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에세이
겨울이 되면 여름 내내 촉촉하던 입술도 바짝 말라 버린다. 그래서 참 별로다. 찬바람이 소나기처럼 할퀴고 가면 입술도 말라서 주머니에 넣어뒀던 립글로스를 꺼내서 바르려고 하면 없다. 얼씨구 분명히 여기 주머니에 넣어뒀는데 주머니를 뒤지면 사라지고 없다.
꼭 만년필 같다. 만년필은 자신이 구입하는 경우는 잘 없다. 선물로 받는 물품인데 사용하려면 여간 귀찮은 게 아니다. 몇 번 사용하다가 서랍 속에 고이 넣어둔다. 하지만 시간이 훌쩍 지나서 보면 가만두었던 서랍 속 만년필은 없어지고 만다. 아무리 찾아도 없다. 누구도 건드린 적이 없다. 당연하지만 서랍 속에 넣어둔 걸 아는 사람은 나뿐이지만 만년필은 인사도 없이 멀리 가버리는 애인처럼 없어져 버린다.
생활 속에서 어김없이 시간이 지나면 자연히 없어지는 물품이 항상 존재한다. 립글로스도 그렇다. 언제나 옆에서 잠시 동안 웃음을 머금고 곁에 꼭 있어 줄 것만 같지만 어느 순간 보면 사라져 버린다. 그저 쓱 말도 없이 떠나고 만다. 그래서 겨울이 되면 립글로스를 두, 세 개씩 구입하여 내가 손을 뻗을 수 있는 곳에 지뢰처럼 놓아둔다. 그래도 하나가 어느 날 보면 사라지고 없다.
만약 립글로스가 자동차라면 나는 망했을 것이다. 어쩌면 립글로스를 만드는 공장에서 립글로스를 만들 때 오랫동안 사용할 수 없게 어떤 장치를 집어넣어서 한 달 정도 사용하다가 슬슬 주인에게서 도망가서 5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가서 생명이 다해버리게 만드는 것이 아닐까.
립글로스는 누군가 사용하던 것을 자신의 입술에 막 바르지는 않는다. 그렇기에 입술이 바짝 타들어가는 겨울의 메마른 사람들이 너나 할 것 없이 약국으로 발길을 돌려서 립글로스를 구입하게 하는 모종의 권모술수가 있는 것이다.라는 생각마저 든다.
이렇게 없어지든, 저렇게 없어지든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진다. 립글로스는 구입한 주인의 바람과는 무관하게 자리에서 이탈하고 만다. 마치 궤도에서 벗어난 별똥별처럼. 어떤 이에게는 우산이 그럴 것이고, 또 어떤 사람에게는 손수건이 그럴 것이고 또 다른 이에게도 그런 물품은 있다.
생각해보면 내 옆에서 늘 있어줄 것 같은 사람도 어느 순간 사라져 버리는 일이 있다. 다가왔던 애인이 그랬고, 늘 옆에서 나를 보살펴 줄 것만 같았던 부모님 역시 어느 날 떠나고 없다. 내 새끼 역시 내 품 안에만 있을 것 같은데 내가 내 부모를 떠났듯이 나를 떠나고 말 것이다. 물품이던 사람이던 손을 뻗을 수 있는 곳에 있는 모든 것들을 진심을 다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