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장 3일째 저녁
244.
디렉트 메시지: 어니 괜찮아 친구. 모든 사람들이 친구처럼 나를 바라볼 필요는 없어. 편견의 세계는 그것대로 또 하나의 세계이니 말이야. 포르노 배우가 너무 착한 이미지면 그것대로 매력이 없는 일이지(소피는 웃었다) 동양의 멋진 친구. 그래, 기이한 몸상은 좀 어때? 곧 한국에 가면 당신과 분위기 좋은 카페에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고 생각하니 들뜨는 거 같은데. 나 어떡하지?
마동은 소피가 자신을 만나서 들뜬다기보다 그동안 성인영화와 포르노 배우라는 타이틀 속에서 어디에도 머물지 못하고 확고한 자리싸움과 입지를 통해 소피라는 하나의 게슈탈트를 지니느라 고생한 모습에서 벗어나는 것에 들떠한다고 여겼다. 소피는 자신이 쌓아놓은 집적에서 벗어나는 일탈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고 더불어 한국은 블랙우드를 떠올리게 할 것이고 그 일도 생각이 날 것이다. 그럼에도 소피는 마동을 만나는 것에 상당히 흥분하고 있었다. 저녁에 만나는 것이라 마동에게는 다행이었다.
디렉트 메시지: 몸살은 계속 진행 중이야. 낮 동안은 몸살이 심하고 밤이 찾아오면 몸살은 내 몸에서 떠나가 버려. 이것을 반복하고 있는 중이야. 언젠가는 몸살이 끝날 거야. 그 언제가 되기 전까지 고생을 해야 할 것 같아. 그동안은 내 힘이나 의지로는 어떻게 할 수 없는 것 같아. 받아들이기로 했어. 소피의 말대로 말이지.
디렉트 메시지: 잘 생각했어. 동양의 멋진 친구.
디렉트 메시지: 마치 내 몸속에서, 내 머릿속에서 무엇인가가 꿈틀 되는 것 같아. 그것이 꿈틀거릴 때마다 두려워. 두려움이 계속 커져 가는 거야. 그런데 말이야, 또 다르게 이건 정말 굉장하군, 이건 마치 처음 와 본 유럽에 살고 있는 동양인의 느낌이야. 겉으로는 친절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차별이 있는 거와 비슷해. 두 가지를 동시에 느끼는 거야. 제대로 설명하기가 어려워. 소피에게 영어로 이야기를 해야 하기 때문에 더더욱 어려운 것 같아.
실은 한국 사람에게 한국어로 이야기를 한다고 해도 제대로 설명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소피는 괜찮다고 했다. 소피는 마동의 언어적 스타일을 알고 있었다. 소피는 그곳에서 마동이 만난 사람들의 몇 배에 해당하는 사람들을 만나면서 지냈다. 소피는 머릿속에서 꿈틀대는 무엇인가를 알 것 같다고 했다. 봉사활동을 하는 곳에서 그 무엇에 대해서 느꼈다고 했다. 먹구름처럼 몸을 잠식하는 그 무엇에 대해서.
마동은 장군이가 한 말을 되새겼다. 마동의 변이 속에 어둠의 도트가 느껴진다고 했다. 장군이가 느낀 것이라면 분명 그럴 것이다. 지금 마동의 마음속에서는 그 자신이 아닌 또 다른 에고가 눈을 떴다. 또 다른 에고는 마동의 변이로 깨어난 것인지 또 다른 에고를 통해서 마동의 변이가 시작된 것인지 역시 알 수는 없었다. 확실한 건 어떤 식으로든 변이가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마동은 새로운 에고와 뒤엉킨 원래의 에고를 타협시키지 못했다. 그들은 서로 타협을 하지 않으려고 했고 앞으로도 하지 않을 것이다. 물과 기름이 어울리지 않듯이.
디렉트 메시지: 동양의 멋진 친구. 나의 유년기에 대해서 말했으니 이제 친구 차례야.라고 하면 놀라겠지.
소피는 웃었다. 웃음소리가 활자로 변하여 화면에 나타났다.
디렉트 메시지: 동양의 멋진 친구의 유년기는 만나서 듣기로 하지. 동양의 멋진 친구의 소원은 무엇인지 말해봐.
마동은 자신의 유년기에 대해서 생각을 하니 갑자기 머리가 지끔거리며 아파왔다. 순간 어린 시절의 핏빛 가득했던 기찻길로 들어갔고 성난 얼굴을 한, 눈알은 빠져버리고 촉수를 마구 흩날리며 촉수 끝으로 끈끈하고 미끄덩거리는 액체를 흘리며 크르릉 소리를 내고 묘한 악취를 풍겨대는, 송곳니를 드러낸 악마의 기차가 마동의 머릿속에 나타나서 헤집고 다녔다.
[계속]