 닿았다. 마동 역시 죽음을 받아들이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하루를 보냈다.     


 숨이 끊어지는 그 순간의 느낌이라든가, 죽음을 형해 달려가는 흐름에 대해서.


 어떤 방식이 되었던 그 순간을 받아들이는 훈련.     


 물론 죽음을 맞이하지 않았기에 죽음 그 후에 펼쳐지는 완전무결한 세계에 대해서 알 수는 없다. 죽음을 경험하고 돌아온 사람들의 말도 신빙성은 없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죽음에 대해서 우주에 덩그마니 떠 있는 마스처럼, 미지의 한 부분처럼 말하고 있다. 깊게 생각하지 않는다. 인간은 모두가 죽는다. 인간은 그 사실을 안다. 다만 그 진실과 마주하는 것은 겁이 난다. 진실이 앞으로 오면 고개를 돌리고 만다. 진실을 알고 싶어 한다고 말하지만 그건 모순이 가득한 변명에 지나지 않았다. 티브이에서 정치가들이 거짓으로 일관하지만 어쩌면 사람들은 거짓을 원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살고 있는 그곳의 땅이 어떤 이유로(앞으로 이런저런 지질학적인 이유로) 갈라진다고 말을 하면 사람들은 충격으로 초유의 사태가 일어날지도 모른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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